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잡
내 나이 9살,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에 둘째 이모 집에 가족이 모두 모여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아버지 재킷에 들어있던 담배 한 개비를 슬쩍해서 밖으로 나왔다. 평소에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 번쯤 펴보고 싶었고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아빠가 하는 것처럼 가위 손가락 모양으로 담배를 잡고 온갖 폼을 잡으며 입에 물었다. 담배 끝 부분을 물고 입으로 숨을 뱉으니 끝 부분이 빨갛게 타오르자 신이 났다. 그리곤 물던 담배를 빼고 허공에 다시 숨을 뱉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빠가 하는 것처럼 연기가 나오지 않자 방법이 잘못됐나 싶어 다시 입에 물곤 이번에는 숨을 들어 쉬어 봤다. '커억 컥.. 컥' 담배연기가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요란한 소리에 집에서 나온 이모가 나를 발견하곤
'어머!! 지금 너 뭐 하는 거야!'
라며 담배를 뺏어가셨다. 이모는 그런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아빠 앞에 세운 후 내가 밖에서 담배를 폈다고 말했는데 온 가족이 보고 있는 있는 그 순간, 내 인생 첫 번째 고비가 온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무서웠다. 다행히 아빠는 별일 아니라며 웃으며 넘어 넘겼고 나는 그 이후 담배에 손을 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때 아빠가 크게 소리를 치며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나를 혼냈다면 반발심이 생겨 진짜로 담배를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담배와의 인연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20년이 흐르고 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위치한 호텔에서 청소를 하다가 손님이 떨어뜨린 새 담배 한가 피를 발견했다. 나는 휴지에 싸서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고 집으로 가져왔다.
비흡연자인 내가 집으로 챙겨 온 이유는 20년 만에 호기심이 생겨서였고, 비싼 담배가 너무 새것으로 있기에 아까워서였다. 천천히 불을 붙이니 20년 전 이모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때처럼 가위 모양 손가락으로 잡은 후 겉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그때와 다른 건 지금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혼내거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숨을 들이쉬어 연기를 입안에 모아 뱉으니 어릴 적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창문에 걸터앉아 담배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며 문득 상념에 빠졌다. 그 조그맣던 꼬마는 어른이 되어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고 어둠 속에 숨어서 눈치를 보며 피우던 담배를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대놓고 편하게 피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상반되어 느낌이 이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에 주름도 생겼고 항상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던 20대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아쉬웠다. 담배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우리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9살 때 이후로 20년 만에 손에 잡은 담배를 보며 얼마나 빠르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 이후에도 청소를 하다가 종종 담배를 발견하여 세 번 더 집으로 가져와 태우곤 했다. 하지만 몸에 해롭고 비싼 담배를 내 돈 주고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기에 호텔을 관두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금연을 했다는 후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 호기심에 시작할 수도 있고 평생 못 끊을 수도 있다. 어차피 필 사람은 어떻게 말려도 피우게 되어있고 안 필 사람은 피라고 공짜로 줘도 안 피우게 되어 있다.
일을 하면서 담배 체험도 하고 생각보다 재밌는 뉴질랜드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