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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예요?

이집트 - 다합

by 너나나나

세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예요?

이집트, 다합


이집트에서 보낸 한 달은 나의 전체 세계여행 중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누군가가

"세계여행 중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예요? “


라고 묻는다면 한 치의 고민 없이 이집트 다합이라고 대답한다. 세계 3대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발을 빼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수화물 없이 힘겹게 지냈던 지난날은 잊고 남은 날들을 더 즐겁게 보내야 했다.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한 후부터는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Fun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쿠버다이빙 명소인 수심 100m 이상의 '블루홀'은 사람이 최대 40m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20m만 들어가도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의 없고 어두 캄캄하다. 그 안에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함과 동시에 암흑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고 조금 과장하면 바닥 아래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산 시장 유리에 갇혀 진열된 물고기나 수족관에 유리 너머로 보곤 했던 대형 물고기들이 내 눈앞에서 지나다니는데 정말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사람 손은 너무 뜨거워서 물고기를 직접 만지면 이 친구들이 화상을 입는다고 하여 조심스럽게 눈으로만 보면서 함께 헤엄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나이트 다이빙은 저녁에만 출몰한다는 오징어 같은 생물들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고 낮에 하는 다이빙은 할 때마다 조금씩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중에는 정말 진공 상태로 떠 있는 기분을 느끼며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다.

하루는 다이빙을 마친 후 산소통과 중량 벨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암지 손가락이 확 비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깊게 베어서 상처가 나을 때까지 손을 물에 담글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기에, 스노클링을 할 때는 다친 손이 물속에 잠기지 않게 하려고 머리 위에 얹어서 수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물속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처음 다합에 왔을 때는 모든 게 처음 하는 것들이라 몸이 뻣뻣하고 어색했는데 다합을 떠나는 날이 다가오고 물과 친해질수록, 처음과는 달리 물개처럼 물속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게 되었다. 스노클링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는 것을 몸이 직접 학습한 것이다. 날이 더워 스노클링을 하고 오면 하루가 상쾌했고 오늘은 또 어디로 다이빙을 갈까 기대했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었기에 지구 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합에는 물놀이 이외에도 다채로운 즐거움이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 리조트 올 인클루시브(하루 숙박비로 식사와 음료가 무제한 제공되는 제도) 즐기기, 실외 암벽등반, 등산, 야간산행, 낚시, 그리고 분위기 좋은 야외 카페까지, 그중 다합에서 가장 유명한 베두인 카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가 아니라 야외에서 모닥불을 지펴서 감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직원이 손님들 앉아있는 자리 한가운데 불을 지펴주는데 개인이 싸 온 감자를 주면 모닥불 아래 묻어 주어 구운 감자도 먹을 수 있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차를 한잔씩 마시며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반짝거리는 별빛을 천장 삼아 밤하늘 아래 누워 운치를 즐길 수 있다.

다합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뽑으라면 베두인 카페로 들어가는 트럭 뒤에 탔을 때다. 열 명 정도가 트럭 뒷좌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다가 별빛 밤하늘을 보면서 바람을 가르는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집트까지 와서 자신들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생각하며 각자 상념에 빠졌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점차 베였던 손이 아물어 갈 때 즈음, 다합에서 만난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산호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던 날이었다. 잔잔하던 파도가 조금씩 물살이 세지면서 산호를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언니와 나는 밀려오는 물살에 산호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넋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산호 자체는 워낙 약해서 사람이 발로 밟거나 손으로 만지면 잘 부서지지만 스스로 방어하려는 기질 때문에 굉장히 날카롭다. 만약 산호에 베여서 상처가 심하면 파상풍에 걸릴 위험도 있으므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언니와 내가 산호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형형색색 아름답게 빛나는 산호와 물고기들에 정신이 팔려 있던 찰나, 큰 파도에 휩쓸려 산호 안으로 급작스럽게 밀려 들어가게 됐다. 때마침 같이 있던 동생이 우리를 산호에서 멀어지도록 뒤에서 잡아 끌어냈는데 그 동생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동생이 잡아줘서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각종 산호에 긁혀서 다리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고는 언제나 방심할 때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사건이었다.

2주만 머물다가 터키로 넘어갈 예정이었던 이집트 여행은 2주로는 어림도 없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터키행 항공권을 찢어버렸다. 이집트 입국 시 도착 비자를 받으면 최대 3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여행객은 30일도 너무 짧아서 다합에서 거리가 좀 있는 비자 사무실에 택시를 타고 가서 비자 연장 신청을 하고 온다. 연장 신청 후 발급까지 하루라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 주변에 있는 호텔 리조트에 가서 올 인클루시브를 즐기다가 다음날 비자를 받고 돌아온다. 나는 더 이상 이집트 일정을 늘릴 수 없어 딱 한 달만 지내다가 나갈 계획이었기에 굳이 비자 연장을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2번이나 호텔 리조트에서 같이 놀곤 했다. 그리하여 내가 만든 명언이 있었으니,


'샤름 엘 셰이크에 있는 호텔을 가지 않고서는 다합에 왔다고 논하지 말라.'


트윈베드 한 방을 두 명이 함께 쓴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저렴한 힐튼호텔 방이 인당 단돈 25달러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삼시 세끼 뷔페식 고급 음식과 운동장만 한 풀장,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초호화 럭셔리 침대, 게다가, 음료와 술을 언제든지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지구 상에 있는 호텔 중 최저의 가격과 최고의 만족을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이 아닐까 싶다. 힐튼 호텔 하루 묵는 가격이 서울에 있는 호스텔보다도 저렴하며 먹을 것과 마실 것, 놀 것까지 걱정할 필요 없는 전 구간 초호화 여행이다. 사실 지금도 그 모든 게 단돈 25달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냥 낙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곳이다. 그러니, 샤름 엘 셰이크 리조트, 호텔을 가지 않고서는 다합에 왔다고 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다가 만났던 그 한국인이 다합에 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바로 터키로 건너갔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짰던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 중 만나는 다른 여행객들이 보석 같은 숨은 정보들을 많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합에서 지낸 한 달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물론 수화물 문제로 2주 동안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하긴 했지만, 그것 또한 지나고 보니 추억이다. 덕분에 경유 시 비자 유무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것 또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꼭 부여잡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아쉽게 다합과 작별 인사를 하고 지상낙원과는 이별했다.


지상 낙원은 또 가야 예의.

안녕 다합아,

다음에 꼭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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