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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룸 업그레이드가 독이었다

스페인 - 바르셀로나

by 너나나나

싱글룸 업그레이드가 독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툴루즈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데 출입국 심사를 하지도,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도 않은 채 버스가 그대로 쉬지 않고 달렸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있었고 이렇게 국경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도 되나 싶은 수준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를 서울에서 인천 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새벽 6시, 마침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새벽어둠을 뚫고 호스텔까지 걸어서 갔다. 너무 일찍 호스텔에 도착한 탓에 체크인(Check in) 시간인 오후 2시까지 로비 휴게실에서 방을 배정받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택시비가 아까워 무거운 가방을 메고 30분이나 걸어서 호스텔에 왔더니 피곤했던지, 휴게소 테이블에 엎드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젯밤 밤새 국경을 넘어오느라 샤워도 못 하고3이 도서관에 엎드려 자는 것처럼 불편한 자세로 4시간 넘게 잠을 잔 것이다. 배가 고파 일어나니 어느새 점심시간. 잠시 밖에 나가 호스텔 주변 있는 구멍가게에서 빵 하나를 사고 다시 돌아온 시간이 오후 1시. 슈퍼에 가니 프랑스에서 먹었던 그리운 카스텔라 빵과 똑같이 생긴 빵을 발견한 나는 '역시 프랑스 바로 옆 나라라서 같은 빵을 파는구나!'라며 기쁜 마음으로 그 빵을 사 왔지만, 맛이 다른 것을 둘째치고 빵 자체가 너무 맛이 없어서 다 버려야 했다. 그렇게 허기만 대충 달래며 6시간 넘게 휴게실에서 버티고 있던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직원은 1시간 일찍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직원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방을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나의 의사를 물어왔다. 6인 공용 침실을 예약했는데 싱글룸으로 업그레이드라니. 당연히 YES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가 보니 작은 방에 싱글 침대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물론 호텔처럼 호화로운 방은 아니었지만 일단 앉거나 엎드리지 않고 두 발을 뻗어 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짐을 풀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누워있는 것도 잠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신념 하에 공용 샤워실에서 목욕재계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도착 7시간 만에 드디어 바르셀로나 시내로 얼굴을 내밀었다.

유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바르셀로나, 파리처럼 소매치기가 빈번하다고 하지만 다행히 여행 내내 허름했던 내 가방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길게 이어진 이 람블라스 거리에는 각종 기념품, 씨앗, 엽서,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거리 자체가 예술가들이 돈을 버는 주요 무대였다. 행위예술가부터 화가, 캐리커처 그리는 사람, 가위로 얼굴 모양 따라 그림자 만들어 내는 사람, 기타 치는 사람 등 볼거리가 풍부해서 바르셀로나에 와서 이 거리만 걸어 다녀도 눈요기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이들을 상대로 마블 캐릭터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거나 피에로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신없이 화려한 불빛과 분주한 예술가들로 온종일 휘몰아치는 람블라스 거리, 그러나 그런 군중 속에서 혼자 걸으며 세계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주변에는 온통 연인이나 가족, 친구끼리 여행을 온 사람들뿐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안아주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이 예뻐 보이면서도 부러웠다. 그동안은 항상 현지 친구들과 있거나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거리를 걷다가 재밌는 것을 봐도 함께 웃을 친구가 없었고 혼자 웃고, 먹고, 지내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해산물 볶음밥 빠에야를 혼자 쓸쓸히 먹은 후 호스텔로 돌아오니 외로움은 배가 되었다. 도미토리였다면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라도 나눴을 텐데, 덩그러니 혼자가 된 나는 불과 며칠 전까지도 함께 매일 웃고 떠들던 봉사활동 멤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싱글룸으로 업그레이드되어 기뻤던 것도 잠시, 바르셀로나 전 일정에 걸쳐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날, 오늘은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스페인 현지인 아리아(Aria)를 '헬로 톡(언어교환 어플)'을 통해 만나게 되어 같이 놀기로 했다. 이 친구는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모델 활동을 하는 친구였는데,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춤을 전문적으로 추기도 한다고 했다. 분홍치마에 흰색 발 토시, 속옷이 비칠 것 같은 하얀 민소매 셔츠를 입고 나타난 키 큰 여자. 이 친구는 한눈에 봐도 모델이구나 싶을 정도의 아우라가 있었다. 아리아와 함께 걷는 동안, 최소 5분에 한 번씩 남자들이 이 친구에게 추파를 던지곤 했다. 자전거를 탄 남자들이 아리아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면서 지나가거나, 연락처를 달라고 다가오던 남자들도 있었다. 칭찬하는 것뿐만 아니라, 휘파람을 불거나 입을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놈들도 있었고 어떤 놈들은 아리아에게 성적으로 모욕적인 욕을 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남자들이 항상 이러면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대답은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있어서 이젠 무감각해졌다고 대답했다. 물론 남자들이 나한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옆에서 대리체험을 해 보니 나는 저렇게는 절대 못 살 것 같다고 느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서 쳐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성희롱에 가까운 수준의 언행을 서슴없이 하는 남자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열린 사고의 유럽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면상을 앞에 대고 욕을 하고 성희롱을 발언을 주저 없이 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아리아와 오늘 하루 같이 다니며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모델은 극한 직업이구나', 또 하나는 '쓰레기만도 못한 놈들이 세상 곳곳에 정말 고루 분포되어 숨 쉬고 있구나'였다.

하루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무료 워킹 투어 (Free Walking Tour)에 참여했다. 가이드를 따라 함께 걸으며 이 도시의 역사,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현장 투어다. 또한,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 정보나 백과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마르셀로에나 얽힌 역사적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몰랐다면 그냥 지나갔을 법한 것들을 가이드가 꼼꼼히 설명해주어서 꽤 유익했다. 람블라스 거리 중간에 있는 수돗물은 마셔도 상관없으며 만약 그 물을 마신다면 언젠가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Bar(술집) Cel(천장, 하늘, 날씨) ona(해변의 파도) 바르셀로나는 말 그대로 '술과 하늘, 바다'라는 의미로 아름다운 해변에서 맑은 하늘을 보며 술 마시고 낭만을 즐기는 곳이라고 한다. 또, 골목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있는 작은 구멍들을 볼 수 있는데 과거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생긴 총자국을 보면서 역사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지금 현재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싶어 한다는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도 수 있었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설명을 100% 이해하기에 무리가 있었지만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 골목골목 걸어 다니며 역사와 유래를 들을 수 있어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무료 투어라고는 했지만, 투어가 끝나면 소정의 팁을 내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다.

라 보케리아와 개선문은 내겐 딱히 흥미롭지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시장은 아시아에서 보아왔던 시장들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돈되어 질서가 있었다. 시장이라기보다는 야외 백화점에 가까웠다. 그러니 하몽을 제외하면 내겐 딱히 흥미로운 지역 볼거리는 아니었다. 개선문 역시 바로 전에 방문했던 프랑스 파리에서 알투알 개선문을 보고 온 상태라 바르셀로나의 개선문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아쉽게 하루를 보낸 후 숙소로 돌아오면 또다시 외로움과 싸우며 고독하게 싱글룸에서 혼자 있어야만 했다. 싱글룸 업그레이드가 독이었다. 이미 짐도 다 풀어놔서 방을 옮기기도 귀찮았고 이제 하루 이틀 후면 마드리드로 갈 일정이라 딱히 호스텔 로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다가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 봉사활동을 다시 가서 봉사활동 멤버들과 카약, 수영을 하며 같이 놀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줄곧 우울했다. 혼자 여행을 시작했지만, 한국을 떠난 후 줄곧 혼자가 아니었기에 한 번도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 우울했던 건 같이 프랑스에서 봉사 활동하며 친해진 친구들과 이제 다시 보기 힘들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 그리워서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몸도 마음도 혼자였다. 인도 기차에서 1시간 동안 펑펑 울던 나는 아직도 이별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마다 남는 후유증으로 아직도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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