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험난한 랑기토토섬 트레킹

by 너나나나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뉴질랜드인 친구 재키와 가비. 그들과 나는 나이도 비슷하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점도 같아서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하루는 내가 오클랜드 시티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는 랑기토토 섬에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트레킹을 계획해서 함께 놀러 갈 예정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주말이나 공휴일 아침 7시 30분에 있는 페리가 얼리버드 티켓이라고 하여 원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20달러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런데 네이버 블로그 검색을 했을 때에는 분명히 얼리버드가 있다고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티켓 판매 홈페이지를 보면 얼리버드 이야기가 없었다. 사람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나는 블로그 포스팅을 쓴 사람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 주 일요일 아침 7시까지 페리 선착장에서 만나자고 친구들에게 일러주었고 그렇게 내가 쏘아 올린 랑기토토섬 여행이 시작됐다. 그리고 문제는 일요일 당일 아침부터 시작됐다.

페리 주변은 번화가라서 주차할 공간이 없어, 집에서 우버 택시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한 후 짐을 챙겨 우버를 불렀다. 페리 선착장까지는 차로 약 15분이 걸리기 때문에 7시 5분에 우버 택시를 불러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생각해보니 오늘 랑기토토섬을 다녀온 후에 오후에는 일본인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러 가기로 했는데 배드민턴 라켓이 내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택시가 오기 전에 빨리 차에 가서 라켓만 가지고 나오자 했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버는 내가 집 앞에 없음을 알고 바로 떠나버리는 참사가 벌어졌다. 하도 기다려도 안 오길래 어플을 확인해 보니 이미 떠나버린 우버. 나는 부랴부랴 7시 15분에 다른 우버를 다시 불러 탔고 7시 28분에 아슬아슬하게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버 택시에만 놓쳐버린 수수료와 운행비를 합쳐 무려 2만 5천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재키와 가비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택시에서 내려 친구들에게로 뛰어갔다. 그런데 친구들은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민, 얼리버드 티켓은 작년부터 이미 없어졌대"

뭣이라! 네이버 블로그를 포스팅 글만 믿은 내 잘못이었다. 그렇다. 얼리버드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이미 없어진 지 고려시대였다. 다음 차인 9시 15분까지 기다려야 했던 우리 셋은 그 이른 아침에 갈 곳이 맥도널드밖에 없었다. 모닝커피를 한잔씩 시켜서 수다를 떨면서 기다렸지만 가비는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눈만 뻐끔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 맥도널드에서 기다린 끝에 우리는 출발 시간에 맞춰 매표소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얼리버드는 20불. 그 외 가격은 35불이었기에 가격은 그대로 일 거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가드 리더기에 찍힌 가격은 45불로 가격이 10불이나 인상되어 있었고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페리에 올라야 했다. 랑기토토섬은 무인도이기 때문에 섬 안에 있는 거라곤 페리 선착장과 공용 화장실이 전부다. 엄청난 볼거리가 있진 않지만 미션베이 해변에서 항상 보이는 이 섬에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얼리버드로 20달러를 내고 다녀왔을 때 이야기였다. 45불이라는 거금을 내고 올만한 곳이 아닐뿐더러 페리 시간도 애매한 간격으로 2대가 배치되어 있어 여러모로 아쉬웠다.

20201017_102524.jpg

하지만 이미 섬에 들어온 이상, 지난 일은 잊고 사진도 찍으면서 45불의 트레킹을 즐겨야만 했다. 1시간 정도 지나서 도착한 정상에서는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올라오는 게 1시간이면 내려가는 것은 시간이 더 적게 걸릴 것으로 생각한 우리는 오후 2시 15분에 다운타운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서 정상에서 가능한 오래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오후 1시쯤 슬슬 내려가려고 자리를 뜬 후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 보자 하여 우측에 있는 계단으로 내 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와 평지에 다다르니 양갈래로 나뉜 길이 나타났고 이정표를 확인한 우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선착장으로 가는 방향이 무려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후 1시가 지나있었기 때문에 정녕 1시간 30분이 걸린다면 우리는 2시 15분 페리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아침부터 피곤했던 가비는 일단 출발하자 했고 빨리 걸으면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을 것이라 우리를 다독였다.

20201017_095610.jpg

아침 일찍 일어나 우버를 놓쳐 15분 거리를 2만 5천 원을 내고 택시를 탄 것도 억울한데, 얼리버드 티켓은 없어진 지 오래라 맥도널드에서 2시간 대기 끝에 무려 10불이나 인상된 비싼 페리 값을 낸 것으로도 고생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오후 2시 15분 페리를 타지 못한다면 오후 4시에 있는 페리를 타야 했고 4시 페리를 타기에는 너무 일찍 도착하게 되어 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또 페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 뻔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2시 15분 차를 타야 했다.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던 아침 모습과는 다르게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 셋은 말없이 빠르게 걷기만 할 뿐이었다. 다들 전투적인 태세로 행군을 하다가 오후 2시에 가까워지자 마음이 급해 뛰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45불이나 내고 간 랑기토토섬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사실 1시간 30분 거리를 1시간 만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적처럼 2시 15분 각에 페리 선착장에 간신히 도착했고 목구멍에서 나는 피비린 맛을 느끼며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순조롭게 잘 풀린 날은 아니었지만 힘들고 파곤 해서 더 기억이 남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착한 친구들은 나 덕분에 재밌었다며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덕담을 해주며 훈훈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랑기토토섬은 평생 한 번만 다녀오는 걸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틴더(Tinder)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