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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Aug 31. 2018

어떤 가게

피크닉델리 오픈 전 이야기

피크닉델리가 오픈하기 전 적었던 글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

이대로 묻기에 아까워 올려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내가 생각해봤던 걸 실제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걸 다른 사람 돈으로 할 수 있다면 베스트였겠지만, 실험적으로 저질러보고 싶은 일도 결과적으로는 내 책임이 아닌 회사의 목소리가 되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놀기 위해 궁리하는 것에 통달했고, 그걸 위해 고된 준비나 무거운 짐을 들고 옮기는 일, 번거로운 과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만의 기발한 루트나 방법이 떠오르면 얼마나 즐거운지! 그걸 실행하는 시간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했다. 그러나 내 업무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그 결과를 잘 정리해서 보고하고 전략적으로 다음을 제안하는 일이었기에 무척 스마트하고 멋진 일이었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진짜 내 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거야. 이런 걸 하고 싶었어!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친동생이 시작한 가게가 제주도에서 자리를 잡았고, 가족들의 시선이 자영업에 관대해져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지금도 내가 망해서 돌아올 거라 생각하시며 그냥 돈을 날렸다 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여동생은 테이크아웃 전문 케이크집을 추천했다. 선물용 케이크나 테이크 아웃용 케이크를 사기에 마땅한 곳이 제주도에 많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요도 있으며 준비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작은 점포에서 시작하면 될 거라고 했다. (네, 세상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가게를 구했다.

위치는 공인중개사분에게 연락했을 때 문자 답장이 없어서 전화를 드리니, 외진 곳이라서 문자 답장을 할 생각조차 못하셨다고 하실만큼 외진 곳.

정말로 가게를 여기서 하실 거냐고 위치 확인하고 연락달라 하실만큼 외진 곳.



하지만 제주도 시내의 고질적인 주차난이 없고, 앞에는 밭이 있고 밭 건너편에는 커다란 유치원이 있고, 뒤로는 원당오름, 앞으로는 삼양 어름물 노천탕과 삼양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 있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있는 점포였다. 덤으로 권리금 없는 신축. 시스템 에어컨 완비, 바닥은 대리석 타일(취향은 아니었지만), 폴딩 도어가 있는 햇볕 잘 드는 점포. 가격도 수비 범위내. 집주인도 좋은 분이셨고, 제과점을 하기에 문제없는 건물이라 하루 고민하고 계약했다.


이제 가게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면 되는데, 위치가 너무 외지고 자연환경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서 (물론 그렇다고 창밖 풍경이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그냥 테이크아웃 케이크 전문점을 하기엔 아쉬웠다. 동네주민분들도 아쉬우실거고, 또 나다운 포인트가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하면 즐거운 가게가 될까 자나깨나 밥을 먹을 때나 고민했다.



코앞이 해변에 뒤로는 나무가 가득한 오름이 있고,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아름다운 자연과 넓은 하늘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맛있는 음식과 예쁜 피크닉 가방을 들고 소풍을 가고 싶었다. 멋진 자연 속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뒹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무엇을 팔고 싶은지 명확해졌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간단하고 예쁜 음식들과 그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예쁜 냅킨과 피크닉 매트, 피크닉 가방까지.


나는 제주도에서 멋진 피크닉을 판매하기로 했다. 


더불어 간단한 음식들과 빵, 케이크는 주변 동네분들도 언제든 사드실 수 있으실테니 동네 장사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피크닉이라는 주제는 고민할 수록 무궁무진했다. 내가 얼마나 멋진 피크닉 스팟을 발굴할 수 있을지. 그 곳의 컬러와 맞는 디쉬와 피크닉 매트, 빵과 케이크를 셀렉하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지. 나처럼 먹을 것을 좋아하고, 다양한 곳을 방문하길 좋아하고, 스토리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쓸데없는 것에 공들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이기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피크닉 델리가 어떤 가게냐고 묻곤 한다.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제과점이라 간단히 이야기 드리지만(실제로도 그분들에게는 제과점일테니!), 친구들에게는 멋진 피크닉을 판매하는 곳이야 라고 대답하고 있다.


로고 만들기 전 피크닉 델리 이미지 스케치


그렇게 무엇을 팔지 결정하고나니, 상호명과 로고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상호가 있어야 로고를 만들고, 로고를 만들어야 간판을 만들 수 있으니 중요한 일인데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로고 삽질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음글에서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고 어떤 준비가 우선 필요한지 깨달았던 점에 대해서 로고 만들기 에피소드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엊그제 천장에서 갑자기...누수가 생기고, 이케아 조립 과정 중에 불량이 발생해서 맞교환 상태여서 시간이 남아 글을 적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웃으며 적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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