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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Jul 02. 2017

베르겐에서 만난 천국의 한 조각

A PIECE OF HEAVEN



도착 전부터 베르겐에 대한 기대는 무척 컸다. 아름다운 풍광이며, 피오르드 투어의 종착지라는 베르겐. 빠듯한 비행기 일정으로 베르겐을 포기할지 아니면 2박이지만 1박같은 28시간을 보내고 오슬로로 이동할 것인지 고민이 컸지만 코펜하겐을 구경하고 베르겐에 새벽 1시에 도착해서 했던 고생이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겨울의 베르겐은 퍽 관광객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일단 피오르드 구간에 어는 곳이 생겨서 피오르드의 투어 선택 가능 시간이 줄어들뿐더러 해가 오전 9시쯤 느지막이 떠서 오후 3시가 되기도 전에 져버려 깜깜해져 버린다. 게다가 바람은 얼마나 매서운지, 항구도시 아니랄까 봐 쌩쌩 부는 바람에 얼굴이 얼얼할 정도다. 심지어 나는 크리스마스 주간에 도착해, 휴일을 만끽하는 도시 전체의 분위기 덕에 제일 기대했던 베르겐 국립 미술관 KODE가 쉰다는 (미술관 레스토랑의 음식도 일품이라고 한다.) 슬픈 소식도 접해야 했다.


베르겐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밤 10시에는 이륙해야 했던 비행기가 11시로 연착되었으며, 베르겐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의 청소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호스트가 숙소 바닥 청소를 하지 못해 체크인 당일에는 지근거리는 바닥이 거슬렸고 그다음 날은 청소 때문에 오후 4시까지 내쫓겨 있어야 했다. 기대했던 베르겐 피시 마켓도 겨울이라서인지 아니면 크리스마스 주간 휴가인 건지 하고 있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헛웃음이 나왔다.


베르겐의 관광 포인트


1. 피오르드 투어의 종점 및 시작점

2. 항구 근처의 피시 마켓

3. 베르겐 국립 미술관 KODE

4. 베르겐 케이블카 & Floyen Mountain 의 풍경

5. 브뤼겐




베르겐 리무진 버스 카드


베르겐 공항은 조그맣다. 부산 김해 공항만큼 작다. 그런데 이 조그만 공항의 입국용 계단에서는 베르겐의 풍광을 빔 프로젝트로 계속 다양하게 바꿔가며 보여주고, 그 풍경들이 더 신비롭게 보이도록 파란 조명들이 하얀 벽면을 다채롭게 비추고 있었다. 베르겐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그 강렬한 이미지에 내가 이제껏 방문했던 어떤 공항보다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북유럽의 도시! 세계지리에서만 달달 외웠던 피오르드의 도시를 내가 방문하다니 세계지리를 씹어먹을 듯 외웠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내겐 상상해보지 못했던 미래였다. 그곳을 20대를 이틀 남기고 도착하다니 놀랍기만 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교통편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유럽은 마지막 비행기를 위한 리무진이 늘 공항에 대기하는 것 같다. 텅 빈 공항 도로 앞에 서있는 리무진 버스에 나를 비롯한 많은 여행자들이 서둘러 리무진에 탑승했다. 짐이 많아 카트를 이용했는데, 리무진 버스를 탑승하려니 주변에 다른 카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카트 이용료라 생각하기로 하고 쿨하게 내 1유로와 작별했다. (안녕 내 1300원)

베르겐 리무진 버스 이용 포스팅은 다른 블로그에 잘 소개되어 있어서 급한 마음에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베르겐의 호텔들과 각 주요 관광 명소에서 세워주니 자신의 숙소와 가까운 곳을 체크해두었다가 내리면 된다.

리무진은 현금과 신용카드 둘 다 결제가 가능하며, 무인 기계에서 미리 티켓을 구입하지 않아도 기사님 앞의 기계 앞에 신용카드를 읽혀주면 된다. 나는 왕복 티켓을 무인기계에서 결제해서 탑승할 때 사용했다.



그렇게 도착한 베르겐에서 내 숙소는 브뤼겐 뒤쪽 언덕 중반에 있는 오래된 목조주택 중 하나였는데, 심지어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이미 리무진 버스에서 내렸을 때부터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화가 났다. 캐리어를 끌고 엄청난 각도의 언덕을 오르는데 갑자기 어두운 옆 공원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벽 혼자 캐리어와 엄청난 짐을 끌고 언덕을 오르는 동양인 여자애의 패기가 우스웠던 것인지 몰라도 그 발작적 웃음에 나는 더 기분이 나빴다. 사람 없는 골목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이 짐들을 다 던져놓고 잠을 잘 거야 하고 씩씩거렸다. 겨우 찾은 어두운 골목의 건물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자마자 나는 황망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숙소가 4층인 것은 각오하고 왔지만, 각도의 가파르기며 계단의 폭이 아슬아슬 위험해 보였다. 4층 계단인데 왜 더 높아만 보이는지. 결국 나는 짐을 두 차례에 걸쳐 옮겨야 했다. 이웃들이 깰까 봐 조용하게 옮기는 것도 물론이고. 옷 안에는 훈김이 차오르고 식은땀이 났다.



짐을 겨우 다 옮기니 시간은 벌써 1시 반이었다. 숙소에는 커다란 별 모양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나 혼자 쓰기에는 제법 비싼 숙소였는데, 이 숙소는 2박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비행기와 첫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 28시간밖에 머무를 수 없는 비운의 숙소였다. 커다란 주방과 예쁜 거실을 보며 나 혼자라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창 밖에 너무 예뻐서
테라스를 열었더니 하얀 눈이 지붕에 조금씩 쌓여 있었다.

바닥이 지끈거려 실내용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홀린 듯 테라스의 문을 열었다. 하얀 눈이 쌓인 지붕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베르겐을 서서히 덮는 아침
참 예쁜 풍경이었다.
영화에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의 집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배가 고팠지만 새삼 이제껏 보지 못했던 창 밖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냉장고가 비어있건 무슨 상관인가. 이토록 멋진 풍경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배가 고프면 힘들어진다. 게다가 그 전날 크루아상과 샌드위치 한 개, 핫도그 하나로 배를 채우고 4층까지 무거운 짐을 날랐다면 더더욱! 베르겐의 피시 마켓에서 맛있는 걸 사서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하고 옷을 챙겨 입고 거리를 나섰다. 브뤼겐 뒤쪽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내 숙소는 베르겐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뷰와 북촌 한옥 스테이 뺨치는 전통적인 분위기를 뺨뺨 뿜어내고 있었지만 뭘 먹으려면 좀 걸어내려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계단이 참 가파르다
캐리어 바퀴의 천적이었던 골목길, 낮에 보니 참 예뻤다.
저 멀리 스타벅스가 보인다.
플뢰엔 산을 오르는 곤돌라 역 / 밖도 참 예쁜데 안은 갭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신식이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플뢰엔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역이 보인다. 가격이 비싸서 직접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실 피곤하지만 않다면 고려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등산에 쥐약인 휴족시간이 절실한 여행자였다. 베르겐 카드로 1회 왕복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선 베르겐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기로 했다. 게다가 피시 마켓도 그 근처에 있다고 했으니 배를 채우고 힘을 얻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희망찬 여행자였다.

(비성수기인 10월~4월까지는 베르겐 카드로 무료 이용이 가능하나 성수기인 5월~9월에는 베르겐 카드가 있어도 50% 할인만 받을 수 있다.)


너무 예쁘고 클래식했던 맥도날드
구글맵은 피쉬마켓은 여기라고 / 여기가 맞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현실을 부정하고픈 나의 시선을 보고 계시다...

호기롭게 맥도널드를 지나쳤건만, 이른 아침부터 열린다던 베르겐 피시 마켓은 흔적조차 안보였다. 너무 슬프고 기력이 없지만 눈에 보이는 베르겐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르겐 인포메이션 센터는 생각보다 크고 깔끔했다. 북유럽 여행 후에 내가 가진 북유럽에 대한 인상이 아주 많이 달라졌는데, 디자인적으로도 UX적으로도 사회를 구성하는 서비스 디자인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정'을 찾아보긴 힘들지만 묻는 말에는 성심성의껏 대응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베르겐에 있는 많은 관광지나 미술관, 아쿠아리움, 공연 등의 정보 팸플릿을 찾아볼 수 있고 궁금한 점을 문의할 수도 있다. 또한 베르겐 카드도 여기서 구입이 가능하다.

한국처럼 빠른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순서를 불러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더라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좋게 말하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운나쁘면 대기 시간이 무척 길 수도 있다.


직원이 직접 적어주는 날짜와 시간, 다음 날 11시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베르겐 카드 구입과 함께 내게 직원이 건네준 것은 바로 베르겐 주요 시설들의 OPEN과 CLOSE 여부가 날짜별로 적혀있는 A4용지였다. 이걸 받아 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KODE도 닫았냐고 물어봤는데 직원이 무척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년까지 1월 1일까지 쉰다고 말해주었다. 심지어 지금은 피시 마켓도 안 한다고 했다. 급격하게 시무룩해지는 나를 본 직원은 베르겐 패스와 함께 베르겐 시내가 상세하게 표시된 베르겐 지도를 건네주었는데 직접 오늘 들릴 수 있는 곳들을 직접 체크해주면서 가볼만한 곳들도 추천해주었다. 맛있는 식당도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몰랐지만 베르겐의 몇몇 식당들은 베르겐 카드를 보여주면 할인도 가능하다. 직원에게 추천받은 식당에 갔더니 베르겐 카드를 보여주고 20%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살인적인 노르웨이 물가를 생각하면 감격할만한 포인트이다.

학생은 베르겐 카드도 할인이 된다. 학생증을 따로 확인하진 않는다.


2017년 베르겐 카드 / 베르겐 시티 패스 가격


시간 : 성인 / 아이(3-15살) / 학생 or 시니어

24시간 : NOK 240 / 90 / 192

48시간 : NOK 310 / 120 / 248

72시간 : NOK 380 / 150 / 304


개인적으로 느긋하게 베르겐을 관광하는 사람에겐 추천하지는 않는다.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 가능에 혹해서 샀는데, 생각보다 베르겐 곳곳으로 버스가 다니진 않았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비성수기라 그런지 곤돌라 왕복도 무료였는데, 찾아보니 5월부터 9월은 곤돌라도 50% 할인 적용이라고. 음 관광도시스럽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베르겐 카드 info website : https://en.visitbergen.com/bergen-card


배고프다. 예쁜데 배고프다.
한 조각의 천국, 배고픈 여행자에게 절실하게 먹혀든 한 문장이었다.

길을 걷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은 상점에 들어갔다. 목이 말라서 생수를 마시려니 생수 500ml 한 병에 5-6천 원이었다. 스웨덴에서 받았던 물가 쇼크를 노르웨이에서 한 번 더 받았다. 콜라도 환타도 모조리 500ml 한 병에 5000원이 넘었다. 배고프고 목마른데 고작 콜라를 마시기 위해 5000원을 쓰긴 싫었다. 한국 콜라랑 맛이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이른 아침 문을 연 가게도 많지 않은데 터덜터덜 인도를 걷다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버커킹의 홍보 배너였다. 정말 인상적인 문구였다. 배고픈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한 문장이었다.


A PIECE OF HEAVEN


배너 위의 동글동글한 작은 핫케이크들이 눈 앞에 굴러다녔다. 여행지에서 첫 끼니를 절대로 패스트푸드 따위로 채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고민했지만 노르웨이의 물가에 이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쌀쌀한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추천받은 레스토랑들도 문을 안 열었을 시각. 나는 버거킹의 문을 열었다. 핫케이크 한 봉지의 가격은 3000원쯤이었을까. 목이 마를 것 같아 콜라를 추가했다. 그렇게 NOK 46을 지불했다. 한화로 6천 원가량이지만 만원이 넘는 햄버거 세트를 시키지 않았다는 기쁨이 컸다. 곧 콜라 한잔과 핫케이크 한 봉지가 나왔다.


이 맛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작고 따뜻한 핫케이크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맛있었다. 목이 말라 콜라를 마시면서도 핫케이크가 줄어드는 게 너무 아쉬웠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핫케이크는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의 한 조각이었다. 동화 속의 마을 같은 베르겐 사 먹은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미니 핫케이크는 가격도 맛도 내게 선물 같았다. 기대했던 일정이 틀어져 속상했던 여행자에게 작은 핫케이크 한 봉지가 위안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니 여행지의 노점도 쉬이 지나치지 말기를,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한 조각의 천국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까. 그것이 내가 베르겐에서 배운 첫 교훈이었다.








베르겐 여행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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