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청소를 하며 남의 오줌이나 닦던 나날을 보내던 중 이대로 1년을 청소만 하다면서 지낼 수 없다고 판단한 후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으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잘하니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한국어 교사 자격증인데, 알고보니 한국에서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 따기 위해서는 꽤 체계적이고 오랜 간이 걸려 시험까지 보고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딸 수 없는 자격증이었지만 다행히 민간 자격증은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수료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인터넷으로 강의만 다 보면 자격증이 나오는데 강의료도 무료라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이 자격증을 따면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
호텔에서 청소가 오후 3시에 끝나고 집에 와서 2,3시간씩 강의를 들었고 학창 시절 이후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관사' '형용사' '감탄사''수식어' 등을 공부하고 암기하며 진지하게 임했다. 모든 교육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이제 자격증이 나오는구나 싶었는데! 막상 자격증을 받으려 하자 자격을 발급 비용이 5만 원이란다. 아니, 강의료는 무료인데 발급비가 5만 원이라니. 무료라고 광고를 보고 혹해서 듣기 시작했던 것인데 결국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래도 내가 앞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돈을 벌 수도 있으니 일종의 투자라 생각하며 5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고 자격증을 한국의 부모님 댁으로 배송시켰다. 그리곤 부모님께 스캔을 부탁해서 한국어 자격증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자격증을 우선 따고 나서 아이토키(Italki)라는 일반인이 가르치는 언어 수업사이트의 한국어 강사로 등록한 후 오클랜드에서 오프라인으로는 카우치서핑(외국인 집에서 잠도 자고 만나서 같이 놀기도 하는 세계적인 커뮤니티)을 이용해 사람들을 만나 한국어 수업을 하며 경력을 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했다. 일단 아이토키에 이미 훌륭한 한국어 일반인 강사가 차고 넘쳤고 나는 그들에 비해 내세울 이력이나 경력이 전무하여 한국어 교사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민간 업체에서 받은 자격증은 아무런 공신력이 없어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내가 왜 품사를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공부했나 허탈할 정도로 민간 자격증은 쓸모가 없어졌다. 돈을 벌겠다는 원대한 꿈이 좌절되자 그렇다면 일단 무료 수업으로 경험치를 늘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카우치서핑으로 한국어를 무료로 배우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고 결과적으로 1명의 외국인과 시간이 맞아 1대 1대 과외를 하게 되었다.
여느 일요일처럼 호텔에서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4시경 집 앞 베트남 음식점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식당에 들어서자 구석에 앉아 노트를 펴 놓은 외국인이 보인다. 그의 이름은 아리(Ari), 아르헨티나에서 왔고 현재는 워크 비자를 받아 뉴질랜드에서 지낸 지 1년이 조금 안되었다고 한다. 내가 어설픈 스페인어를 하며 아르헨티나에 가서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굉장히 반가워하던 아이였다. 나보다 3살이 어렸는데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1시간 동안 한글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내게는 생각보다 꽤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래서 꾸준히 앞으로 아리와 함께 한국어 수업을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의 워킹홀리데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맺는지 결정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