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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l 01. 2020

주어진 25일

나에게 평일이란



대화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끼익하고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니 벌써 내일이 월요일이야???"

"그땐 평일이라 당연히 어렵지"

"평일에는 일도 하고 야근도 할 수 있고, 피곤해서 뭘 하고 싶지가 않아"


순간 대화의 다음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생각에 빠졌다. 아,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평일이란 남들과는 참 많이 다른 개념이겠구나. 직업 특성상 스케줄 근무를 하는 나는 평일도 주말도 구분되어 있지 않다. 달마다 정해진 날에 지정된 노선을 담당하여 출근을 한다. 퇴근의 개념도 다르다고 하면 다를 수 있는 게 그날 출근해서 그날 퇴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출근을 하면 적어도 하루는 지나서 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시간이 가능한 날이 없어 학원 같은 곳에 등록할 수 없고, 주말에만 쉴 수 있는 아내나 친구들과 약속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래서 쉬는 날은 휴식보다는 해당 날짜에 시간이 되는 친구들과 미리미리 선약을 잡고 만남을 가지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나는 오히려 평일이라서 뭘 더 하고 싶다.


나는 평일에 더 잘 쉰다. 아침 일찍부터 아내는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나는 여전히 깨지 않는다. 아내가 나가는 소리에 잠시나마 잠의 흐름이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잠든다. 기상 후에는 미세먼지를 확인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오히려 장마철에 공기가 맑아 마음 놓고 열어둔다. 화분이 잔뜩 있는 베란다 쪽 창문을 열고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가슴 깊이 들어오면 그 기분이 그렇게 좋다. 다들 출근해서 일하고 있겠지? 이렇듯 약 올리는 생각은 덤이다. 주말이었으면 동네 놀이터에서 꼬마들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오늘은 평일이다. 학교에 가야 하는 평일. 맛집이나 좋은 카페에 여유 있게 방문할 수 있고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산책도, 출사도 좋아하는 나는 평일 아침 시간부터 오후 두 시까지 어디든 찾아가고 한적함을 즐긴다. 헬스장에 가도 빽빽하지 않고 시장에 가도 쾌적하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주로 다니다 보니 가게 사장님들과도 안면이 생긴다. 은행을 자주 이용할 수 있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봐야 할 업무도 거뜬히 처리할 수 있다. 도대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맞벌이 가족들은 누가, 언제 은행이나 시청 등에서 잡일을 수행할 수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한 시스템일까. 개인적으로는 안도가 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약간 색다른 경험도 겪을 수 있다. 낮 시간에 운동을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누르면 모든 층에 거의 한 번씩 멈추다가 한참 뒤에나 타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택배 배송 시간대와 겹치는 때이다. 내가 받을 택배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동네 꼬마들이 나를 학생 또는 백수 정도로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바깥에서 자주 마주치니 뭐하는 사람인가 싶을 거다. 돈 벌러 간 남편을 둔 나의 어머니와 돈 벌러 간 아내를 기다리는 내가 종종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평일에 시간이 많다 보니 야근하는 아내를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래 봤자 주말에 하루던, 이틀이던 나 없이 지내기도 하는 아내보다 나은 형편인데 그걸 아쉬워하고 투정 부린다. 내 스케줄이 다음 날 새벽 출근으로 잡혀있을 경우엔 그마저도 못 기다리고 일찍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근데 뭐 세상에 나 하나뿐이겠는가. 속상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조금 다를 순 있어도 좋은 점도 여럿 있기 때문에 만족스럽고, 내가 선택한 길 위에 펼쳐지는 상황에 잘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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