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노 Jan 29. 2016

셀프 생일 케이크 제작하던 날

내 생일, 딸기 요거트 치즈 무스 케이크를 만들어 보았다.


아주 잠깐 파티쉐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제과재빵을 배우는 동안 종종 집에서 무스 케이크를 만들곤 했는데 그 뒤에도 몇 번 만들 일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 가족 입에 온전하게 그 케이크들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는 것. 매번 만들 때마다 '줄게'라는 말을 버릇처럼 했으면서도 늘 남은 재료들을 대강 담아 맛만 보았을 뿐이랄까.(재료비가 비싸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파티쉐로 일했을 때는 내가 만든 케이크를 몇 번이나 사다 드린 적이 있지만, 집에서 직접 만든 케이크 완성품을 제대로 한 판 드린 적은 없기는 했다. 2009년쯤일 테니, 거의 5년 넘도록 매년마다 눈으로 보기만 하고 맛을 보지 못한 케이크에 대한 가족들의 서운함이 가득한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누나는 케이크 만들 때마다 맛보게 해준다고 했으면서,
아침에 눈뜨면 케이크랑 같이 없더라!


내 생일이 한 주정도 남았을 때, 모처럼 퇴직해서 일도 없고 남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곧 내 생일이라고 이야기하니, 케이크에 대한 남동생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나도 내가 만든 그 케이크를 제대로 맛도 본 적이 없건만, 대체 이게 몇 년 동안 계속 가려나 싶어 골치가 아팠다. (아마 평생 갈 것 같다.)

그래서 내 생일에 내가 케이크를 만들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해버렸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케이크 한 판 만드는 것쯤이야 몇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일이었다. ( + 설거지, 재료 다듬기, 장보기 )

게다가 예전에는 무스 틀에 재료를 부어 굳혀야 했지만 이번에는 핀란드에서 공수해온 이딸라 타르트 접시와 케이크 받침대가 있었다. 거기에 재료를 쌓으면 무스 틀에 채워 케이크를 냉장고에서 굳히지 않아도 모양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재료를 섞어 만든 반죽의 경우, 반나절에서 하루 냉장고에서 숙성하는 편이 훨씬 맛이 좋다. )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 있는 이딸라 아웃렛에서 사온 무민 타르트틀, 무민 마마가 그려져 있다.


생일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가족과 함께 먹고 남동생에게 장을 보러 가자고 눈짓으로 말했다.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케이크 재료라고 하니 나름 선선히 따라나서 주었다. 장바구니를 하나 챙겨서 마트로 쉬엄쉬엄 걸어가며 구매해야 할 재료들을 체크했다.


1. 플레인 요거트
2. 청포도(혹은 딸기)
3. 오레오 쿠키
4.  크림치즈
5. 레몬


젤라틴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패스. 레몬은 레몬즙을 사용하려는 목적이니까, 레몬주스가 집에 있다면 안 사도 된다. 하지만 우리 집 레몬주스는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레몬으로 구매했다. 청포도는 아쉽게도 판매하지 않아서, 마침 제철이라고 판매하는 딸기를 만원에 두팩 구입했다.




만드는 과정은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나이 먹고 가족들끼리 낄낄 웃으며 볼 생각으로 나름 쿡방을 표방하며 촬영했는데, 백주부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요리하면서 말하니까 이상하더라.)


필링이 궁금해할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판 젤라틴은 몇 시간 전부터 찬물에 넣어 불리고, 크림치즈는 볼에 넣고 부드럽게 크림화 될 때까지 휘핑한다. 알갱이 없이 크림화가 되었다면 플레인 요거트를 취향껏 넣어주는데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1팩에 플레인 요거트 6팩 - 10팩 정도를 취향껏 넣어 비율을 조절해준다. 회사마다 맛이 달라서 비율도 매번 조정해야 하는데 이건 틈틈이 맛을 보면서 조절하면 된다. 처음에 요거트를 다 넣고 섞는 것보다는 점차 양을 늘리며 섞어주면 된다. 난 새콤한 걸 좋아하기 때문에 레몬즙도 1개 반에서 2개 정도 짜서 넣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탕으로 맛을 마무리한다. 맛이 깔끔하지 않다면 설탕을 첨가해서 단맛이 안 날 정도로만 넣어주면 맛이 정리된다. 그리고 굳혀야 하기 때문에 물에 불려서 5배 정도 커진 판 젤라틴을 중탕을 해서 녹여준다. 그럼 끈쩍한 액체가 되는데, 만들어 놓은 크림치즈 요거트 베이스를 소량 작은 볼에 덜어 젤라틴과 섞어주고 그 반죽을 다시 전체 크림치즈 요거트 베이스에 섞어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베이스의 온도가 너무 낮을 경우 젤라틴이 섞이는 즉시 굳을 수도 있다는 것. 보통 여름에 만들어 몰랐는데, 겨울에는 온도가 낮아 금방 굳어버린다. 제대로 안 섞일 경우 맛이 없으니 온도 조절에 유의할 것.

귀찮으면 그냥  사 먹으면 된다, 재료 구매해서 만드는 가격이나 사는 가격이나 비슷하다는 걸 알아두자. 만들면 더 비쌀 수도 있다. 그러니 수제 케이크 만들어온 사람에게 파티시에를 하라거나 케이크를 만들어 팔라는 무리한 부탁은 제발 하지 말자. 나는 가족들에게 지은 잘못이 있으니 열심히 만들었다.


옆에서 남동생이 오레오 쿠키의 크림을 다 제거하고, 쿠키 부분만 비닐 봉투에 넣어 밀대로 으깨서 가루로 만들어 주었다. 땡큐 브라더.



그리고 두 팩 사온 딸기를 정성껏 다듬는다. 그 과정에서 물러서 모양이 안 예쁜 애들은 왼쪽, 예쁜 애들은 반쪽으로 잘라 오른쪽으로 나눈다.



보기만 해도 새콤달콤하다. 미국에서 먹던 딸기는 더 단단하고 예쁜 대신에 맛이 덜 달고 육질이 단단하다. 대신 블랙베리나 블루베리, 체리 등이 맛있다. 미국이었다면 베리 믹스 타르트가 더 맛있을 텐데.




타르트 틀을 준비한다. 타르트 틀이나 무스 틀이 없다면 그냥 납작하고 넓은 접시도 괜찮다.



녹인 버터를 섞은 오레오 쿠키 가루를 사용해야 하지만, 녹인 버터 귀찮고 어차피 버터 몸에도 안 좋은 거 귀찮아서 뺐다. ( 그랬더니 나중에 남동생이 바닥 쿠키는 좀 바삭바삭 씹혔으면 좋겠다고 피드백 줬다. 으헝 )

그러면 오레오 쿠키 가루가 모래처럼 산만하게 있을 테니 그릇을 흔들어 균등하게 그릇에 퍼지게 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에 가루를 더 부어서 채운다. ( 버터를 섞을 경우에는 스패츌러로 꾹꾹 눌러서 펴준다. )


 


보면 무민 마마 꼬리가 보인다. 저기에 마저 오레오 쿠키 가루를 채운다.



얼추 채워졌다면 ( 너무 두꺼울 필요는 없다. ) 이제 요거트 치즈 필링을 부을 차례다. 날씨가 추워 젤라틴이 굳을까 봐 마음이 급하다. ( 서둘서둘 )



한 번에 파악! 다 부으려고 하지 말고, 얌전히 살금살금 스패츌라로 양을 조절해가며 골고루 부어준다. 버터를 안 섞었더니 오레오 쿠키가 밀려나고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일부러 얇게 바닥을 깔았으니 당황하지 말고 다음 단계 중앙에 딸기를 한번 깔아준다.



그리고 아까 왼쪽에 분리했던 조금 무른 딸기들은 얇게 슬라이스 해서 필링 위에 깔아준다. 너무 무른 애들은 물이 나와서 필링이 상할 수도 있으니 그런 건 입으로 쏙 넣어주면 된다. 그리고 남은 필링을 부어서 타르트 틀 0.5센티 정도를 남기고 다 채워준다.



셀프 생일 케이크이니까, 스패츌라로 적당히 표면을 정리하고 이제 아까 오른쪽으로 분류했던 예쁜 딸기들을 케이크 위에 장식한다.



귀찮아서 중앙은 묻어버림. 바깥부터 한 줄씩 채워가면 된다.



무민이 삼단 체리 케이크를 들고 도망가는 모습이 그려진 케이크 받침대에 딸기 요거트 치즈 케이크를 올린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흠흠- 핀란드 아주머니들과의 눈치 싸움 속에 데려온 타르트 그릇과 케이크 받침대가 한층 더 예뻐 보인다.



유산지를 씌워 마무리. 이대로 냉장고에 넣어 굳혀도 좋지만, 그럴 경우에는 랩핑을 한 번 더 하거나 비닐봉투에 넣어 봉한 다음 굳히는 것이 좋다. 냉장고 안에서 굳히는 동안 반찬이나 다른 냄새가 배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제과를 하는 경우에는 꼭 잘 봉할 것. 기왕 만든 케이크에서 마늘 냄새가 나거나하면 오던 식욕도 도망갈 수 있다.


이렇게 몇 시간 차갑게 굳힌 다음 먹으면 정말 맛있다. 만든 직후 바로 먹는다면 달달한 필링과 생딸기, 그리고 오레오 쿠키가 촉촉하게 치즈 요거트 필링에 섞여 또 다른 맛이 난다. 하지만 역시 숙성해서 차갑게 먹는 게 제일 맛있기 때문에 두가지 맛을 즐기고 싶다면 절반은 바로 먹고 절반만 냉장고에 숙성해서 먹는 것도 방법이다.



미래 제부가 사다준 옛날 통닭과 딸기 케이크로 맛있게 보낸 내 생일.

다음엔 청포도로 도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