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까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18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볼리비아에 오는 여행객들의 90%는 우유니를 목표해 오는데, 지구 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소금사막 우유니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 위에서 사람들은 각각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진을 찍는다. 낮에는 반사되는 거울 위해서 사진을 찍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배경 삼아 또 사진을 찍으며 각자의 인생 컷을 만드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모든 여행들객이 그리 갈망하고 열망하는 우유니가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지인들의 카톡 배경 사진이나 인터넷에 넘쳐나는 수많은 사진, 영상들을 보면서 이미 그곳을 다녀온 것처럼 질려버린 것이다. 그런 내가 볼리비아 들어온 이유는 바로 우유니가 아닌, 데스 로드 때문이었다. 페루 와라스에서 만나 함께 여행했던 프랑스인 마티스가 알려준 '데스 로드'의 존재. 그때 이후로 남미 여행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 시작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1000m 하강자전거 활주를 하는 것이었다.
꿈에 그리던 데스 로드로 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었다. 자전거를 실은 트럭과 함께 끊임없이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해서 가이드의 주의사항과 안전수칙을 듣고 바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자동차 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1000m 하강 주행이 드디어 시작됐다. 내리막길의 경사가 그리 급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속도가 붙어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그 어떠한 원동력 없이 중력의 힘으로만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하면서 하강 내내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폭발하는 호르몬을 주체할 수가 없어 실성한 사람처럼 침까지 흘리며 대박이라는 환호성만 연신 내 뱉었다. 5년 전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고 태어나서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1000m 하강 이후에는 본격적인 데스 로드가 시작됐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저 멀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길이 보였다. 최고의 액티비티 데스 로드,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돌길에서의 MTB 자전거 주행. 불과 1995년까지만 해도 매해 2,300명이 이 길에서 죽었다고 한다, 현재는 특별한 응급상황을 제외하면 차가 다니지 않고 자전거만 다니는 길이 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펜스가 거의 없으므로 속도 조절을 못하거나 가장자리에서 위험하게 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길이다. 하지만 추락보다 더 위험한 요소는 돌길이라서 미끄러져 넘어질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이다. 사진상으로는 거의 평지 같아 보이지만 막상 주행을 시작하면 속도가 꽤 빨라지는 신기한 내리막길이다. 절벽이 아닌 벽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타면서 돌멩이들이 많으니 속도조절과 동시에 주행 중 핸들을 잘 조정해야 한다. 함께 라이딩을 시작했던 독일인 여자는 넘어지면서 손목이 크게 다쳐 중간에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손목뼈가 피부 밖으로 돌출되어 나와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본 후 나도 다칠까 염려되어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주행에 집중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보다도 이렇게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하니 항상 조심히 타야 한다.
오후 4시쯤 드디어 모든 일주가 끝났다. 평지와 내리막길만 간다고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쓰면서 탔더니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 마지막에는 기진맥진이었다. 16명 중 15명이 완주했으니 극도로 위험한 스포츠는 아니지만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하는 법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한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데스 로드를 완주한 후 마치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번 세계여행 중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출하는 가장 짜릿한 하루였다.
정말 고심하다가 결국 안 가고 후회하느니 가고 후회하자는 생각이 들어 데스 로드가 끝나고 며칠 후 우유니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말 사진과 영상에서 보던 곳이 눈으로 그대로 펼쳐진 것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꼭 가고 싶은 곳이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우유니보다 데스 로드가 훨씬 좋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사실,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라 하여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지 못하거나 비난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모두가 '네'라고 말할 때 옆 사람 눈치 보며 '네'라고 똑같이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아니요'라고 외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남들 다 한다고 따라 할 필요도 없으며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 하루다. 자고로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