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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n 27. 2020

주어진 28일

'다름의 공존'에 대해서



비슷할 순 있어도 똑같을 순 없다. 나는 비슷하면서도 참 많이 다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달라서 오히려 흥미롭고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이 생기 넘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다를까 우린. 이 부분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정리해본다면 현명한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수없이 다양한 부분에서 서로 다른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건강하게 공존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걸? vs 근데 혹시 그럴 경우에...

아내는 하고 싶은 게 많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기꺼이 도전해보는 여자다. 한 번은 꽃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더니 꽃 선물이나 꽃에 담기 이야기, 꽃을 잘 키우는 방법, 좋은 흙을 활용하는 방법, 옮겨 심는 방법 등에 대하여 깊게 파고 들어갔다. 도자기에 관심이 생겼을 땐 직접 빗고 그려 넣고 칠하면서 아름다움을 몸소 느꼈다. 한 번쯤은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에 직접 브랜드를 기획해보기도 하고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 있는 개인 출판사도 운영 중에 있다.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 세상에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할 줄 모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저 찾아보고 물어보며 배우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걱정 투성이다.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강한 편이다. 물건을 사는 것부터 결코 쉽지가 않다.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일일이 비교하고 실속 위주로 고려한다. 나름의 계획이 세워진 상태일 때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할애하고 항상 만약의 경우를 상상한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피곤하고 꽉 막힌 스타일까진 아니지만, 언제나 원하는 걸 시도해보고자 하는 아내에게 있어서 아마도 나는 꽉 막힐 정도로 주저하게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꽤나 치명적인 다름이다. 이로 인해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분명히 믿고 기다려주면 제대로 해낼 아내인데, 걱정이 앞서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지 못한다. 나의 이런 조심성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때때로 겪게 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금은 더 용감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우리는 훌륭하게 공존할 부부니까.


*문제를 해결하자. 이야기하자. vs 응 알았어. 무슨 말인 줄 이해해.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의 태도 또한 다르다. 아내는 문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무엇이 문제가 됐고 그래서 문제의 요점을 서로 인지할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려 한다. 나 역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정작 나의 서운함은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물어보고 이야기를 꺼내고 듣고 싶어 하면서 왜 나의 마음은 슬쩍 꺼내 보이는 걸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냥 이기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상처되는 말을 하게 될까 봐 조심하는 것도 있지만 어찌 됐든 나는 이기적이다. 불만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말하면서도 내가 느낀 서운함을 떠올린다. 내가 서운한 건. 그러면서 말도 못 할 거면서. 언제나 내가 원했던 관계가 바로 대화를 통한 극복이면서도 그럴 준비가 안된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인 게 정말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구성원 각자의 삶을 우선 시 하고 존중했어. vs 우리 집은 함께 하는 시간을 항상 우선으로 했어. 

가족의 성향 자체가 반대된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에 있어서도 달랐다.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다르다는 건 확실했다. 이는 각자의 가족들이 가진 삶에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이유가 있었다. 아내의 가족은 개개인의 삶이 우선이 되고 존중되는 은근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독립심이 강하고 개인의 시간을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품 안에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왔다. 책임감은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리지만 나름대로 잘 익혀왔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 시야를 가졌다. 여유가 있을 때나 바쁠 때나 언제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일정 비율 차지했었는데 나 스스로도 이런 부분이 의미 있고 뿌듯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초반에는 이러한 차이가 문제로 다가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살아가면서 오히려 서로의 가족 성향을 신기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적절히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당연하게 가정을 소중히 여기면서 무엇보다 단단한 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새롭게 취향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서 행복해! vs 취향이란 말 자체를 따로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아.

아내는 연애 초반부터 자신의 취미와 취향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낯설기도 했지만 작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멋있었다. 나는 나의 취미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 취향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오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와는 연결 지어본 적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먼저라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상대를 더 신경 쓰고 생각했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클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시간을 내어 고민을 시작했고 조금씩 구체화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도 점점 사느라 바빠 스스로에게 서툰 시기가 찾아왔지만 여느 때처럼 강하게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취향들이 새롭게 생기며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조금 달라졌지만, 아내는 여전히 신기하고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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