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민 Jun 29. 2020

주어진 27일

A부터 M까지 중에서



글쓰기 3일 만에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좋을지 막연했다. 나에 대한, 나의 삶에 대한 여러 파생되는 주제가 있을 텐데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이런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이 매일을 살면서 자연스레 고민해봤겠지. 그래서 가장 기본적이지만 막상 기록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을 나열하며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픈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뭘 견딜 수 있고 뭘 견딜 수 없는지, 나의 추한 모습, 인정하기 싫은 부분, 나만 아는 나의 단점은 무엇인지 A부터 Z까지 기록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기쁘고 슬프고 감동하고 분노하는 것에 대한 A부터 M 정도까지를 이야기해보겠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생활했느냐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다르게 점수 매겨진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스케줄에 '뭘 하자, 다음은 뭘 하고, 또 뭘 해두자'라고 정리해놓고 다음 날 차근차근 다 해놨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 참 좋다. 몇 시간을 자던 푹 잔 느낌을 받았을 때 기쁘다. 해야 될 필요가 있는 일을 미루고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가 뜨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신기한 버릇이 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다. 맛있는 밥을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군것질을 좋아하진 않지만 막상 입이 심심할 때 부엌 어딘가에 놓인 초콜릿을 발견하면 그렇게 좋다. 피부가 까만 편인데 가끔 컨디션이 좋을 때 얼굴이 덜 까매 보일 때 기쁘다. 월급이 딱 들어올 때 기쁘다. 관심 있어서 며칠을 고민해서 산 상품이 배송됐다는 문자를 받으면 기쁘다. 운동하면서 몸의 변화가 느껴질 때 기쁘고 기존에 입던 옷이 꽉 낄 때 기분 좋은데, 좋아하고 아끼는 옷이 몸에 안 맞으면 괜히 슬프고 아깝다. 오죽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아주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생리현상을 참지 않아도 될 때 기쁘다. 아내가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 기쁘다. 둘이 데이트하듯 이야기 나눌 때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 잡으면 설렌다. 가끔 부모님을 떠올리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빨래가 잘 건조되면 상쾌하다. 다림질이 잘 되면 내 상태도 정갈해진 것 같아 기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도 습하거나 너무 뜨겁지 않은 날 동네를 걸으면 행복하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퇴근길에 비가 쏟아지면 괜히 기쁘다. 오랜만에 필름을 맡겼는데 생각도 못했던 어느 날의 추억이 예쁘게 잘 담겨있으면 행복하고 설렌다. 아내가 집에서 쉬는 날 요리를 해주겠다며 시장에 다녀오라 시켜도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장 보러 같이 나갈 때 더 좋다. 야근 없이 일찍 오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이게 사는 맛이지 싶다. 친구들이 아내 잘 만났다고 말해줄 때 기쁘다. 잘 생겼단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 말 듣는 게 몇 번 없지만. 가식 없는 상대방을 마주할 때 기쁘다. 정이 많은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기분이 좋다. 늦은 밤 회가 먹고 싶다고 하면 주저 없이 나가자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어 좋다. 몸이 끈적거리지 않을 때, 보들보들거릴 때 좋다. 지폐를 어딘가 넣어둔 채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견했을 때 세상 기쁘다. 직장에 잘 다니고 있어서 기쁘다. 좋은 일이 많은 편인 것 같아서 기쁘다. 내가 기쁜 이유가 이렇게나 다채로워서 기쁘다.


 음식점에서 마지막 한 점을 놓고 눈치게임을 할 때 슬프다. 대놓고 말하는 편이다. 내가 먹든 누가 먹든 먹어치우자고. 잘 보이고 싶은데 머리 관리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슬프다. 혼자 밥 먹을 때 조금 슬퍼진다. 밥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티브이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뭔가를 속에 채워 넣는 기분을 느끼곤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손님들의 예의 없는 태도에 슬플 때도 있지만 사실 금방 잊는 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더 케미 있다고 생각되면 질투 난다. 점수에만 집착했던 학창 시절이 슬프다. 더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학생으로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것에 별별 핑계를 대고 있으면 슬프다. 내가 가졌던 꿈을 이루는 방법을 잘 몰랐었던 것에 슬프다. 더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계획했다면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전히 그쪽 분야의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궁금하다.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의도가 왜곡된 것을 깨달을 때 맥이 빠지고 슬프다. 돈 관리를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지출이 많은 날은 괴롭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슬프다. 소중한 물건일 경우엔 화도 난다. 뭔가를 제지하고 말리는 입장일 때 슬프다.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항상 오분, 십분 일찍 도착해 있는데 상대방이 많이 늦으면 슬프다. 전에는 마냥 기다리느라 시간도 아까웠는데 이제는 방법을 찾아서 좀 덜 슬프긴 하다. 오래간만에 하는 외출이라 설레는데 외출과 동시에 말다툼이 생기면 괴롭다. 사랑하는 이가 눈물을 보이면 나도 슬프다. 무엇에 슬퍼하는지 정리하고 있는데 자꾸 화가 나는 부분에 대한 것도 같이 생각나서 기분이 이상하다. 나에게 있어서 감동하고 분노하는 부분이 내가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단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굳이 뭘 하고 있지 않더라도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진심을 알아줄 때 감동받기도 하고, 솔직하게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관심으로 지속해서 위로해줄 때 그리고 맞춰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감동받는다. 가수의 진심 어린 노래를 들어도 감동하고 아이 또는 어른들의 순수한 표정이나 표현이 전해질 때 감동한다. 나의 경험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어떤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감동한다. 상대방이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위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느껴지면 감동한다. 나 또한 꼭 보답하고 싶어 진다. 내가 지향하는 인생을 담은 영화를 볼 때 명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감동하곤 한다. 


나는 거짓말에 분노한다. 해로운 습관들을 고쳐야만 직성이 풀린다. 내 마음과 큰 온도차를 지닌 마음을 받으면 마음이 식는다. 사실 마음이 식으면 분노도 식기 때문에 적절한 기록은 아니지만 외적으로 티 나는 분노가 아닐 뿐 내적으로는 서운함에 분노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 기록해본다. 말로만 하는 약속에 분노한다. 책임감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특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정이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지키지 못하는 면이 느껴질 때 분노한다. 예의 없는 행동에 분노하고,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해해보려 노력해도 그러지 못하겠는 부류에게 분노한다. 어른에게 반사적으로 투덜거리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고,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짜증 난다. 선입견이 무섭고 두렵다. 내가 달라져야겠다 다짐한 부분의 변화가 오래도록 느껴지지 않을 때도 분노하곤 한다. 나에게 있어서 분노는 꽤나 격한 표현이며 이것보다는 짜증의 단계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전 03화 주어진 28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