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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괴레메를 아시나요

터키 - 카파도키아 괴레메

by 너나나나

제3막 유럽, 미국


카파도키아 괴레메를 아시나요?

터키, 카파도키아

예상치 못한 이집트 방문으로 원래 계획했던 터키 일정이 줄다 줄다 결국 열흘이 되어버렸다. 열흘 후에는 프랑스에 봉사활동을 가야 했기 때문에 이집트 다합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터키 일정이 계속해서 줄어든 것이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여기까지 왔는데 피라미드는 보고 가야지 싶어 수도 카이로로 향했다. 카이로는 혼돈 그 자체였다. 극심한 교통 체증, 대기 오염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인도를 나오면서 이제 더 이상 사기꾼은 볼 일 없겠지 생각했는데 카이로에 오니 사기꾼들도 다시 바글거리기 시작했다. 피라미드를 보는 둥 마는 둥 한채 한시라도 빨리 카이로에서 벗어나고 싶어 서둘러 터키 카파도키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카파도키아가 있는 터키 네브세힐 공항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깨끗하고 쾌적한 현대 도시가 나를 반겨주었다. 인도에 있다가 네팔 카트만두로 갔을 때만 해도 엄청나게 발전된 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인도, 네팔, 이집트를 거쳐 터키에 오니 네팔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공항 앞에서 예약해 두었던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로 위 차량들과 주변 건물들이 너무 깨끗해서 적응이 안 됐다. 사람들은 금발이나 갈색 머리를 한 채 얼굴은 하야니 키가 컸고 그들의 말은 영어도 아닌 것이,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에 도착하여 화성에서 온 사람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터키를 꼭 와보고 싶었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 2를 보고 나서였다. 영화 속 배경이 된 곳으로 화려하고 정교한 종교 양식, 그리고 이스탄불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또 다른 이유는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봤던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는데 수많은 열기구가 공중에서 떠다니며 자연미와 인공미를 조화롭게 버무린 아주 멋진 사진이었다. 때문에 넉넉하지 못했던 터키 일정이었지만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는 반드시 가야겠다고 계획했던 것이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이다. 약 3백만 년 전 화산 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 군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그중에도 괴레메는 터키 카파도키아에 있는 도시로 괴레메가 최초로 정착이 이루어진 때는 고대 로마 시대라고 한다. 거대 바위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라 마치 인도의 함피라는 도시를 연상케 하기도 했지만, 괴레메가 그 규모가 훨씬 크고 바위 형태도 달랐기에 두 도시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호스텔로 가는 길 중간중간에 있는 돌들은 끝부분이 뾰족하게 깎여져 있고 대체로 만질만질하여 마치 예쁜 아이스크림 콘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호스텔. 리셉션으로 들어가 영어로 'Hi'라고 말하니 직원이 나를 반기며,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직원은 괴레메에 한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냥 돈 좀 벌어보려고 기본적인 말만 어색하게 구사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 발음이나 말하는 내용까지 자연스러웠다. 이곳에 오는 90% 이상의 여행객들이 반드시 한다는 에코투어를 설명해주면서 한국어 가이드는 35유로, 영어 가이드는 30유로라고 했다. (터키 경제가 좋지 않아 각종 투어는 유로를 받는다) 나야 당연히 한 치의 고민 없이 5유로나 저렴한 영어 가이드를 선택했는데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투어 당일, 투어 차량에는 각자 일행과 함께 온 외국인들로 가득 차 있었고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까지 겸비하여 투어 내내 그냥 가이드만 따라다니며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호스텔 조식을 먹으러 갔더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계셨다. 자연스럽게 한국분이냐고 물었고 그분들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잠시 휴가로 터키에 왔는데 자기들도 이 숙소에서 바로 어제 만났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언니라 부르며 우리 셋은 하루 동안 오픈 박물관과 전망대에 가서 사진도 서로 찍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하필 그날 비가 와서 우리는 일정을 빨리 정리하고 항아리 케밥을 먹기 위해서 음식점이 있는 시내로 나갔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중 언니들은 내게 몇 살이냐 물었고 나는 91년생이라고 대답했다. 언니 둘은 동갑이었는데 내가 91년생이라고 말하자,


"90년대 태어난 사람도 걸어 다녀?"


라며 장난을 쳤다. 나도 대학생 때는 언니 오빠들이 내게 어리다고 장난을 치면, 아니라고 난 어린이지 않다고 반박하곤 했었지만 서른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어린이 대우를 해주시니 언니가 던진 농담이 고마웠다.

다음날, 카파도키아 괴레메 국립공원을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이 도시는 열기구로 유명해지기 전에 트레킹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트레킹은 대략 4시간이 걸렸으며 경사진 길이 아니라 천천히 둘러보며 운동 삼아 걷기에 좋은 평지였다. 열기구를 구경하고 에코투어를 했던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저 이렇게 바위도 직접 만지면서 이곳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트레킹을 했던 것이 가장 좋았다.

괴레메를 떠나는 날, 드디어 열기구가 뜬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열기구가 뜨지 않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내가 괴레메에 머문 나흘 동안 열기구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까지도 여행사에서는 열기구가 뜰지 안 뜰지 50% 확률이라고 말했고 뜨던 안 뜨던 여기까지 온 이상 절반의 확률이라도 믿고 싶어 그다음을 아침, 전망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올라갔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새벽부터 기다리다가 6시가 되자 50% 확률이라던 열기구들이 일출과 함께 마침내 하나둘씩 하늘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열기구 잔치를 보면서 나는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속 풍경을 상기시키며 엄청난 장관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실제는 기대보다 한참 미치지 못했고 열기구들이 너무 멀리 있어 그냥 파리들이 날아다니는 형상 같기도 했다. 그저 수많은 열기구가 거의 동시에 올라가는 이런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괴이한 바위 암석들이 땅 위에 가득 솟아있는 것 자체로도 놀라운데 그 사이사이에서 열기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지금 나의 모습인 것처럼 느껴졌다. 고비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을 거쳐 이제 유럽으로 들어가는 문 앞까지 왔다. 정해진 곳 없이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가는 열기구들을 바라보며 지금 나도 저 열기구들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의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나중에 멀리 떨어져서 관망했을 땐, 저 열기구들처럼 아름다울까 상상했다. (부디 날파리 같아 보이지 않길 바라며,,)

터키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걸쳐 있는 것처럼 장기와 단기 여행객들이 혼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처럼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휴가를 내서 단기여행으로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유럽은 너무 멀고 한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이미 다 다녀와서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터키다. 안전하고 볼거리가 많으며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친숙함까지 갖춘 터키는 여행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더 머물고 싶어도 다합에서 오래 있었다는 죄로 터키에서의 일정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가고 싶었던 도시들을 모두 건너뛴 채 이스탄불로 서둘러 넘어가야만 했다. 아쉬움이 남는 여행은 다음에 또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 가 본 도시들을 가기 위해 터키에 다시 방문할 것을 다짐하며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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