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선사하는 무더위에 '너무 덥다' 보다 더 맛깔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독하다, 강렬하게 쨍쨍하다, 숨통이 막힌다, 푹푹 찐다, 길이 녹는다, 진짜 너무 뜨겁다, 아무것도 못하겠다, 아니 이게 뭐지' 등이 있지 않을까.
숨이 막히게 더운 여름 내내 에어컨을 켰다. 도통 끌 수가 없었다. 끄는 순간, 금방이라도 바닥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이토록 질척이고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강렬한 여름이 어느새 떠나가고 있었다. 막상 여름을 보내주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나타날 여름이다. 내 숨통을 조이고, 궁금할 정도로 푹푹 쪘던 여름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름을 어떻게 보냈던가.
내가 여름을 보낸 여러 방법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여름의 맛'이다. 집에 있을 땐 낮이던 밤이던 에어컨을 틀어놓는다. 에어컨 바람으로는 심심하다. 핫한 여름을 견디기엔 충분할 수는 있을지언정, 즐겁게 보내기엔 부족하다. 경험상 이럴 때는 역시 여름 음식이나 간식이 큰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 한 그릇 해치우기! 하루 중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에 냉동실을 열어, 얼려두었던 얼음조각들에 충격을 가해 분리시킨다. 얼음이 분리되는 소리 덕분에 한낮의 더위가 한 걸음 물러간다. 볼이 제법 큰 그릇에 얼음 몇 덩이를 올려놓는다. 미리 삶아둔 소면을 찬물에 한 차례 더 행군 다음, 얼음을 올린 그릇에 덜어놓는다. 어머니가 정성껏 갈아 만들어주신 콩물을 국자로 잘 저어 한 쿱 크게 퍼낸다. 그릇에 국물을 푸짐하게 옮겨놓고는 한쪽에 삶은 계란과 토마토 몇 조각을 올려놓는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면 여름은 질척거림을 멈춘다.
두 번째, 태양이 잔뜩 화난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기 싫다면 미리미리 아이스크림을 구비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 하드바 아이스크림, 콘 아이스크림, 팩 아이스크림 등 종류별로 구비해놓으면 아주 좋지만, 무엇보다도 여름을 매몰차게 내쫓기 위해서는 팥빙수 아이스크림이 최고다. 여기에 흰 우유까지 준비해둔다면, 어쩌면 준비성에 감동해서 여름이 영영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질색해서 일수도.
세 번째, 새로운 계절이 찾아와 물러나야만 할 여름을 위한 기록을 남긴다. 사실 뜨거운 여름에 밖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데,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생명과 강렬한 아름다움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출할 수 있을 때, 즉 땀 한 번 흘릴 때 제대로 흘리는 편이다. 집 주변만 봐도 생명력이 넘쳐난다. 다른 계절에는 보지 못할 생기를 마주하다보면 나 역시 힘이 난다. 초록잎과 잔디의 반짝이는 색감, 알록달록 다양하게도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는 여러 꽃들, 복스럽게도 맺힌 열매, 약속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해질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길고 긴 그림자를 보면 기록하고 싶다. 나의 여름에 이열치열, 내가 질척거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찌는 듯한 더위를 무심히 지나치면 은근히 그립고 오래도록 기다려야 하기에 지금 머물러있는, 맛있는 여름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