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일정을 줄여가며 서둘러 프랑스로 온 이유는 봉사활동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 일정이 끝나고 프랑스 서쪽 항구 도시 라로 셸에서 했던 봉사활동은 국제 워크 캠프 기구에서 주관하는 '워크캠프(work camp)'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원 신청 후 합격 통지를 받으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봉사 장소로 날짜에 맞춰서 가면 된다. 6년 전에 했던 일본 후쿠오카 워크 캠프를 시작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 우리나라 부산에서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워크 캠프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갈망은 항상 있었다. 그리하여 이번 세계여행 중간중간에 봉사활동을 계획했던 것이고 발리를 시작으로 가장 재밌다고 알려진 프랑스 워크 캠프를 두 번째 활동지로 결정해서 온 것이다.
워크 캠프는 전 세계 어디든 내가 원하는 나라로 선택해서 갈 수 있다. 대륙별로 가격은 다르지만, 최소 30만 원 이상의 돈을 지급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구성원들과 합숙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주제에 맞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지역 문화 체험도 할 수 있으며 봉사 국가, 지역, 기간, 날짜, 목적, 내용을 전부 내가 선택해서 고를 수가 있다. 내가 이번에 했던 프랑스 워크 캠프는 22일간 텐트에서 지내며 라로셸에 있는 오래된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작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을 했고 일이 끝나면 숙소인 야영장으로 돌아와서 수영을 하거나, 농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이 없는 주말에는 카약을 타거나 성벽, 암벽등반, 복싱 체험을 하면서 팀원들과 친목을 다졌고 지역 마을 축제에도 참여하여 늦은 밤까지 프랑스 노래에 맞춰 다 같이 춤을 추며 놀기도 했다. 1년을 계획하고 시작했던 여행에서 22일이라는 시간은 길면서도 매우 짧은 시간이다. 라로셸에 도착한 순간부터 마지막에 또 어떤 헤어짐이 있을지 예상하지 못한 채 나는 정신없이 프랑스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성벽의 오래된 시멘트를 제거한 후 새로운 시멘트를 발라 보수하는 일은 힘들어도 재미가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지만, 햇볕이 강렬하게 쬐는 날에는 야외에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더워서 정말 모두가고생을 많이 했다. 또 비가 자주 내려, 종종 비를 맞으며 일하기도 했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급히 천막 휴게실로 피했다가 그치면 다시 나와서 일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총 7개 국가에서 모인 10명의 국제 구성원들과 4명의 프랑스 현지 리더가 있었고 22일 동안 동거 동락하며 야영장에서 함께 지냈다. 텐트는 자연스럽게 남녀를 구분해서 세웠는데, 여자들끼리 모여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 비밀 없이 가족처럼 사이가 돈독해졌고, 장난꾸러기 프랑스 남자 리더들 덕분에 서로를 놀리고 장난치면서 22일 동안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작업했던 곳은 라로셸에서도 Fouras라는 곳에 위치한 성벽이었고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리더들이 마스크, 보호 안경, 헬멧, 작업복 상·하의, 작업용 신발, 장갑을 지급해줬다. 옆 사람이 부수는 시멘트 파편이나 위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 착용은 필수였다. 또한, 도구가 떨어졌을 때 발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작업용 신발을 신어야 했고 부식되고 더러워진 기존 시멘트를 부수고 제거하는 과정에서 잔여 먼지가 많이 날리기 때문에 보호 안경과 마스크로 눈, 코, 입 모두 가린 후 안전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해야 했다. 우선 망치나 곡괭이로 성벽을 이루는 사각 돌덩이 사이사이에 있는 오래된 시멘트를 사정없이 내려치면서 파괴하는 일부터 시작됐다. 그간 쌓아왔던 직장 상사 스트레스를 이 작업을 통해 원 없이 때려 부수면서 제대로 풀었다. 그렇게 시멘트 제거 작업에만 며칠이 걸렸고 후에는 손으로 아직 제거되지 못한 잡초를 뿌리까지 뽑은 후 틈 사이에 남아있는 잡초 잔여물들까지 빗자루로 쓸어내야 했다. 이제 새로운 시멘트와 물을 3대 1 비율로 반죽하여 만들고 틈 사이에 꼼꼼히 발라주면 거의 완성! 마치 어릴 적 찰흙 놀이는 하는 느낌처럼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과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일했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빗자루를 가지고 마른 시멘트를 예쁘게 문질러서 다듬어주면 끝! 2주 만에 완전히 새로 탄생한 성벽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해주고 뿌듯해했다. 쉬는 시간에는 케이크와 커피 혹은 차를 마시곤 했는데 프랑스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카스텔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동시에 물을 마시면 빵이 물에 녹으면서 부드럽게 입안을 녹이는데, 빵에서 그런 맛이 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마법처럼 달콤하게 녹아드는 케이크 덕분에 작업장에 나가는 아침이 즐거울 정도였다. 프랑스를 떠난 이후 스페인에 갔을 때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비슷한 빵을 사려했지만, 그 맛의 근처도 가지 못하는 빵들 때문에 오히려 화나 난적도 있다.
우리는 작업을 하는 것 이외에도 카약, 암벽등반, 수영, 탁구, 농구, 복싱 등 각종 스포츠를 함께 즐겼고 작업장까지 15분씩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아침을 제외한 매 끼니는 요리를 해서 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 매일 저녁에는 일과를 돌아보며 서로의 느낀 점이나 의견을 주고받았고 비가 와서 일하지 못할 때는 카드 게임이나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저녁,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현지 친구로부터 배웠던 인도네시아 버전 마오(Mao)라는 카드 게임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함께 놀았는데, 게임 특성상 말을 하면 안 되고 규칙을 알려주지 않은 채 벌칙을 받으며 배우는 게임이라 친구들은 매우 황당해하면서도 잘 따라주었다. 추적추적 비가 오고 늦은 밤이라 분위기가 으슥했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얼굴과 무언의 압박으로 웃음기 없이 게임을 진행하는 나 때문에 친구들이 무섭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왜 게임을 그렇게 무섭게 진행하냐고 놀려댔고 게임의 특성상 웃을 수 없다고 아무리 해명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날 이후로 나는 무서운 언니로 찍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다고 하면서도 밤만 되면 나보고 그 게임을 하자고 조르던 아이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는 터키인 레하가 느닷없이 진실게임을 하자며 구성원 4명을 모아서 같이 숙소 앞 해변으로 가게 됐다. 어두운 모래사장 위에 동그랗게 다섯 명이 모여 앉아 맥주병을 가운데 놓고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진실게임에 단골 질문인 '우리 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 없다'가 결국 나와버렸다. 누군가 이 질문을 레하에게 했을 때 레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대답한 후 그 사람은 바로 독일에서 온 요나라고 지목을 해 버린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레하의 돌발 행동은 요나를 당황하게 했고 요나는 완곡하게 돌려서 너는 내가 선호하는 유형이 아니라고 말한 후 게임은 어색하게 종료됐다. 22일 동안 애정 관계가 있었던 것은 레하와 요나뿐만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온 토마스와 러시아에서 온 마리나는 대 놓고 해변 데이트를 가거나 둘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여자들끼리는 텐트 미팅이라고 하여 하나의 텐트를 정해서 자주 모여 수다를 떨곤 했는데 요나를 향한 레하의 끊임없는 구애 및 토마스와 마리나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의 주된 수다 주제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해주며 다른 친구들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세계여행을 하는 중에 이렇게 봉사활동을 계획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행으로 만나서 친구가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함께 뛰어놀며 힘든 것들을 이겨낸다면 그 관계는 훨씬 돈독해지고 더욱더 특별한 사이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이 친구들을 만난 것이, 이 친구들과 이렇게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우리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모든 것이 감사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쉬는 시간에 먹었던 작은 빵 한 조각에 행복했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언어보다 더 강한 우리만의 유대감에 행복했다. 솔직히 말해서 프랑스는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너무 좋았던 나라는 아니었지만 봉사했던 친구들은 언젠가 다시 한번 꼭 만나고 싶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해오던 여행과는 다르게 봉사활동에 집중한 일정이었다. 한 번씩 쉬어가기 위해 여행 중간중간 봉사활동을 계획했던 것인데 오히려 쉬지 못하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2021년 우리 모두의 중간 지점인 네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네팔에서 미국인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우리가 운명이라면 언젠가 어디서든 꼭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봉사활동이 끝난 후 툴루즈라는 핑크 도시를 거쳐 스페인으로 향했다. 국경을 통과하는 버스 안에서 이전에 국경이 바뀔 때마다 느껴왔던 것과는 다르게 프랑스를 떠날 때는 매우 만족스럽고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프랑스와 아름다운 이별을 혼자 한 후 또 새로운 여행지를 간다는 마음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스페인 국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