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시선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꺼풀을 내린다. 캄캄하다. 감은 눈에도 서서히 시야가 생긴다. 그 안에도 시선이 닿고 세계가 펼쳐진다. 처음엔 무시무시한 블랙홀이 나타나고, 조금 더 들여다보니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그 속에서 팔을 휘저으며 별빛 품으로 나아가 본다. 이 세계는 예측할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언제나 낯설고 어려운 세계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눈 뜨지 않고 제 0세계를 비행한다.
비행하던 중 주관의 영역에 불시착한다. 여기서 나는 '주관'을 만난다. 주관 옆에는 '선입견'이 아주 자그마한 병아리 마냥 졸졸 따라다닌다. 지독히도 붙어 다닌다. 하지만 주관은 선입견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 어떤 주제에 맞닿았을 때, 선입견이 삐약거리며 유독 큰 소리로 울어대는데, 그제야 주관은 선입견을 인지한다.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선입견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은놈이지만 제법 큰 소리로 우는 걸 보니 주관이 움츠려 든다. 서둘러 다음 영역을 찾아 비행한다.
다음 행선지는 애초의 목적지였던 호기심의 영역이다. 도달하고자 했던 장소라서 그랬을까, 왠지 모르게 사뿐하다. 주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작은 물음표에서 큰 물음표까지, 단 하나의 물음표부터 10개 연속 쭉 나열된 물음표까지 아주 다양하게 발견되었다. 이 영역에서는 '취향'이 마중 나왔다. 취향은 내게 물었다.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혹은 적은 지에 대해 소리 내어 물었다.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구체적이지 않아서일까?
이때 갑자기 바닥에 구멍이 뚫리면서 그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당황스러움에 움츠려 들었지만 내 옆에는 취향이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취향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직 그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확히 알고 싶어 졌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그러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무엇을 관심 있어하는지 고민했던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취향을 잡고 싶었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나는 가족에, 사랑에, 우정에, 맛있는 음식에, 선함에, 여유에, 아름다움에, 빛에, 배움에, 사진에, 카메라에, 약속에, 노트에, 장소에, 노래에, 맥주에 관심이 많았다. 내 생각을 들은 취향은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긋하게 속삭였다. 그토록 다양한 부분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화하던 찰나에 나는 결국 '나'를 관심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자세히 알고 싶음을 느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취향은 내게 그 부분을 전하고 싶어서 이 깊은 곳까지 함께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고,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취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 호기심의 영역을 거쳐, 무수히 많은 별들을 지나, 캄캄한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이 부셨다. 눈가에 주름 잡아가며 시야를 적응하는 동안 제 0세계에서 방문했던 영역과 그곳에서 만났던 이들에 대해 떠올렸다. 그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면서 기꺼이 이야기 걸고, 들어줄 것이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