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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Aug 22. 2021

감염자 1명에 다시 4단계 락다운


전 세계가 2년 가까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동안, 뉴질랜드는 애초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마스크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뉴질랜드 자국민이 아닌 이상 이, 나라에 들어올 수도 없고, 일전에 이미 들어와 살고 있던 나 같은 외국인들도 한번 뉴질랜드에서 발을 떼면 다신 돌아올 수 없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던 초기, 따라 아주 빠른 속도로 인도인의 입국을 막아버렸고 (시민권자 여부에 상관없이 국적이 인도인이거나 인도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무조건 뉴질랜드에 입국할 없다) 그렇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는 역시 코로나 방역 확산의 모범국이라며 어깨를 으스대던 뉴질랜드였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뉴질랜드 오클랜드 북쪽에 위치한 데본포트에서 50대 남성이 원인 모를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고 이로 인해 뉴질랜드는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외국에서 유입된 사람이 아닌, 그냥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에게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이 사람이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되었는지 알 수 없고 또 감염된 상태에서 본인조차도 감염된지도 모르고 마트 장을 보러 가거나 일을 하러 가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기에 정부는 마치 사시나무 떨듯이 바로 가장 강력한 조치인 락다운 4단계를 경보 발령하며 국민들은 또다시 방콕 하는 신세가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감염자 1명에 나라 경제가 마비되었지만 사실 그다음 날에는 감염자가 4명, 그다음 날에는 10명 이렇게 숫자가 늘어갔기 때문에, 락다운을 바로 실행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코로나에 걸렸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도 없이 주 7일 내내 일만 하던 나에게 무려 7일이라는 휴가가 주어졌다. 지난번처럼 정부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기 때문에 이건 마치 유급 휴가나 다름없다. 락다운 1일 차, 그동안 찍기만 하고 편집할 시간이 없어 미뤄오던 영상편집에 하루를 전부 소비했다. 그리고 2,3일 차에도 영상 편집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거려 영상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올빼미족이던 나는 휴가를 얻은 김에 늦잠도 자고 싶었으나 그동안 수개월에 거쳐 일어나던 기상 시간 덕분에 알람 없이도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눈이 떠졌다. 하루 종일 영상 편집을 마치면 저녁에는 영화를 본다. 어제오늘, 한 달 전에 마트 장을 보다가 사 두었던 팝콘도 전자레인지에 튀겨 먹으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봤는데 세상에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여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중이다. 락다운 5일 차, 이제 영상 편집도 거의 끝났고 냉장고에는 먹을거리도 동이 나고 있다. 예전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반 동안 열심히 수다를 떨고 보니 해가 떨어져 밖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이번 락다운은 일단 1주일간 이어지지만 만약 감염자 숫자가 줄어들지 않으면 락다운은 연장될 확률이 더 높다. 이제 슬슬 좀이 쑤셔 밖에 나가고 싶지만 동시에 또, 이왕 이렇게 쉬는 거 한 주 더 쉬고 싶기도 하다. 유급 휴가는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쉬는 날 하루도 없이 일주일 내내 소처럼 일만 하던 내게, 7일간 휴식은 꿀 같은 시간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탈레반에게 자유를 빼앗겨 비행기에 매달리다 떨어져 죽기도 하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는 코로나 시대에서도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살고 있다. 2021년 현재, 누군가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일상. 코로나 걱정 없이, 결혼과 육아 전쟁 없이, 탈레반의 위험 없이,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천운을 타고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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