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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기자 Dec 17. 2016

#1. 불조심

폭염 속 사투, 소방관의 방화복을 체험하다

"삐~용 삐~용"


사회부 기자가 된 후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리가 생겼다. 바로 사이렌 소리. 그리고 소방서 컬러링. "불조심해요~ 불조심해요~♪"소방서에 전화를 걸어본 사람은 알 거다. 유난히 '쩝쩝' 거리는 소리나 볼펜 '딸칵' 거리는 소리 등에 민감한 사람은 정신병이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병은 아니었으면...


지난 1월. 수습기자 교육을 받으며 첫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소방 체크'였다. 2시간 간격으로 소방서에 전화를 돌려 불이 나거나 인명 피해가 있는지 체크하는 것인데 습관이 되지 않아 늘 소방 체크를 까먹고 선배에게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불이 나면 물어보는 것들은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이 났으며 인명 피해 유무, 피해 규모, 소방관 명수나 장비 출동 대수 등. 또 화재가 나면 사진이나 영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업 특성상 전화로 메일 주소를 불러주는 경우가 많은데, 쉽고 재미있는 메일 주소를 고민하다가 지금 나의 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 번은 소방서에 "CBS 김미성 기잔데요, 혹시 OO화재 사진이나 영상 좀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아~ 메일 주소 msg죠? 보내드릴게요"라는 답변을 받은 적도 있다. '역시 메일 주소는 쉽고 잘 외워져야 해'라고 속으로 되뇌었던 순간.

   



"실제로 방화복 입어볼 거죠?"

지난여름.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현장에 나갈 때 착용하는 방화복과 장비 등을 입고 찍었다.(사진=김미성기자)


지난여름이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날씨에 소방관 동행 취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취재를 하는 곳이지만 정작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에 손이라도 스치면 짜증이 날 것 같은 그런 날씨였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동행 취재에 나선 나 역시 땀을 뻘뻘 흘리는 그런 날씨.


소방관들은 취재 나온 기자가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실제로 방화복을 입어보셔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방화복과 장비를 챙겨 왔다.


그렇게 시작된 방화복 체험기. 처음엔 혼자서 입을 수도 없는 복장이었다. 게다가 나는 소방관의 도움을 받고 입었음에도 착용에만 3분이 넘게 걸렸고, 찌는듯한 더위에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산소통과 손도끼 등 장비는 또 어찌나 무겁던지, 소방관들은 40kg에 달하는 무게를 짊어지고 화재 현장을 뛰어다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순간 소방서 안전센터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딩동댕~" "화재출동, 화재출동, 유성구 학하동 야적장 화재"


소방관들은 신속히 1분도 안 돼 옷을 챙겨 입고 출동했다. (나는 3분이 넘게 걸렸지만) 다행히 이날 화재는 큰 불이 아니어서 금방 꺼졌지만,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고 며칠 동안 불길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탈진하는 게 다반사라고 소방관들은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소방관이 해야 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지?"였다.


내가 만난 송문근 대장은 "집 문이 잠겨서 열쇠로 따 달라거나 이웃집에서 쿵쿵거리니까 층간 소음을 없애달라, 누가 술 먹고 나를 때리려고 하니까 와서 말려달라, 부인과 아이가 없어졌으니 찾아달라는 등 다양한 신고가 소방관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에어컨이랑 텔레비전이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는 신고도 종종 들어온다"는 이야기였다.

화재 진압 후 소방차를 정비하는 소방관들(사진=김미성 기자)

'우리에게 119는 어떤 존재일까'란 생각이 아른거리던 때였다.


당시 썼던 기사. 방화복 체험 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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