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날의 하니랜드
월요일부터 기분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금요일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토요일이 시작됐지만
기분이 없는 사람은 일어날 이유도 없다
그렇게 있다 보면 일요일이 온다
보자 보자 내 기분이 지금 어디쯤에 있지?
이틀 정도는 더 사라진 기분을 찾아 헤매고 싶지만
마음이 조급하고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면 가는 곳이 있다
처음 이곳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파주 출판도시를 마음에 두고 달리다가 근처에 저수지가 있길래
한적한 곳에서 책이나 읽을까 하고 들어선 곳에
꿀벌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좋은 곳은 없지만 놀이동산은 정말 그렇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기준이라면 이곳은 최고의 놀이동산이다
처음 간 것은 작년 11월
비수기에 코로나가 더해져 하니랜드 내 매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핫도그 하나 먹고 싶었는데.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집에서 가난한 김밥을 싸 갖기 때문이야
이 가난한 김밥은 내가 좋아하는 요리인데
설명할 필요도 없이 구성물이 사진과 같다
마음이 가난한데 돈가스 김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나
김밥을 먹고 나서 한 일은 바이킹 탑승이다
무료한 표정의 매표소 직원에게
어른 한 명이요.라고 말하고 바이킹 티켓을 샀다
4천 원.
터무니없이 한가로운 놀이동산에서는
손님이 둘이 있든 셋이 있든 손님이 있든 없든
신경쓰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하니랜드에서 무언가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내가 탈 차례가 아닌 나와 동승해줄 사람이다
바이킹이 앉아서 몇 명이 더 올라타길 기다리면
나른한 아르바이트생의 안전바 확인과 함께 바이킹이 움직인다
붕 부웅 부우웅 부우우웅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는 바이킹 끝자리에 앉아서
나는 찾고 있던 것을 찾았다
며칠간 아무리 찾아도 없었던 내 기분
내 기분 여기 있었네
그래서 소리도 질러보았다
악 아악 아아악 아아아 아악
마스크 안에서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바이킹이 섰고 다시 매표소로 가서
어른 한 명이요. 를 외치고 바이킹 티켓을 한번 더 샀다
이런 곳이 있다니
누가 나 대신 내 기분을 올려준다니
이런 곳을 내가 찾아내다니
그렇게 만난 하니랜드는
그날부터 마이랜드가 되었다
우울한 날의 마이랜드
지친 육신을 위한 꿀 같은 땅.
두 번째로 갔을 때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다섯 개 타는데 15000원이니까
무려 5천 원이나 아낄 수 있다니까
하니랜드에는 열개 정도의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중 성인이 탈만한 것은 네 개 정도
나는 바이킹과 회전 풍선과 상승 하강하는 우주선과 비행기를 좋아한다
일단 시작은 바이킹
가장 높이 올라가면 놀이동산과 저수지 전체가 보인다
우울함도 빠이~킹
알록달록 귀여워서 우습게 생각했지만
역시 스릴감을 줬던 회전 풍선
한편에는 노동을 쉬고 있는 오리배들도 볼 수 있다
편해 보인다
물보다 땅에서 자유를 찾은 아이러니라며
노동자의 시선으로 감정 이입해본다
그리고 얼마 전, 처방이 시급한 어느 날
세 번째 하니랜드를 갔고
일 년에 세 번 방문한 놀이동산이니까
살면서 가장 많이 가본 놀이동산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상당히 날씨가 좋고 위드 코로나 시작과 함께였는데도
역시나 한가로웠던 마이랜드..
응 반겨줘서 고마워..
이 날도 빅 5를 끊고 소리를 지르다 왔다
놀이기구도 단풍도 이제 팔기 시작한 솜사탕도 마음에 들었지만
권태로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파리채,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쥐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무료해도 괜찮고 물장구치지 않아도 가라앉지 않는 곳
정신이 쏙 빠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다
집에 들어와 고꾸라지는 날에는 문득
하니랜드에 가고 싶다
세상 어딘가에 심지어 가까이에
이렇게 느리고 텅 빈 곳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