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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난 Jan 12. 2019

공동거주 실험: Home이란 무엇인가

집에서 배운 것

 '언제 결혼을 할 것인가',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라는 일생일대의 질문이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 것은 서른 중반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3년째 독립생활을 하던 중 사정이 생겨서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는데 엄마 아빠의 울타리 속에서 웅크리자 안정감이 곧바로 찾아왔지만 얼마 안 가서 답답함도 방 문을 두드렸다. 혼자 살던 집은 원룸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공간의 크기로 치자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 곳이 더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갑갑했다. 끼니를 챙기는 일도 혼자 살 때보다 훨씬 덜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여유가 없었다. 주체적인 공간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 공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니 결혼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즈음에 내가 친구들에게 떠들던 가족 혁신 궤변이 있었는데, 바로 청소년 입양이다. 대다수의 싱글 직장인들처럼 나 역시 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의 굵직한 복지혜택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자녀 교육비 보조, 출산휴가, 결혼축의금, 조의금 등의 복지 혜택 중 가장 아쉬웠던 것은 금액적으로 가장 큰 자녀 대학 등록금 보조였는데, 50세가 넘은 사람이 희박한 광고계 업종에서 이 혜택을 받는 사람은 전사에서 5퍼센트를 밑 돌았다. 그나마 그 5퍼센트의 대부분은 고연봉의 임원들이 채우고 있었다. 지난 회사에서는 5백 명이 넘는 직원 중 단 한 명만이 장성한 대학생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는데 그는 회사의 오너였다. 이런 구성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자녀 교육비 대신 직원 본인의 교육비나 직원 부모를 위한 교육비 보조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광고업계에서 네 개의 회사를 옮기는 동안 그런 복지를 가진 회사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받을 수 있지만 아마도 퇴사 시점까지 받기에 틀려버린 이 자녀 대학 등록금 보조 혜택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청소년 입양이다. 대기업의 미혼남녀 또는 무자녀 커플이 등록금이 부담스러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부모 없는 청소년들과 호적에서 연합하는 프로젝트. 애청했던 미드, <그레이스 아나토미>에서도 그레이 병원의 잘 나가는 미혼 의사는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죽이 척척 맞고 훤칠하니 잘생긴)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심장수술을 받게 되자 서류상 혼인절차를 밟아서 본인의 놀고 있는 의료혜택을 나눔 한다.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예상대로의 이야기지만.)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사회 체제와 주변 시선에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시스템이 주는 혜택으로 통 크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어있는 내 호적에 한 줄을 올리는 것 만으로 청소년의 꿈을 돕는 동시에 기업의 사회공헌도를 높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월급루팡 위에 복지루팡 있다!

 당장에 청소년을 입양할 용기는 없어서 친한 친구 둘에게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꾸려보고 싶다고 웅변하다가 그 자리에 있던 둘과 함께 살아보자 제안했다. 그럼 어떤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그 자리에 있던 세명이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이른바, 공동거주 실험 프로젝트. 에어비앤비로 집을 하나 빌려서 친구 3인이 열흘간 함께 살아보는 것. '함께 먹고 따로 잔다'는 규칙 하에 거실 하나, 주방 하나, 방 세 개인 집에서 함께 요리해서 함께 먹고 따로 자고 따로 출근하지만 같은 곳으로 퇴근해서 논다는 추억의 <남자 셋 여자 셋> 포맷에 남자 셋만 제외되어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말이 나온 다음 날 열심히 검색을 해서 집을 알아봤고 바로 예약을 했고 그다음 날 짐도 안 싸온 채로 입주를 했다. 그렇게 열흘간의 공동거주가 시작됐다. 들뜬 마음의 세명이 낯선 집에 둘러앉았다. 우리는 이 실험 끝에 꾸리고 싶은 가정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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