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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Mar 19. 2016

바이킹처럼 런치 타임

바이킹 패밀리 레스토랑



 북유럽 여행을 가기 전 보았던 책 '바이킹에서 이케아까지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는 내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어떤 레스토랑을 가야 한다거나, 그 나라에서 꼭 사 와야 할 기념품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북유럽 여행 전반에 있어 기본적인 기초 상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뷔페가 바이킹 문화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이킹들은 여러 음식을 늘어놓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아 먹었는데 이렇게 먹는 것을 '바이킹 음식'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상하게 코스 요리를 즐기는 모습은 그 후에 러시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사실 뷔페가 더 먼저 나온 식사 문화인 셈이다. 양껏 자신의 양만큼 음식을 덜어 먹고, 부족하면 더 가져와먹는 식사 문화가 바이킹과 잘 어울린다.




 헬싱키 도착 전날 미리 제이드와 바이킹 패밀리 레스토랑에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다. 제이드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런치 타임에 가면 저렴하게 크리스마스 런치 스페셜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제일 들어가기 힘든 식당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 제이드의 제안이 고맙고 반가웠다. 야니와 제이드를 만나 무민 스토어도 들리고 대광장도 들렸다가 셋이서 런치 타임 시작 시간에 맞춰 HARALD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위치는 헬싱키 스톡만 백화점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았다. 1층에 HARALD 입간판이 있어 옆의 문을 통해 2층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곳부터 인테리어가 남달랐다. 순록 마스크상에 도끼와 바이킹 방패, 벽면을 채운 바이킹 시대의 지도에 들어가기 전부터 입이 떡 벌어졌다. 아마 혼자 왔다면 계단에서 기웃거리다가 뒤를 돌아 다른 식당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식사 테이블 뒤에 있던 순록 마스크


핀란드인인 야니의 힘을 빌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런치 세트를 주문하고 세트 메뉴에 제공되는 샐러드바에 달려갔다. 샐러드 바에는 다양한 애피타이저들과 샐러드, 따뜻한 커피와 차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한 손에는 가득 애피타이저를 담고, 한 손에는 핀란드식 커피를 듬뿍 담아 가져오니 야니가 이래서 메인 메뉴를 먹을 배가 있겠냐고 웃음을 터트렸다. 가난하고 배고픈 여행자 생활이 며칠간 해서 그런지 내 접시 위는 메인 음식보다 더 양껏 담긴 샐러드와 연어, 고기로 가득했다. 맛도 궁금하고 처음 보는 요리들도 많아서 제이드가 좋아한다는 절인 청어부터 정체모를 고기까지 담고 나니 그릇이 넘칠 것처럼 음식들로 가득했다. 담을 때는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많았구나. 우유와 설탕이 들어간 커피는 달달하고 맛있었다. 핀란드에서 커피는 kahvi라고 하는데, 아메리카노보다는 진하고 에스프레소보다는 연한 kahvi에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면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핀란드 여행 내내 이 kahvi를 먼저 찾았을 만큼 제일 저렴하면서 맛있게 마신 메뉴였다. ( kahvi는 드립 커피라고 한다. )


옷걸이와 바이킹 모자가 마치 곰돌이처럼 보인다.


원하는 손님은 준비되어있는 플라스틱 바이킹 모자를 쓰고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가게 곳곳에 모자들이 걸려있었다. 야니와 제이드가 써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모자를 쓰고 기분을 내기에는 되려 민망할 것 같아 사양했다. 애피타이저를 비우기도 전에 메인 메뉴가 나왔다. 야니와 제이드가 주문 전에 미리 핀란드 레스토랑에서 한국처럼 식사가 빨리 나오길 바라거나 서비스가 좋기를 바라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는데 서버가 매우 여유로워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손님이 많지 않아서인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메인 메뉴의 접시에는 북유럽의 주식인 매쉬드 포테이토가 같이 곁들여져 나왔다. (모든 메뉴에 모조리 다!) 제이드에게 물어보니, 핀란드에서 감자는 우리나라에서 밥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야니의 외할머니 집에 초대받았을 때도 식사에 감자는 늘 있었다. 셋이서 골고루 맛보기 위해 순록 고기, 청어 튀김, 연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연어를 제외하면 두 메뉴는 생경한 메뉴였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구운 야채가 곁들여진 순록 고기


순록 요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양호했다. 불고기처럼 보이는 얇은 고기들이 매쉬드 포테이토 위에 듬뿍 뿌려져 있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매쉬드 포테이토에 베리 쨈을 곁들이고 질기고 독특한 맛이 있는 순록 고기를 함께 씹자 고소한 버터향과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서 뒤섞였다. 옛날에는 냄비에 한껏 요리를 해서 다 같이 나눠먹었을 테지, 우리가 쌀밥 위에 반찬을 올려 먹었던 것처럼 감자와 고기로 바이킹들도 그렇게 배를 채웠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풍미가 있거나, 맛있지는 않았어도 시장이 반찬인 전사들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매쉬드 포테이토와 구운 야채가 곁들여진 청어 튀김


바다를 누비던 바이킹이니만큼 북유럽에는 생선 요리가 많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청어 절임과 청어 튀김은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다. 북유럽에는 청어가 많이 잡히는 것일까. 부드럽게 씹히는 청어에 고소한 튀김옷이 위에 올려진 크림과 잘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고소한 맛이 아래 깔린 매쉬드 포테이토와 정말 잘 어울렸다. 행여나 매쉬드 포테이토에 잔가시가 섞여서 삼켜질까 봐 걱정이 되긴 했지만 꼭꼭 씹다 보면 부드럽게 꿀꺽 잘 넘어갔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크림 구운 야채가 곁들여진 연어 스테이크


그리고 다시 먹고 싶은 연어 스테이크, 나이프를 살짝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가볍게 부스러지는 연어 스테이크에 크림과 매쉬드 포테이토를 섞어 한 입 넣으면 농후한 그 맛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크림과 매쉬드 포테이토를 열심히 섞어서 싹싹 긁어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애피타이저로 배부른 와중에도 싹싹 긁어먹었던 연어 요리, 내 자리에서 제일 멀리에 있어서 아쉬울 정도였다.

디저트를 기다리면서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했다. 배가 부르고 피곤하다 보니 몸이 나른해져 왔다. 스마트폰은 지금이 11시라고 알려주었다. 아침부터 이동하고 친구를 만나고 호스텔 체크인도 하고 무민 스토어도 갔다가 대성당도 구경하고 밥도 먹었는데 11시라니.


"제이드, 우리 11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밥까지 다 먹었어."

"아냐, 지금 12신데?"

"내 시계는 지금 11신데?"

"핀란드 시간으로 맞춰뒀어?"

"아니, 자동으로 맞춰지는 거 아닌가?"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시간이 스웨덴 시간으로 맞춰져 있었다. 그때서야 비행시간이 왜 그리 짧게 느껴졌는지, 제이드가 한국 대사관에서 볼일을 끝내고 몇 시부터 나를 기다렸는지 퍼즐이 맞춰지듯 이해가 되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대체 왜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에 시차가 있는 거냐며 투덜거렸다. 시계는 다시 핀란드 시간으로 맞춰두었다.


"그러게 신기하다. 바로 옆 나라인데 1시간이나 시간이 차이가 나고 비행기로는 금방인데 그치?"





너무 달아서 이가 녹을 것만 같은 디저트를 먹으며 그렇게 우리는 웃었다. 바이킹의 나라에서 나는 첫 식사를 마치고서야 핀란드의 시간에 내 시계를 맞출 수 있었다.





HARALD 레스토랑


홈페이지 http://www.ravintolaharald.fi/?kaupunki=helsinki

위치 https://goo.gl/maps/2hSv6x7zCjB2


트립 어드바이저 헬싱키 소재 레스토랑 중 247위

바이킹 분위기로 꾸며진 레스토랑, 플라스틱 바이킹 모자를 쓰고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핀란드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체로 맛이 묵직하다.

엄청 맛있다기보다는 테마형 레스토랑에 가깝다.

헬싱키 스톡만 백화점 근처에 있다.

런치 메뉴를 먹으면 1인당 20유로 내외로 식사가 가능하다.

샐러드바 이용이 가능한 메뉴를 시키면 에피타이저 8종류와 쿠키, 차와 커피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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