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화장실 청소를 계속하던 중, 일상 속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헬로우 톡 으로 언어 교환을 하면서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영어도 배울 생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던 중,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를 만났다. 이름은 제임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국에서 1년 동안 영어 선생님으로 일을 했던 적이 있고 7년 동안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 오고 있다는 그의 한국어는 꽤 유창했다. 그는 내게 성격 유형 검사 링크를 보내주며 결과를 알려달라고 말했고 그 결과를 보자 제임스는 자신과 잘 맞는 유형이라며 반가워했다. 헬로우 톡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지 이틀째, 그는 내게 만나서 같이 놀기로 제안했고 한국어를 잘하는 뉴질랜드 사람과 행아웃(밖에서 같이 노는 것 Hang out)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임스는 나를 실제로 보자마자 이쁘다고 칭찬을 해주었고 성격 검사가 잘 맞는 타입이라며 우리는 잘 맞는 타입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막상 만나고 보니 한국어 발음이 좋아 오랫동안 공부한 흔적이 느껴졌고 키가 크고 잘 생겼는데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서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타입의 남자였다. 함께 해변에 가서 걸으며 수다를 떨고 푸드코트에 가서 밥을 먹고 헤졌는데 유쾌한 제임스 덕분에 하루 종일 웃다가 끝난 느낌이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항상 이용해 오던 헬로우 톡이었지만 전 남자 친구가 있어서 여자만 만나다가, 헬로우 톡을 통해 남자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이 끝난 후 며칠 후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었다. 제임스가 내가 사는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와 주었고 나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우리는 함께 걷고 사진도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난번과는 다르게 제임스에게 이성적인 끌림이 있었다. 제임스는 지난 연애들에 대해 말하면서 한국인 여자가 좋아서 지금껏 사귄 여자는 대부분 한국 여자였다고 말함과 동시에 자기는 여자 친구를 빨리 만들고 싶다며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뭘 하고 싶냐는 등의 질문을 해왔다. 나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의 조짐은 그날 저녁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있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핸드폰을 만지던 제임스는 저녁을 먹고 난 후에 급기야 내게 자신의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틴더 앱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여자의 프로필이 있었고 제임스는 이 여자가 대단한 이력을 갖고 있다면서 내게 보여주고 같이 놀라워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 여자는 요가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고 현재는 뉴질랜드에서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이었다.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았으며 한눈에 딱 봐도 미인이었다. 제임스는 그녀들의 프로필을 내게 보여주며 그저 같이 놀라워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아 계속해서 새로운 이성을 계속 찾고 있다고 알리는 신호인지 그의 심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틴더 앱으로 여성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던 제임스. 그때 나는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가 찾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성격 테스트 잘 맞고 이력이 화려한 예쁜 여자라는 것을.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이제 고작 두 번째 만남이었기에 시종일관 틴더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그의 행동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껏 해오던 대화들이 있어서 답장을 해 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번째 만남 이후에도 제임스와의 인연이 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우리는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서로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고 판단한 나는 이젠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차례라고 생각하여 저녁식사를 하자며 세 번째 만남을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느리게 온 제임스의 답장은 나를 당황시켰다. 사실 연락하고 지내던 중국인 여자가 있는데 잘 될 것 같다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내게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다며 말하고 성격이 잘 맞고 얼굴이 이쁘다는 온갖 칭찬들은 나를 그저 대안책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상당히 언짢은 기분으로 알겠다고 말했는데 가관은 그 후에 온 메시지였다. 자기가 잘되고 있는 여자한테 물어봤는데 그 여자가 나랑 같이 저녁을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해줬다며, 같이 저녁을 먹자는 메시지였다. 대안책으로 생각했던 나를 여자 친구가 될 여자가 허락해줬으니 이젠 죄책감 없이 썸 좀 더 타자는 말처럼 들렸다. 어이가 없어서 됐다며 최대한 점잖게 거절했지만 이젠 오히려 제임스가 왜 그러냐며 저녁을 먹자고 조르는 수준에 다 달았다. 이런 남자를 호감으로 생각하고 잘해볼 생각을 했던 나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연락이 끊긴 그 날 이후,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그로부터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나, 여자 친구랑 헤어졌는데, 우리 이제 다시 만나도 되는 거지?"
이 메시지는 나를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정말 이런 남자를 남자 친구로 만나지 않았던 것에 다행이라 여기며 말이다. 한국어를 잘하고 키 크고 잘생겼다는 이유로 아시아 여자나 한국인 여자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기가 조금만 재밌고 호의를 보여주면 내가 그러했듯 여자들이 본인에게 호감을 갖는 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는 향수를 아무리 뿌려도 악취가 나는 법. 나는 이 사건 이후로 혹여나 이렇게 겉모습은 멀쩡하고 정상처럼 보여도 속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를 만날까 싶어 헬로우 톡뿐 아니라 틴더나 그 어떤 어플 이든 이성을 만나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사실 틴더라는 어플에 대해서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결혼정보업체가 있다면 외국에는 틴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성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어플인데, 상대방의 직업이나 매력포인트들을 보고 사전에 관심 있는 사람을 직접 고를 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성적 욕구를 해소를 위해 만난다고 하여 틴더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으나 국제적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실제로 커플이나 부부가 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하여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임스 덕분에 틴더 어플을 다운로드하여볼 일 조차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좋은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틴더로 만난 사이는 아무래도 유대감이 덜해질 수밖에 없고 쉽게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성이 고파 죽을 것 아닌 이상,
앞으로도 틴더는 안 하는 걸로.
이런 남자를 남자친구로 만나지 않아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