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나보다는 나이가 여러살 아래인, 대학원 동문인 분을 알게되었는데 참으로 신비롭고 배울 점이 많은 분에 대한 이야기다.
"저에게 오늘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정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들어보실래요?" 두 번을 만났는데 눈을 반짝이며 이런 말을 하셨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 이 분 비범하다. 고 느꼈다.
두 번째 만난 날, 아니 어떻게 요즘의 일상에서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했더니, 본인은 일상을 감사하게 재미있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고 하신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와 재미로 바라보면 그렇게 삶이 다채로울 수 있다고.
앞으로 매일 글쓰기에서 나는
"오늘은 어떤 신기한 일이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오늘은 어떤 생각지도 못한 일이"로 글을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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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있었다. 이 감정을 무엇인가로.. 말미에는 표현해보기로 한다.
수술이 끝나고 요양원으로 왔다. 림프절 수술한 부분이 아프기도 하고 회복을 더 잘 할 필요도 있고 집에 있으면 집안일,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로 평화롭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음식 챙겨먹기는 말해 무엇할까 싶고.
요양원으로 온 날, 그러니까 수술 후 퇴원한 날 오전 회진에서 유독 통증을 느꼈다.
진통제가 이제 떨어져서 일 수도 있지만 묵직한 통증으로 꽤 힘들었다.
요양원으로 오니 여러명의 간호사분들이 오셔서 각자 필요한 것을 묻고 기록하고 가시는데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같은 방을 쓰는 어르신이 예배방송을 한시간 넘게 틀고 계셨다.
최근에 읽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떠올리며 지금 이 상황을 스트레스로 간주하지 말고 책에서 익힌대로 연습해보자 싶었다.
머릿속으로 우선 구상을 해보았다.
- 어디 수술 하셨어요? 여기에는 언제 입원하셨어요? 언제까지 계세요?
로 우선 얼마나 장기 입원하시는 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공감과 이해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다.
- 기독교이신가봐요. 저는 불교예요. 저도 불교방송을 아주 즐겨듣는데 너무 잘 되었어요. 그럼 시간을 정해놓고 저도 불교방송을 몇시간 틀고 들도록 할께요 이 점 배려 부탁드령…
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기에는 에너지가 딸렸다.
결국 혼자 시뮬레이션만 해보다 관리하시는 분께 방을 바꿀 수 있는지 여쭙고 다른 방으로 옮겼다. 하루종일 방송을 트는 방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요청드리고..
6일 목요일에 입원했으니 오늘이 벌써 3일째다.
입원날 통증도 사라지고 이제 낯설은 풍경도 영 어색하던 이곳의 시스템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시점에,
기독교방송을 한시간 넘게 틀고 계시던 어르신을 만났다.
“외래 잘 다녀오셨어요?”를 묻는데 “어제 외래 갔다왔는데”가 중첩되었다.
수술이 아주 잘 되었고 95%의 완치로 보이니 앞으로 5%만 잘 관리하면 된다.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진심으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타인의 좋은 소식에 이렇게 진심으로 울림을 느낄 수가 있나.. 같은 암환자라는 동질감인가 우리 아빠와 비슷한 연령대의 어머니라 그런가…
그런데 말씀을 이어 나가시기를,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올렸는데 그럼 그렇지. 너무 다행이야 기도가 닿았어”
순간,
모든 삶의 과정과 결과를 기도의 유무 또는 질에 따른 인과로 느끼는 어르신을 보는 나의 관찰자적 시각
이렇게 기뻐하시고 나도 기쁜데 나는 잠깐 1시간 여를 그 방에 있으면서 그 방송이 너무 듣기 힘들다고 나왔네 하는 미안함과 나의 충분히 못한 인내
가 복잡미묘하게 뒤섞이는 감정을 느꼈다.
딱 1주일 전, 백담사에 다녀왔다.
그때 스님께서 불교는 믿고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저도 싯다르타의 가르침처럼, 저도 아미타불의 삶과 같이 정진하여 그 길로 갈께요(이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불교가 아니므로 당시 들은 말을 제대로 적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라고 하는 약속의 뜻으로 기도하고 절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어쩌면 위의 어르신도, 열심히 기도를 올린 덕분에 항암을 하지 않아도 예후가 좋은 것이 아니라
어르신이 살아온 삶 자체가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강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어르신 스스로 자신을 더 축복하고 자신을 더욱 칭찬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