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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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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Aug 20. 2019

고요한 우도에서의 1박 여행

대부분 모를 우도의 새벽과 밤의 얼굴

*글에서는 우두봉과 우도봉을 혼용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곳을 언급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나는 요 근래 나의 마티즈의 트렁크에 여분의 잠옷과 수건, 일회용 폼클렌징, 속옷 등을 넣어두었다. 언제든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큰 어려움 없이 떠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로켓의 연료탱크 같은 의미였다. 내가 갑자기 떠나고 싶어 졌을 때 더더욱 가볍게 액셀을 밟을 수 있도록.

곧 여름이 지나면 더 이상 트렁크에 속옷이나 잠옷을 미리 챙겨둘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없으면 아쉬운 수영복이나 가오리 모양 튜브, 스노클링 마스크는 당연히 자리를 비워줘야겠지.

여름은 참 짧다.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려면 공기라도 무척 뜨거워야 할 텐데 벌써 입추라니 복날은 대체 어느 순간에 다 지나간 것일까(웃음) 이러다 서빈백사에서 해수욕을 하고 까만 우도의 밤 아래에서 책을 읽는 일은 묘연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급하게 우도로 떠났다.

키워드는 한 줄


고요한 우도에서 별 아래서 느긋하게 책 읽기
마지막 배가 떠난 후에 검멀레 해변

제주도민이니까 할 수 있을 때 하자고 마음먹고 당일 12시에 소섬바당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그대로 종달항을 향해 내달렸다.


1시간에 10대만 들어갈 수 있어서 따닥따닥 차들이 줄을 서있어야 했다.. 표를 사고 나서 줄을 서야 한다.



몇 년 전 들렸던 종달항.

성산항보다 작고 아담하고 입에서 발음되는 종달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귀여워서 다른 생각 없이 종달항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성산항에서는 차량 반입이 꽤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종달항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자동차 때문에 4분 후에 출발하는 1시 배를 보내고 2시 배를 타야 했다.

자동차를 가지고 가지 말까 생각했는데, 숙박을 한다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거라 매표소 직원들이 추천해주셔서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종달항에서는 1시간에 한 대씩 배가 출발하고, 하우목동 포구로 들어간다. 천진항을 가려면 성산항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제주도민이라 입장료를 뺀 성인 편도 4500원, 그리고 마티즈는 소형 경차라 12800원과 차량 입장료 4000원 (우도 주민이라면 무료라고 한다.) 우도 입도 시 금액은 17300원.

티켓은 차량으로 탑승할 때 배의 입구에서 직원분에게 건네드리면 된다. 후진으로 배에 차를 넣는 경험이 처음이라 덜덜 떨며 탑승했다.


안개 자욱한 우도의 모습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대기할 수도 있었지만, 제주도에서 산다고 해서 배를 자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차에서 내려 우도를 바라보았는데 아쉽게도 며칠간 자욱했던 해무가 역시나 오늘도 자욱했다.

쨍하고 멋진 날에 오고 싶었던 터라 조금 아쉬웠다.



잡아놓은 숙소의 체크인이 3시였는데 너무 들떠서 2시 배를 탔기에 할 일을 고민하다 우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예전에는 하고수동에서 한 바퀴 돌기를 포기하고 해수욕을 했었기 때문에 숙소 가기 전 우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대여해서 즐기고 있는 전기 스쿠터들이 도로에 많아서 시원스럽게 달리기가 어려웠고, 혹시나 사고가 날까 신경을 곤두세워 운전해야 했기 때문에 오른쪽 허벅지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좁고 갑자기 꺾어지는 구간도 많고 공사 중인 곳들도 종종 있어서 나처럼 안전 지상 주의자인 사람에게 한창 관광객이 많은 시간에 우도에서 운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3시가 되자마자 나는 숙소에 도착했다. 우도는 섬이라서 그럴까(제주도에 사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우습긴 하다.) 해무가 자욱하기도 했고 배를 타고 오면서 땀과 습한 공기가 몸에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시원하게 씻고 다시 나가고 싶었다. 내가 예약한 방은 소섬바당 해녀실. 총 8개의 침대가 있었고 4명의 인원이 숙박을 했다. 방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었다.

소섬바당은 깔끔하고 예쁜 숙소였다. 숙소 근처에 나름 큰 하나로 마트가 있고, 우체국도 있고, 주유소도 있었다. 위치적으로나, 청결도 면에서나, 손님을 세세하게 챙기는 부분에서나 모두 마음에 들었다.


뜨거운 물이 펑펑 나와서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옷을 걸친 후에 숙소를 나섰다. 체크인하면서 직원분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는데 내일 태풍주의보 때문에 오전 9시까지만 배가 뜬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차를 가져왔기 때문에 탈출하려면 오전 7시에 채비해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여유롭게 스케줄이 허락된다면 이틀 정도 우도에서 지낼 생각이었던 나는.... 바로 하하호호로 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우도 방문 때는 솔드 아웃되어서 먹지 못했었기 때문에 섬을 둘러보며 들렸었는데, 엄청난 웨이팅에 질려서 사람이 적을 내일 오전 중에 사 먹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오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직원분의 조언에 급하게 일정을 변경했다. 우선 햄버거를 포장하자!


하하호호의 장점은 주차장이 아닐까? 도로변에 있지만 주차는 주차장으로 안내되어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하하호호 앞이 의례 정체구간이 될 법한데도, 생각보다 웨이팅이나 왕래가 쉬웠다.

포장 주문을 하자,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시며 옆에 있는 독립서점 밤수지맨드라미의 커피가 맛있다고 추천해주셨다. 주문이 바삐 밀려들어 퉁명스러울법한데도 웃으며 기다릴 수 있는 장소까지 추천해주시는 모습에 같은 자영업자로써 존경심이 밀려들었다.

밤수지맨드라미 서점은 참 예뻤다. 사고 싶은 책도 많았고 다양한 소품도 많았다. 안쪽에는 앉아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예산을 빡빡하게 10만 원으로 잡았기 때문에 섣부르게 뭔가를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고른 우도 8경 엽서. 이 엽서를 고른 이유는 숙소에 체크인하기 전, 우도를 한 바퀴 돌면서 보았던 우두봉이 내 우도에 대한 예전 인상을 모두 깨부수어버릴 만큼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인지 낮 2시경 우두봉 옆얼굴을 볼 수 있는 검멜레해변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주차장이 꽉 차 있어서 도저히 머무를 수 없었다. 심지어 급경사 구간이라 멈춰 서서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었다.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에 이 고요하게 보이는 우도 2경 '야항어범' 엽서를 보고 엽서를 사서 나한테 편지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우체국 업무 마감은 6시. 햄버거의 픽업 예상 시간은 4시 15분, 가볍게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들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햄버거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궈진 마티즈 안에서 2000원을 주고 구입한 엽서 뒤에 편지를 썼다.

쫑알쫑알, 의미 없는 내용이지만 지금의 내 기분과 어떤 상황인지 빠르게 휘리릭 적어 내려갔다.


하하호호 마늘 햄버거 단품, 만원

정말 40분이 걸렸다. 30분 걸릴 일을 40분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웨이팅 시간을 알려줬다면 여유 있게 그 시간을 꽉 채워서 있다가 오자.


햄버거를 구했으니 이제 햄버거를 먹을만한 장소로 이동할 차례다. 그전에 우체국을 들리고 엽서를 보낸 후 천진항에 들려 내일 배 상황을 알아보고, 그 뒤에 시원한 음료를 사서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 맛있게 먹기로 했다.



제주도 우도 우체국. 직원 두 분이 계신 조그마한 우체국이다. 정말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인데 최신식으로 잘 정돈된 모습이 낯설었다. 친절하신 직원분이 내가 받을 주소를 누락한 걸 알려주셨다. 우편 요금은 470원.



육지 사람인 나의 경험으로 표현하자면, 우도는 육지사람들이 생각하는 제주도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한가롭고 밭과 돌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용한 섬. 저 멀리 우두봉과 오름이 섬 한편을 채우고, 섬을 사방을 둘러싼 아름답고 넓은 바다가 주민에게 풍요를 주기도 하고 고립시키기도 하며 사람을 단단하게 고요하게 키워내는 곳. 너무 아름다워 시선을 빼앗기 다가도 병원도 마트도 맛집도 많지 않은 이 곳에 사는 것이 결코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오후 4시 반쯤 도착한 서빈백사는 주차장의 자리가 하나둘씩 나고 있었고, 무사히 주차를 하고 해수욕장으로 달음박질쳐서 내려갈 수 있었다. 많은 가족들이 자녀들과 함께 헤엄치고 있었고 뒤편에서는 해수욕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청년들이 간이 노래방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음치인 모양인지 음이 불안하고 고음 부분에서는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이제까지 잘 관리되던 제주도의 다른 해수욕장을 가다가 소박한 즐거움에도 낄낄거리는 동네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명한 곳이지만) 청년들의 어설픈 라이브를 들으며 하하호호의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더운 날씨에 상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급하게 입에 햄버거를 밀어 넣었는데 특별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신선한 재료와 맛있는 패티가 잘 어우러진 햄버거였다. 하지만 다음에 또 간다면 매장에서 먹을 것이 아니라면 우도 롯데리아의 햄버거를 사서 해변에서 먹을 것 같다.

사진이 없어서 아쉽지만, 서빈백사 해수욕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사람들 다리 주변을 맴돌며 팔뚝만 한 물고기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바위의 해초 사이에는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많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헤엄치고 있다. 물이 맑아서 잘 보이기도 하지만, 이토록 많은 물고기들이 사람을 겁내 하지 않고 닥터피시처럼 사람들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 튜브를 타다가 마스크를 꺼내서 둥둥 떠다니며 물속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론 헤엄쳐 나올 때마다 발이 조금 아팠지만, 하얀 산호가 파도에 데구루루 구르는 모습을 보면 아픈 발도 참을 만했다. 파도에 산호가 구르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 그 어느 해변에서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니 꼭 눈에 담아 갔으면 좋겠다.


오후 6시가 지나면, 사람들이 썰물 빠진 것처럼 뜸해진 우도를 만날 수 있다. 뉘엿뉘엿 지는 해 아래에서는 몇 시간 전만 해도 부산했던 도로와 가게들 주변에는 드문드문 여행 온 가족 관광객과 퇴근하는 우도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말린 후에,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우도를 달렸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따라 우두봉의 옆얼굴을 보러 검멜레 해수욕장으로 갔다. 쨍한 햇살 아래서 보였던 웅장한 위엄은 덜했지만 층층이 드러난 표층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아무도 없는 계단을 따라 너무 적막해서 무섭기까지 한 검멀레 해변으로 내려갔다. 까맣고 동그란 돌들이 귀엽다. 우도의 각 해변들이 이토록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동그란 돌들과 웅장한 표층이 매력적인 검멀레, 넓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인 하고수동, 하얀 산호 백사가 이국적인 서빈백사.

그중 검멀레는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하고, 크고 작은 돌들로 해안이 이뤄져 있어 상대적으로 부산한 두 해변과는 인상이 아주 다르다. 까탈스럽고 도도한 해변이랄까.

혼자 서있으니 텅 비어있는 줄 알았던 해변과 표층에 갯강구들이 가득했다. 혹여 갯강구들의 습격을 받을까 후다닥 계단을 올라왔다.

텅 빈 우도의 텅 빈 도로를 달린다. 이따금 퇴근하는 동네 주민의 시선을 받는다. 우도 전기차 대여소에 복제인간처럼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점심쯤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던 맛집도, 젊은 청춘들의 기합소리가 울려 퍼졌던 짚라인도 아까의 소란이 한순간의 꿈인 것처럼 조용했다.

문득 사람이 그리워 서빈백사로 갔다. 하얀 산호해변은 해가 뉘엿뉘엿 구름 뒤에 숨을수록 아름다움을 내려놓고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하늘은 내일의 태풍을 예고하듯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빛났다.

저녁은 백종원 도시락으로 때웠다. 혼자 온 여행에서 비싸게 돈을 주고 밥을 먹을 배짱도 없고 여행 경비를 10만 원으로 잡아두었으니 내일 뱃삯을 생각해서 아끼기로 했다. (첫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내가 오늘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었지! 이왕이면 햄버거와 비슷하지 않은 메뉴가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와 모기에게 헌혈한 내 다리만 빼면 아주 좋았다.)

핑크빛으로 빛나는 우도의 해변을 보며 밥을 먹는 동안 뿌듯했다. 내가 정말 알찬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날 본 우도의 풍경들은 요 근래 한 달간 본 그 어떤 풍경보다 인상 깊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 너무나도 충만하게 느껴졌다.

해가 지고, 모기가 물린 곳이 가려워 얼른 차로 피신했다. 혹시 바르는 모기약이 있을까 싶어서 우도 하나로 마트를 들렸다.


인상 깊은 점은 육류가 진공 포장된 상태로 팔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육지에서 가공을 해서 들여오는 것 같았다. 우도의 가정집에서 진공 포장된 고기를 사서 찌개를 끓이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기약은 비싸서 사기를 포기했다. 모기 기피제 종류가 더 많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민가가 모여있는 곳에 있는 우도의 도로에는 LED 라이트가 도로 양쪽에 설치되어 있어서 담이 없는 집과 도로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짖고 있었다. 내 상상에는 시골이니 어둡고 침침하고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해야 할 것 같았는데, 밭 사이 어두운 도로가 아니면 오히려 치안은 우도가 더 좋아 보였다.


제2경 야항어범을 보기에는 태풍주의보로 바다 위에 배가 많지 않았다. 반면에 어둠 속에서 홀로 저 멀리 빛을 뿜어대는 등대가 반작이는 보석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우도 등대는 멀리 내가 서있는 어두운 도로 위에서도 잘 보일만큼 반짝반짝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은 인공적인 빛인 우도 등대, 반대쪽에는 구름 사이에 살풋 얼굴을 드러낸 자연의 달빛
야항어범. 어두운 우도를 밝히는 불빛 중 하나다.
저 배들도 우도 등대의 빛을 보고 있을까?


엽서와 비교해본 실제 풍경. 일러스트도 실제 풍경도 둘 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니 모기 기피제를 필히 챙기시길. 기피제가 없어서 더 오래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반짝반짝 빛나는 우도. 내가 상상했던 어둠 가득하고 별빛 가득한 우도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웠다.

우도의 풍경에 너무 취해서일까, 결국 고대하던 책 읽기는 세 페이지만 겨우 읽고 끝나버렸다.


오전 5시 38분, 제주도의 일출시간.

익숙하지 않은 도미토리에서 잠을 설쳐서 결국 일출을 보러 나왔다. 조금 게을렀으므로 이미 해가 조금 뜬 상태.


인기척 없는 밭 사이를 부릉부릉 달리고,

하고수동에서는 같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손님이 자전거를 타고 일출을 보러 나온 모습을 보았다.

해를 보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에 우두봉으로 향했다가 내가 좋아하는 우두봉 옆얼굴을 한번 감상하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로를 전세 낸 것처럼 즐겨본다.

말은 한가로이 이른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다. 여름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새벽.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작년 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며 성산일출봉을 올랐었는데 매년 여름 어딘가를 오르는 것 같다.

바보는 높을 곳을 좋아한다지. 조식 시간은 7시 반부터였고 나는 조그마한 도미토리 침실로 서둘러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지금 시간이 6시이니까 가볍게 올라가고 나서 조식을 먹으러 가자고 생각했다. 우도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숲길 입구를 지나오니 엄청난 하늘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언덕에 휘황한 구름들이 수놓아져 있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저 멀리에 어제저녁에 너무 아름다웠던 우도 등대의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걸까? 습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에 아픈 발을 이끌고 계속 올라간다.

조금 오른 것 같은데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잠을 설친 것이 고맙게 느껴지면서도 태풍주의보라더니 대체 어디에 태풍의 낌새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카메라가 쉴 틈이 없다
아침의 우도는 동화 속 같다.
핑크빛과 하늘빛, 녹색이 조화로운 풍경
우도 등대 옆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바다가 넓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인정하게 되는 신비한 풍경.
해가 뜨고 난 후에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의 얼굴
만약 우도에서 하룻밤 잠을 자게 된다면,
새벽 우도봉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본다면 좋겠다.


새벽 공기 속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피곤함도 우울함도 모두 한순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발의 상처 때문에 걸을 때마다 살이 터진 것처럼 아팠는데도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오르고 있는 내가 거기 있었다. 그 마법 같은 시간 속 그 하늘 아래서 나는 우도 여행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어제저녁 내가 등대를 내려다보았던 곳을 이 날 아침 내가 우도 등대 옆에서 내려다볼 줄이야. 디오라마 같은 풍경에 눈을 뺏기고,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도 마음은 어느새 우도봉 길을 따라 걷고 싶다고 조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등대도 참 예뻤다. 하얀 등대는 은퇴한 구 우도 등대, 빨간 모자가 앤틱한 현 우도 등대.

새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해풍을 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 등대 옆에 드나드는 새가 부러웠다.

우도 등대에서 내려오자 해가 등 뒤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우도 등대에서 내려오다 보니 바람의 언덕에서 보는 풍경을 어떨지 궁금해서 올라가 보고 싶어 졌다.

유럽인가 착각이 드는 목가적인 풍경을 등지면, 푸르른 바다 건너 제주도가 보인다.

바람의 언덕을 뒤로하고 7시쯤 우도봉을 내려왔다.

00:13부터 보세요.
아침의 호젓함을 느끼긴 어렵겠지만, 우도봉 입구에 있는 ATV 체험을 통해 쉽게 우도봉을 돌아볼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일출시간에는 영업하지 않는다.
휑한 주차장에 차가 세대. 내 귀여운 티티

아침 공기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와 끈적 해진 몸을 샤워했다. 피곤한 몸을 잠시 노곤하게 쉬고 있으려니 소섬바당 어머님이 손수 깨워주시며 차를 가져왔으니 빨리 조식을 먹고 항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소섬바당 해녀 어머니가 손수 끓이신 보말죽

뜨끈한 보말죽에 무제한 리필 가능한 오징어젓과 양파장아찌, 김치를 급하게 먹었다. 뜨끈한 보말죽은 비리지도 않고 고소했다. 소섬바당 어머니는 우선 천진항을 가서 배를 알아보고 없으면 하우목항으로 가라며 친절하게 루트를 설명해주셨다. 차를 가져온 사람들은 조식 설거지도 하지 말고 출발하라며 등을 떠밀어주셔서 우도봉에서 본 날씨가 그렇게 좋았는데 과연 배가 끊길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출발했다.


역시 바다를 평생 끼고 사신 분들 말은 새겨들어야 하나보다.


천진항에 도착하자마자, 태풍주의보 때문에 다음배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빨리 출발하라는 직원분의 말에 우선 급하게 배에 차를 실었다. 그리고 배에서 우도를 바라보니 우도봉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파랬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거친 파도에 배가 출렁거렸다. 올 때는 낌새도 없었던 멀미가 울렁울렁 올라왔다.

 


그대로 차를 성산항에 내려 집으로 달려오니, 7시 50분쯤 배를 타고 우도에서 출발했는데 8시 48분에 집에 도착했다. 배를 탄 시간을 빼면 50분 만에 집에 내달려 온 것이다.

12시에 출발한 1박 여행의 끝이 다음날 오전 9시가 될 줄이야.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우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우도에서 1박을 하고 오길 추천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던 3가지가 모두 내가 우도에서 하룻밤을 보냈기에 만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뽑은 나만의 우도 3경은 아래와 같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 본 물고기 떼들
섬의 밤을 밝히는 파도의 오르골 우도 등대
우도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풍경


내가 예전에 그랬듯, 뙤약볕 아래 몇 시간으로 우도를 다 보았다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번 여름에 만난 우도는 정말 동화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우도에 가고 싶다. 이번엔 모기 기피제도 꼭 챙겨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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