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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n 25. 2020

주어진 30일

지정생존자 말고 지정휴직자



의도치 않게 여유가 생겼다. 몇 시 비행인지,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 시간에 알람을 맞춰야 하는 건 아닌지, 알람이 울리면 빨리 일어나 알람을 끄고 조용하게 씻고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지, 유니폼은 잘 다려놨는지, 구두는 깔끔하게 닦여 있는지, 필요한 물품들을 캐리어에 잘 챙겼는지 고민할 필요 없는 오늘과 내일을 지내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 무사히 다녀오길 바라며 긴장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이 지낸지도 어느덧 네 달이나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까지 나에게 여유를 줄 작정인지 모르겠는 채로, 또 다른 30일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평소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는 출퇴근을 하면서도 틈나는 시간마다 뭔가를 해서 매일매일 알차게 채워나가려 노력해왔다. 뭔가를 꼭 해야만 좋은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그런 나에게 정확히 3월부터 예정에 없던 여유가 우두커니 찾아왔다. 이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고민이었다. 또 계획적을 세워 하나씩 달성해보면 어떨까. 결국 3월의 시작과 동시에 부담 없는 목표가 세워졌다. 필름 카메라만 사용했었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의 조작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이번 기회에 많이 사용해보면서 익혀보고자 했다. 그리고 지난번 전시회에서 사용할 영상을 맡길 때 느꼈던 불편함을 떠올리며 직접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차근차근 몸소 익히고자 했다. 가끔 집에서 원두를 갈아 드립 커피를 만들어 마시곤 했는데 어설픈 흉내 정도였었다. 제대로 할 줄 알면 더 만족스럽게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으로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고자 했다. 피치 못하게 생긴 여유 속에서도 뭐든 해보자 생각하다 보니, 물론 완벽한 휴식은 없었다. 


그렇게 4월까지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갔고, 5월이 되어서야 쉴 수 있을 때 쉴 줄 아는 것도 괜찮은 목표라는 걸 느꼈다. 일 년 중 한 번 있는 자격 훈련과 심사가 6월 중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업무를 살피고 공부하기도 했지만 주로 알람 없이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자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밀린 드라마와 예능을 시청하며 쉬었다. 코로나를 피해 조심조심 친구들도 만나면서. 이맘때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휴식을 즐기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운동으로 몸집을 키우는 것이었다. 평소 운동은 했었지만 몸집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이왕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할 때 열심히 해보면 좋을 것 같았고, 마침내 5kg 증량에 성공했다. 지금 현시점에서부터 또다시 주어진 30일이라는 시간 동안 3-5kg을 더 증량하거나 근육이 더 잘 보이도록 천천히 지방만 빼는 방향으로 운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어색했던 쉬는 방법도 이제는 제법 잘 쉬는 것 같다. 커피 내릴 때도 자신감이 생기고 맛도 좋아졌다. 몸은 더 건강해졌고, 관심 없었던 분야에 대한 독서도 시작했다. 카메라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영상까지도 서툴지만 꽤나 봐줄 만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스케줄 때문이었지만 늘 바쁜 척하느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도 누구보다 자주 연락하고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고 있다. 의도치 않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세울만하거나 거창한 자격 따위가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시점부터 30일이란 기회가 또 생겨났다. 그래서 또 새롭게 해보고자 한다. 오늘부터 30일간 브런치에 글을 쓰고자 한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 대한 서툴지만 꼭 필요한 주제로. 인생에서 파생되는 소제목들에 제약을 두지 않고. 나름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글로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에 1일 1 글쓰기까지는 어려울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분량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정말 정말 부족하더라도 최대한의 1일 1 글쓰기가 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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