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시절, 우리 본부 상무님은 지식이 많고 수줍고 유머가 있는 분이었다. 소설을 추천해주시고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분이었다. 유일하게 좋아했던 상사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에도 딱 하나 아쉬웠던 점이 그 분과 더 이상 대화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회사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님도 그만두셨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이런 말을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오.
이 이야기를 듣고서 한참을 웃었다. 그분을 동경한 이유에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떠서 사는 듯한 분위기도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그런 삶의 태도가 축약된 멋있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은 나도 오랫동안 동의해온 생각이다. 외할아버지가 95세의 나이로 수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시는 것을 본 이후부터는 건강하고 즐겁게 살다가 60살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자 안락사가 허락된 나라의 이야기라든가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항의하는 의미로 동반자살을 한 노년의 커플 이야기 또는 먹으면 피가 빨리 돌아서 죽게 된다는 약초 이야기 등이 관심 있게 들렸다. 45세까지 얼마를 모으고 그다음엔 한 달에 얼마씩 쓰면 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언제든 원할 때 원하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찾은 것처럼 몇 차례 홍이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 몇 번은 “그런 말 하지 마. 건강하게 오래 살자. 육십 살에 같이 스페인 놀러 가자”라고 좋게 이야기해줬던 홍이 그 날은 심각하게 말했다.
노난, 그런 말 하지 마.
정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술잔으로 고개를 떨궈버리는 표정을 보니 나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 같이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홍이 왜 우울해졌는지 잘 몰랐다.
몇 달이 훨씬 지나고 내 가까운 친구와 선배가 많이 아팠다. 한 명은 아픈데 병원이 무서워서 안 간다 했고 한 명은 아픈데도 회사에서 무리하게 일을 시켜 딱 죽을 거 같은데도 대안이 없으니 그만두지 않는다 했다.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화가 나서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처럼 화를 냈다. 한 명에겐 눈앞에서 고성을 질렀고 한 명에겐 카톡으로 독한 말을 내뱉었다.
왜 이렇게 몸을 함부로 생각하지.
왜 이렇게 소중한 게 뭔지 모르는 거지.
왜 이렇게 주변 사람을 생각하지 않지.
라는 마음에 아주 마음껏 화를 내며 잘난 척을 했더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엔 가까운 사람이 자식이 있다면 모를까 나이가 들자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서 죽어도 괜찮을 거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가만히 앉아 듣고 있자니 나도 놀랄 정도로 슬퍼져서 소리내 울었다. 이 사람에게 나는 뭐지.
그러자 드디어 후회가 됐다. 친구들에게 내뱉었던 말,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말했던 것, 생에 큰 애착이 없는 듯 말했던 것, 그것이 내 신념이라고 생각했던 것, 모든 것이 후회가 됐다. 내가 한 말을 몇 차례에 걸쳐 그대로 돌려받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었다. 한순간에 무기력해졌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오. 이 말은 의도와 관계없이 꽤나 쓸쓸하고 공격적인 말이었다.
여전히 감정이 앞서고 허튼소리를 결론인양 내뱉으면서 살고 있지만 후회를 한 김에 다짐해본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다는 것이 인생에 애착이 덜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가족이 없다는 것이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네가 나의 살아가는 의미지"라는 말은 못 듣더라도 적어도 함께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동기부여는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진지하고 즐겁게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