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제 삶의 신조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두 번째는 "할 말은 한다". 세 번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의 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무게와 깊이가 다르다"입니다. 3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가 믿는 신조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나눴던 내용은 컨피덴셜 한 내용이 많아 브런치에는 많은 가지를 친 투박한 버전이라는 양해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여느 언론 지망생과 마찬가지로 저도 대학 졸업 후 언론고시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고시는 고시였습니다. 몇 번의 낙방 끝에 꿈에 그리던 방송국에 합격했습니다. 1명 뽑는 TO였는데 운이 좋았죠. 회사 입사 후 '고생 끝, 행복 시작'이 펼쳐졌습니다. 퇴근하면 뮤직스쿨에서 음악도 배우고, 고급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도 하는 등 요즘 용어로 워라벨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직업적 대우도 좋았죠. 일도 잘해서 회사에서 주는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2014년 5월, 평안했던 제 삶을 뒤흔든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유출 사건>이었는데요. 뉴욕타임스가 내부 TF팀을 꾸려 6개월 동안 354명의 내, 외부 직원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입니다. 인터뷰 내용은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버즈피드, 허핑턴포스트 등에 밀려 망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블라블라~" 내용인데 디지털화에 가장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롤모델 프리미엄 언론 뉴욕타임스의 자기인식은 전 세계 언론인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유출 사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버즈피드가 뉴욕타임스의 유출된 문서를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죠.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번역본 전문을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요. 퇴근 후 제 자리에서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는데 가슴에는 전율이 왔고 머리는 망치를 때리는 듯했습니다. 이후 깨어 있는 국장님, 부장님, 선배들과 함께 뉴스 혁신 TF가 구성돼 출범하려던 찰나, 조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부에서의 변화는 힘들다고 판단돼, 정년보장 호봉제 슈퍼 철밥통 직장이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직장 밖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회사 계급장을 떼고 나니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사람들이 만나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앞다투어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전화도 잘 받지 않더군요. 이 기분은 알 사람만 아실 겁니다. '속지 말자. 회사의 브랜드가 내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려고 하는 건 회사 속의 ooo를 만나고 싶어하는 거다. 회사를 빼고도 먹힐 수 있는 내 이름 석자가 중요하다'는 뼈아픈 팩트를 덕분에 체득했습니다. 물론 퇴사 전 아무런 생각 없이 호기만으로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사업 아이템도 차곡차곡 준비했습니다. 당시 막 시작했던 네이버 포스트 메인에도 자주 걸리기도 했죠. 하지만 콘텐츠로 돈을 버는 건, 더군다나 뉴스 콘텐츠로 돈을 버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지출을 줄이려고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커피숍 지하에서 뉴스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두 달 정도 했는데 성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라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말이죠. 내 이름을 누가 알아준다고 맨바닥부터 목숨을 걸어서 콘텐츠를 만들어도 될까 말까인데, 저는 머리를 굴리며 안정적인 배수의 진을 치고 있던 겁니다. 이런 식이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모아둔 돈을 전부 투자해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를 생각하니 콘텐츠 하나를 만들더라도 더 절박해졌고 간절해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 스튜디오인데요. 사진으로는 이뻐 보이지만 여름에는 무지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춥습니다. 집에 오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스튜디오에 텐트를 치고 먹고 잤습니다. 텐트의 역할은 한파를 막아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난방이 안 돼 히터를 켜도 너무 춥기 때문에 텐트에 들어가지 않으면 겨울에 버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자기 전에 생수를 텐트 밖에 놓고, 자고 일어나면 생수에 살얼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더군요)
지금은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습니다. mcn이라는 지금은 한물간 단어도 당시에는 새로운 핫한 단어였죠.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3개월 정도 매일 콘텐츠를 제작하자, 조금씩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왜 이리 오래 걸렸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단기간에 팔로워나 좋아요를 많이 받는 방법은 쉽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인터뷰이를 섭외해 스토리만 잘 뽑아내면 됩니다. (물론 이것도 어렵지만) 하지만 이렇게 얻은 좋아요나 팔로워는 내가 만든 개인의 브랜드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인터뷰이에 대한 리액션인거죠. 이점이 중요한데요. 영어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다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착각을 주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콘텐츠 제작자나 회사들이 많습니다. 저는 더디 가더라도 제 개인의 브랜드를 신뢰하는 한 명 한 명 구독자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텐트에서 먹고 자며 5개월이 지났을까요, 제가 처음 타깃으로 했던 밀레니얼 친구들에게서 긍정적 반응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뉴스를 쉽고 재밌게 전달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제 작은 소망이 현실로 나타난거죠.
6개월째부터 몇몇 기업들과 브랜디드 콘텐츠도 찍고 다음 스토리펀딩도 했습니다. 좋았죠. 하지만 지속 가능한 BM을 만들기는 어려웠습니다. 모아둔 총알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요. 2년간 쓴 돈을 합쳐보니 대략 8천만 원 정도 지출을 한듯하네요. 재미와 의미가 있더라도 촘촘한 BM이 바탕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뉴스를 베이스로 교육사업으로 확장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찰나, 국가기관 통신사에 기자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조직을 새롭게 바꿔보자는 부장님의 신념에 공감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계를 느껴 퇴사를 했습니다. 당시 더 이상 '기자'로서 조직에 속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데요. 이 글을 통해 다른 기업에서 좋은 오퍼를 주셔서 현재는 기자가 아닌 뉴스 기획, 전략팀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 업무와 직무에 대해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론고시를 통해 들어간 첫 회사에서 안정만 추구한 채 만족했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모 그룹의 회장은 젊은 시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못 번다. 가치를 좇으면 돈은 알아서 따라온다." 제 신념인 "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행복의 비결은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있지만 제가 잘 하는 한 가지는 포기할 것을 잘 포기하는 겁니다. "성공하겠다!"는 생각의 포기, "돈을 많이 벌겠다!"는 포기를 한뒤 가치에 집중하다 보니 행복과 영향력, 돈이 조금씩 따라오고 있습니다. 쉽지 않고 리스크도 높은 여정이지만, 발걸음을 함께 내딛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장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