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사를 간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 더 자주, 밥을 먹으러 오라는 말을 해서는 퇴근길에 버스를 타고 엄마 집으로 향하는 일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이사 간 집 근처에는 재래시장이 세 개나 있는데 엄마랑 아빠는 거기서 장을 보는 게 신난다고 했다.
딸, 그 굴이 얼만지 알아?
딸, 이 무화과가 한 박스에 얼만지 알아?
딸, 갈치가 열 마리에 얼만지 알아?
딸, 꽃게가 한 박스에 얼마지 알아?
딸, 들깨가 이 만큼에 얼만지 알아?
굴전을 씹어 삼키면서 구운 갈치를 입에 넣고 간장 게장을 밥 위에 올리면서 들깨 버섯국을 바라보며 내가 대답을 준비한다. 누구라도, 무언가를 들이밀며 그게 얼만지 아냐고 물을 때 우리는 얼마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머릿속에 2만 원이 그려지면 3만 원!이라고 대답하면 되고, 머릿속에 10만 원이 그려지면 15만 원?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렇게 화목함은 탄생한다. 쩝쩝거리고 씹으면서,
2만 원!
음, 3만 5천 원?
만원?
이라고 과장된 숫자를 쏟아내자 엄마가 신나게 대답했다.
땡! 그건 4천 원!
땡! 그건 5천 원!
땡땡땡! 그건 3천 원!!
아빠가 같이 쩝쩝대면서 대답한다.
얘, 여기 이사 와서 5천 원 이상을 꺼내본 적이 없다.
아니, 흥이나 맞추려고 과장된 숫자를 쏟아냈던 건데, 뭣? 5천 원? 4천 원? 3천 원?
예전 살던 동네에도 매일매일 세일을 때려대는 할인마트와 대형마트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고등어 한 도막도 돼지고기 요만큼도 얼마 얼마여서는 엄마는 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고 했다. (나도 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이 동네는 아침 일찍 장을 보러 가면 싱싱한 식재료들이 가득가득하고 어느 가게에서도 5천 원 이상을 낼 수가 없고 저녁에 해질 무렵에 장을 보러 가면 그 싱싱했던 식재료들이 한풀 꺾여 있는데 꺾인 만큼 떨이 세일을 해대서는 어느 가게에서도 3천 원 이상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은퇴한 노부부도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누비고 장바구니가 터져나가라 장을 봐서 오는 것이다. 식재료를 가득가득 집안에 채워두고 아침밥의 1차로 사과와 바나나를 넣고 갈아 주스를 마시고 아침밥의 2차로 콩밥과 고깃국과 5첩 반상을 차려 먹는 것이다. 내가 사준 주전자 정수기 따위 치워두고 맛있는 삼다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다. (심지어 삼다수 가격이 쿠팡보다 싸다!) 물가 비싼 동네의 우리 집에 가져갈 김치와 쌀을 야무지게 챙기면서 새삼스럽게 장바구니 물가가 얼마나 중요한가 실감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된 덕분인지 엄마의 뾰족한 잔소리가 확 줄었고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된 덕분인지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고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된 덕분인지 세 명의 공통 대화 주제가 생겼고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된 덕분인지 작은 집에서 풍요로운 저녁을 보냈네.
은퇴 후에 살 곳은 풍경이 좋은 곳도(중요) 치안이 좋은 곳도 아니라(중요) 식재료가 저렴한 곳이라는 (완전 중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