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by 한재민



좋은 기회로 동경하던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 책 '써 내려간 시선'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고 문의를 드렸었는데, 문의드린 지 한 달가량 지났을 때쯤 전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정중한 메일을 받았다. 책을 구성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전시를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겁 없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는 말처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적극적으로 제안에 응답했다. 작품으로 선보일 사진은 많았고 무조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간 담당자분과의 첫 미팅 날짜를 잡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전시의 방향이 잡힐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미팅에 가려했다. 이때까지도 공간 담당자분이 당일에 말씀해주시는 것들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 책의 출판사 대표로서, 좋은 전시가 될 수 있도록 미팅 날까지 고민해봐야 할 부분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는 어떤 것부터 고민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어차피 그들이 말한 대로 맞춰야 하지 않겠냐며 넘어가려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내는 나를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누구의 전시도 아닌 오빠의 첫 전시야. 알지?"


기적처럼 찾아온 나의 첫 번째 전시라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액자는 만들면 되고, 사진은 걸면 끝이라고, 컨셉은 책에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큰 문제없이 진행될 거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기획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고, 준비기간은 부족한데 내가 생각한 것은 고작 작품 선정과 액자 주문뿐이었다. 한참 부족한 마음가짐이었다. 아내가 정리해서 보내준 사안들을 노트에 적어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도하는지, 어떻게 배치할지, 어떤 색의 액자로 할지, 어떤 크기로 할지, 동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시처럼 리플랫을 준비하면 어떨지, 좀 더 전시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할 방법이 없을지, 시트지로 어떤 문구를 준비하는 게 적절할지 등등 여러 각도에서의 고민이 필요했다.


3일 후, 약속된 미팅 날이 찾아왔다. 따로 자료를 준비해놓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된 상태였다. 장소에 도착해보니 먼저 도착한 아내가 보였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담당자분을 기다렸다. 곧이어 담당자분이 도착했고 우리는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정중히 표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잘해보고 싶다고. 그리고 이때 아내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태인플러로 엮어둔 기획서 세 묶음을 꺼내어 하나씩 나누어줬다. 아, 나는 또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러한 부분들이 부러웠다. 뭔가를 할 때 대충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데드라인을 앞두고, 좀처럼 마감 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부분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매우 크단 걸 알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조금 더 뾰족하고 싶고 서로를 장난 삼아 '변태 같다' 부를 만큼 섬세하고 싶었다. 미팅을 마친 뒤 체계적으로 업무를 나누어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일이 진행될수록 앞서 말한 섬세함의 차이는 점점 눈에 띄었다. 역시나 내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완성도보다는 일을 처리했다는 상황에 만족하며 적당히 임했다. 스스로를 노력하는 사람이고 꾸준하게 하는 사람이라 칭하는 편인 나는 새로운 과정이 생기면 생길수록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의 부족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으나 오히려 내가 몰랐던 나의 뾰족한 뭔가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내가 지닌 뾰족함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약속에 대한 엄격한 시간관념이다. 정해진 기한 내에 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 절대 기한을 넘기지 않겠다는 일념이 있다. 사실 언제나 기한보다도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미리 마무리하는 편이다. 그랬을 때 마음이 더 편하고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유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뾰족함이 다른 이에게는 '변태'같은 요소가 아닐까.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으로는 언제든 즉각적으로 연락이 가능하고 소통이 쉽다는 점이 있다. 함께 작업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정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빠르고 정확하게 소통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내가 아내에게 완성에 대한 변태적 성향을 배웠듯, 누군가 나에게 시간과 연락에 대한 변태적 요소를 배우지 않을까 생각하니 전시를 했다는 결과 자체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소중하고 기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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