생각하는 시선
pm 09:00
사이판 중심가를 걷는다. 중심가라고 해봤자 켜져 있는 간판 몇 개만 보일 뿐, 도통 북적이질 않는다. 걷기 딱 좋다. 길은 넓고, 가야 할 곳은 적당히 거리가 있다. 바람은 미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섞여 있어 상쾌하진 않지만, 고개 들면 보이는 하늘엔 별과 달이 말도 못 하게 반짝거린다.
한국과는 달리 사이판에서는 이미 늦은 밤이다. 이곳의 밤은 새카맣지만은 않다. 새카만 어둠이 찾아온다는 말이 반쯤 맞으면서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이,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은 제 빛을 온전히 내뿜으며 사이판의 밤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찬란하고 특별한 빛보다는 따뜻하고 정겨운 빛으로.
pm 10:00
직접 보지 않으면 별과 달의 온전한 빛을 실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언제나 아쉬운 점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알고 싶은 모습이다.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라는 말이 내 평생 이렇게 구체화됐던 경험은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면 볼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하게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나는 내게 다가와 감싸주는 어둠과 별빛에 위로받았다.
pm 11:00
오늘의 달은 주관적으로 굉장히 특별했다. 보통은 달빛이 별빛보다 밝기 때문에 하늘을 보면 달빛에 먼저 눈이 가는데, 오늘은 달랐다. 달의 모양이 마치 미소 짓는 입꼬리처럼 아래에서 위로 휘어져있었다. 바다 위 수평선에 맞닿을 만큼의 낮은 하늘에 누워있었다. 어릴 적 봤던 달나라에 사는 토끼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절구를 치고 있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그러기엔 내 상상 속 달보다 얇고 붉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위태로운 달은 본면의 빛이 아닌 그 상태만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점점 더 희미해졌다. 수평선에 가깝다 생각했었던 얇고 붉은 달은 이내 수평선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관적으로 굉장했던 그 달이 내 마음의 근심을 낚아 저너머 어딘가로 사라져 준 것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