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내 차를 발견한 후 견인해 갔고 그렇게 자동차 도난 사건 다음날부터 나는 뚜벅이 신세로 전락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집을 나서서 기차를 타고 출근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이고 신속 정확한 지하철이나 기차가 없어서 한번 기차를 놓치면 15분은 기다려야 하고 그 마저도 종종 취소가 되거나 지연이 된다. 그래서 자동차로 20분 걸려서 갈 거리를 1시간 일찍 집에서 나선 것이다. 문제는 제약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제약회사가 끝나고 오후에 한식당으로 가는 것이었다. 제약회사에서 한식당까지 곧장 가는 기차나 버스가 없을뿐더러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족히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다행히 제약회사 사장님께서 본인의 봉고차를 빌려주셔서 난생처음 커다란 차를 몰고 다녔다.
사건 발생 2일 후, 차량에 있을 수 있는 범인의 지문검사를 마쳤다며 차를 찾아가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다만 찾으러 올 때 스크루 드라이버를 가지고 오라며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차를 막상 찾으러 가 보니 뒷좌석 사이드 유리가 깨져있어 유리 파편이 차량 내부 곳곳에 흩어져있었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 키가 들어가서 시동이 걸리는 부분이 완전히 훼손되어 망가져 있어서 차키를 꼽을 수가 없었는데 스크루 일자 드라이버를 어딘가 쑤셔 넣어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고 직원은 내게 설명해주었다. 키가 없어도 드라이버 하나로 차 시동이 걸리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직접 보니 너무 허무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차가 이런 허술한 녀석이었다니 괜한 배신감이 몰려왔다.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면서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나는 차를 찾은 즉시 주변에 있는 한인 정비소에 들어가 차를 보여주고 가격을 물었다. 내게 돌아온 답변은 깨진 유리와 시동 거는 부분 수리비만 차키 교체비용을 제외하고 족히 1000불 이상은 나올 거라는 말이었다. 도난 화재 보험이 없던 나는 이미 견인비 30만 원을 일시불로 낸 상황이었기에 수리비로 10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그 정비소에 도저히 내 차를 맡길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 블록에 위치해있던 칠레인 아저씨가 하시는 정비소에 가보니 깨진 유리 교체비, 시동 부위 수리비, 차량 알람 시스템 설치비용까지 60만 원에 전부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심지어 차키 시리얼 넘버가 차 바닥에 떨어져 있었기에 차키를 바꿀 필요도 없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날 저녁, 차를 맡긴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차 수리 및 알람 설치까지 전부 끝났다는 문자는 받았다. 가격도 싼데 이렇게까지 빨리 고쳐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느리고 인건비가 우주 끝까지 찌를 정도로 비싼 뉴질랜드에서 이 가격에 이렇게 빨리 일처리를 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다음날 차를 찾고 60만 원을 일시불로 지불했다. 견인비까지 도합 90만 원이 들어 간 이번 사건. 거지와 도둑에게도 복지가 넘쳐나는 뉴질랜드 시스템 덕분에 범인을 잡을 확률은 0.01퍼센트다. 피해를 본 사람이 고스란히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내야 하는 곳. 범인을 잡아 혼내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혹시 차에 중요한 물건을 놓고 내린 것 아닌지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주차한 것은 아닌지 등 운전자의 부주의를 먼저 의심하는 아무 정의로운 나라의 시민들이다.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조차 박약한 경찰들은 하는 일이 주차나 속도위반 벌금 딱지를 떼는 일뿐이다. 하는 일이 없어 돼지라고 불린다는 뉴질랜드 경찰. 정말 알면 알수록 대단한 나라다.
이번 사건으로 배운 것은 차량 알람은 필수로 설치해야 하고 보험은 필수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뉴질랜드는 사건사고 용의자를 잡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방범용 카메라는 4거리 도로에 콩나듯 하나씩 있을 뿐이고 블랙박스를 설치한 차량을 찾기가 어렵다. 도둑은 많은데 그에 따른 사회적인 안전망이 너무나 허술한 나라.자동차 유리를 깨서 1달러짜리 동전 하나를 훔쳐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 차량을 훔쳐 도주해도 경찰에게 붙잡힐 리 없어, 도둑이 도둑질 하기 안성맞춤인 나라. 기적이 일어나 경찰에게 도둑이 붙잡피더라도 돈 없으니 배 째라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라다. 뉴질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