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31시간을 쉬지 않고 한 번에 이동하는 버스를 처음 타 봤다. 인도에서 18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기차를 탔던 적은 있었지만 누워서 갈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남미에는 누워서 가는 기차나 버스는 없다. 아무리 좋은 의자라도 뒤로 젖혀 눕혀봤자 일자로 편하게 누울 수가 없으니 엉덩이가 배길 수밖에 없다. 그런 버스에서 31시간을 쉬지 않고 있었으니 내릴 때 즈음해서는 정말로 구역질이 나올뻔했다. 속이 메슥거렸고 머리가 아팠다. 나름 장기 이동이라 꽤 고급 버스로 예약했기에 비행기처럼 아침 점심 저녁이 제공되고 화장실도 있어 휴게소에 딱히 들를 필요가 없었다. 에콰도르에서 리마까지 힘겹게 국경 이동을 한 후 다시 리마에서 와라스까지 시외버스를 8시간 탄 후 새벽이 되어서 도착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국경 이동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와라즈 버스터미널, 줄 서 있는 페루 사람들 사이에 얼굴이 하얀 백인이 서 있길래 슬며시 곁에 가서 말을 걸었다.
"여기 여행 오셨어요?"
"네, 혼자 오셨어요?"
"네, 괜찮으시면 같이 여행하실래요?"
그의 이름은 마티스, 30대 중후반으로 프랑스에서 온 친구였다. 우리는 와라즈에 있는 3일 내내 함께 여행했다. 첫째 날 했던 빙하 트레킹은 아이슬란드와 비교가 되어 사실 큰 감흥이 없었지만 둘째 날 갔던 '파라 마운트' 왕복 6시간 트레킹과 셋째 날에 갔던 왕 중의 왕이라 불리는 '라구나! 69 호수 트레킹'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라구나 69 트레킹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걸으며 힘들게 다녀왔는데 사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3일 내내 걸었는지 모르겠다. 40시간 버스 이동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바로 3일 연속 끝이 없는 트레킹 길에 올랐으니 그때 내가 진정 제정신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힘들게 도착한 라구나 69 호수에 도착하고 말도 안 되는 파스텔색 호숫물을 보니 그제야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꼈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마침내 마주한 곳.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다 보니 가슴 설레는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었다. 당장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때론 지루하고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내가 걸어온 흔적이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또 한 번 깨달음을 얻고 걸어왔던 먼 길을 천천히 되돌아갔다.
잉카의 중심지 쿠스코(Cusco)에서 맞이한 고비,
쿠스코에 도착한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와라즈에서 다시 리마로 갔다가 리마에서 잠 한숨 못 자고 새벽 5시 비행기를 탄 후 아침 6시에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카우치 서핑 호스트 알베르트가 차를 가지고 나를 픽업하러 마중 나오기로 했기에 공항 카페에서 물 한잔 주문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해 알베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직 이른 시간. 분명 자고 있을 테니 차분히 답장이 오길 기다렸다. 6시 30분. 답장이 없는 알베에게 결국 보이스톡을 걸었다. 나 역시 지난밤 새벽 비행으로 잠을 거의 못 자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잠자는 알베를 깨워야만 했다. 그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고 마침 손님방이 있어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베의 집은 쿠스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본가가 아닌 손님들이 묵는 공간이라고 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수많은 계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연 내가 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올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앞서가는 알베를 따라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거칠게 숨이 가빠왔다. 쿠스코 도시 자체가 3,400m로 이미 고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 도시에 여행 오는 여행객들은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고산병을 앓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에 가자니 곧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었다. 높은 고도에 숨쉬기도 어려운 곳에서 계단을 타고 꼭대기 집까지 가방을 메고 올라가는 그 순간은 오지 탐사대 등반훈련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밥도 못 먹었고 잠도 못 잔 상태였던 나는 집에 들어가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지만, 고산지대라 그런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계속해서 헛기침하며 숨통을 틔워주어야 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제 풀에 지쳐서 잠에 들었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좀 들어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맨날 이렇게 힘들게 계단을 타고 올라와야 할까. 그냥 돈 주고 광장 주변에 있는 호스텔에 가서 잠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집은 추웠고 식기류도 별로 없고 뜨거운 물이 고장이 나서 당분간 샤워도 할 수 없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갑자기 떠오르고 그 서늘한 공간에는 오로지 나 혼자 뿐이라 외로움에 사무쳐 모든 게 최악이었다.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은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계여행 출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그리웠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었다. 그래서 눈이 벌게진 채로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끊어진 전화기를 쳐다보며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만약 엄마가 이 세상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태어나 처음으로 들었다.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았던 존재가 이 세상에 더 없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생각을 평생 해 본 적이 없었다. 문득 그런 무서운 생각이 내게 엄습해 왔고 그날 밤 대성통곡을 하며 홀로 있는 집에서 쓸쓸히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그동안 잘난 것 하나 없는데 잘난 척하는 맛에 살았다. 내가 하는 말이 맞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좋다며 살았다. 나를 사랑해주던 전 남자 친구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고 결국 우린 헤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 한동안 고통스러움 속에 살았다. 쿠스코에 도착한 그 첫날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무려 1년 전에 헤어졌던 남자친구까지 소환되어 별별 망상에 빠졌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놓아주었어야 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제대로 봐주지 않은 채 그냥 옆에 두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 사람이 떠난 후, 1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나를 진정 사랑해주는 사람인지 이젠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놓쳐버린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잘못했던 것들을 속죄하며 울기도 하고 지금 내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 울기도 했다.
쿠스코에서는 별안간 이상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이 도시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 주었고 잉카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왠지 모르는 일체감이 들었다. 전생에 내가 잉카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래 여행을 한다고 해서 결코 대단하거나 마냥 멋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는 나에게 심리적인 고비와 희망을 안겨준 곳이다. 특히 쿠스코는 나에게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될 기회를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나였지만 코스코에서 3주를 지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쿠스코라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에서 마치 잉카의 후예였던 마냥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한다. 넘어졌을 때 생겼던 상처는 아물고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문득 어느 날 나의 상처를 쳐다보며 내가 그때 이 상처로 인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상기하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충분히 아파하고 울고 슬퍼하자. 그리고 더 견고해지자 성숙한 사람으로, 멋진 어른으로 그렇게 자라나자. 페루에서 보낸 한 달. 아픈 만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