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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n 26. 2020

주어진 29일

'사는 공간'에 대해서



어렸을 적에 인상 깊었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러브하우스라는 이름이었는데 집을 통째로 인테리어 해주고 전과 후의 변화가 어떤지 보여주던 프로그램이었다. 공간의 완전한 활용을 보여주기도 했고, 비워낼수록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만약 어른이 돼서 인테리어 쪽 일을 하게 되고 저렇게 멋진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했던 나는 현재 비행기가 근무지인 승무원으로 살고 있지만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 덕분에 오랜만에 '집'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에 푹 빠졌다. 그렇게 자연스레 지금 내가 사는, 앞으로 내가 살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 졌다.


발단이 된 책의 이름은 '우리가 집을 짓는다면'으로 나의 공간, 가족의 공간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사는 집은 살기에 충분한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느낌을 가졌고,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등의 단순한 생각에서부터 실제 활용되는 면적은 몇 평이나 되는지, 한 달 또는 일 년에 얼마나 손길이 닿는지, TV와 소파는 거실 한편에 무조건 위치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등의 평소라면 하지 않는 생각까지 해볼 수 있었다. 


실제 사용 공간)

일반적으로 매일 기상할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봤다. 평수로 표현할 순 없겠지만 아무튼 매우 좁은 면적만을 사용해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기지개를 켠 다음 거실로 나온다.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화장실로 향해 양치를 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요리보다는 조리 위주인만큼 아침식사는 뚝딱 해결한다. 식사가 끝나면 거실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목적도 없이 TV를 틀어 적막을 깬다. 티브이를 보며 노트북으로 사진이나 글을 다룬다. 그러다 커피가 생각나면 천천히 커피를 내려마시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온다. 외출하는 날이면 옷걸이에 걸린 자주 입는 옷 중에서 하나를 꺼내 입는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거실 테이블 앞에 앉는다. 책을 읽거나 TV를 본다. 세탁해야 할 것들이 보이면 어쩔 수 없이 베란다로 나간다. 빨래가 완료되면 건조대를 이용해 거실에 말린다. 하루를 깨끗하게 마무리하고자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눕는다.

내가 사용하는 실제 공간은 정말이지 한정적이었다. 방이 있어서 옷과 잡화를 분리해놨을 뿐, 한데 모아둔다면 결코 찾지 않을 공간이 있다는 것과 TV와 소파가 나의 하루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넓으면 좋은 거라 생각했던 내가 사치스러워졌다. 책에선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한 집, 팔기 위한 집, 많은 걸 할 수 있는 집에 대한 고민을 할게 아니라 '삶을 닮은 집'이 필요하다고.


삶을 닮은 공간)

만약에 집이 내 삶과 아내의 삶을 닮는다면 어떤 모습과 분위기일까? 찾아오기 편안한 공간이면 좋겠다. 딱 봐도 우리가 주인 같았으면 좋겠다. 정돈되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뻔한 배치가 아니면서도 효율적인 동선을 가졌으면 좋겠다. 쉴 때 푹 쉴 수 있고 일할 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간이 넉넉하다면 텅 빈 느낌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의지가 되는 존재였음 좋겠다.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꾸준했으면 좋겠다. 사랑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어찌 문제가 없을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해 해결해나갈 힘이 있다면 좋겠다. 꿈을 꾸는 공간이면 좋겠다. 할 도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존중이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식이 생긴다면 또 다른 매력의 공간이 될 것이다. 현명한 공간, 편안한 공간, 놀이의 공간, 배움의 공간, 농담의 공간, 사랑의 공간, 맛있는 공간, 향기로운 공간, 배꼽 빠지는 공간, 설레는 공간, 존중의 공간, 우리의 공간.


구체적인 실천사항)

거실 구조를 마음껏 변경시켜봐야겠다. 전통적인 구조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안정적이지도 않다.

되도록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붙여두자.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까지가 목표다.

낭비는 당연히 반대한다. 하지만 삶을 닮은 모습과 분위기를 몇 배로 살릴 수 있는 소비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거짓 없이 솔직한 대화와 마음으로 가득하도록 해야겠다. 표현에 어색해지지 않겠다.

관심을 가지고 돌볼 것이다. 단, 집착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옷을 꽤 처분해야겠다. 있으면 언젠가 입겠지는 보관할 때 일만 많아지고 자리만 차지한다.

방 문을 걸어 잠그고 꿈을 꾸거나 집중하기보다는 거실이나 부엌에서 편하고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좋겠다.

책 읽는 자세가 더 편하고 찰떡같았으면 좋겠다. 읽는데 허리가 아프다는, 읽고 싶은데 읽을 것이 없다는 어리석은 핑계가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

정리에 예민해질 순 있지만 하면 된다. 그냥 하면 되는 거다.

뭘 하든 함께 사는 공간이다. 평생 명심할 부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떠나는 것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 눈에 밟혀서 미치겠는 공간이 생기면 과감히 결심하자.

실수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릇을 깨는 건 매번 나다.

계절별로, 기분 별로 우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자. 우리 집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음식, 간식이라던지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휴일을 보낸다던지. 적극적으로 우리 집을 활용하고 특색 있게 만들어 보는 것이다.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나와 아내와 언젠가 있을 아이가 각자 놀이 또는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 다 함께도 좋지만 때론 다 함께 때론 우리 서로 각자가 더 건강한 관계라는 걸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공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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