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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Mar 31. 2016

북유럽의 숲 그 밤을 가로지르다

북유럽에서 꼭 해봐야 할 겨울 액티비티


크리스마스 날 종일 비가 왔다. 케미에 혼자 갇힌 채로 비를 마주하려니 기분이 우울했다. ( 기차와 버스는 모두 매진되어 갈 곳이 없었다. ) 어제 저녁 설상가상으로 맥북에어 충전기가 고장 나서 노트북도 함부로 켤 수가 없었다. 아니 5년간 잘 쓰던 충전기가 하루아침에 고장 날 수가 있구나. 노트북이 고장 나니 정말 내가 도시에 고립되었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귀중한 하루가 붕 뜬 셈이었다. 그동안 바삐 이동했던 것을 떠올리면 모처럼의 휴식이기도 했다. 사람이 심심하면 방 정리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방도 아닌데 호텔방 정리를 살뜰하게 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호피 호텔 404호


어제 저녁에 호텔 체크인을 할 때, 내가 미리 신청했던 액티비티 투어 예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의 27만 원에 육박하는 저녁 스노우 모빌 사파리였는데 처음에는 돈을 아끼게 되어서 좋구나 하다가, 저녁에 산책을 다녀본 결과 이 도시에 지독하게 할 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 기온으로 위험해서 얼음낚시도 무리, 교통수단이 모두 매진된 크리스마스 연휴인만큼 어딜 가는 것도 무리, 심지어 쇼핑몰도 모두 쉬기 때문에 쇼핑도 무리였다. 게다가 공업 도시라서 저녁에는 까만 어둠이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사방천지가 붉었다.



로바니에미에 있는 야니에게 메시지로 물어보니 공장 불빛이라고 한다. 대자연을 찾아왔는데, 보이는 게 공장 불빛이라니 눈물이 났다. 이렇게 된 이상 기필코 도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호텔 방에 돌아오자마자 케미 유일의 액티비티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제발 액티비티에 공석이 있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호텔 직원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지만 이토록 안 좋은 날씨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노트북이 망가져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방에 들어와 정리를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나가서 사진이나 찍자는 마음으로 스키복을 걸쳐 입고 카메라에 비닐을 씌워서 길을 나섰다. 쌓여있던 눈이 비에 녹아 바람이 쌀쌀했다. 모자 위로 투둑투둑 두꺼운 빗줄기가 떨어졌다.


바다에 파도가 없다.


저녁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수평선 끝이 보였다. 바다인데 찰랑찰랑거리는 파도조차 없었다. 발을 내디뎌 걷는다면 저 반대편 섬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숨이 아까우니까 그런 일은 하지 않았지만. 눈 위에 내린 비로 바다로 이어진 계단까지 얼음이 꽝꽝 얼어버렸다. 차들이 바다를 보기 위해 달려왔다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끝내는 걸까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 중에 눈에 익지 않은 메일이 하나 보였다. 어제 보냈던 예약 문의 메일에 대한 답변이었다.



HI, yes you can:-)
Our guide will pick you up from Hotel Merihovi at 19.40, and the safari will be at 20.00-22.00.
Price is 191,- Eur/ single drive, and payment by cash.

Wbr Maikku


안녕, 나이트 사파리 신청은 가능해.
우리 가이드가 오후 7시 40분에 메리호피 호텔로 너를 데리러 갈거야. 그리고 사파리는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야. 가격은 혼자 신청해서 191유로고, 현금으로 주면 돼.

Wbr Maikku


간결한 답장이었지만 뛸 듯이 기뻤다. 이 도시를 벗어날 방법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20만원이 대수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노트북 충전기는 고장 나서 놀거리는 없지. 도시는 심심하지. 오로라는 비 때문에 못 보지. 그 상황에서 이미 각오했던 191유로는 지불할 가치가 충분했다. 그런데 지불 방법이 현금이라는 것에 식은땀이 흘렀다. 북유럽은 카드 사용이 어디든지 가능해서 내가 수중에 191유로를 남겨뒀던가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지갑을 탈탈 털어보니 이럴 수가 182유로밖에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깟 9유로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서글프게 하나. 비상금으로 챙겨온 달러가 30달러나 있어도 소용이 없지 않나. 결국 나는 짧은 영어로 답장을 보냈다.



안녕, 답변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내가 문제가 하나 있어.
내가 현금으로는 딱 182유로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카드나 달러로 추가 계산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해.
답변 부탁해.

고운


정말 내가 9유로 때문에 나이트 사파리를 못하게 된다면 이런 엉망인 하루도 없겠구나 싶었다. 안되면 ATM기를 찾아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몇 분 안에 답장이 왔다.


Ok, 182,- Eur is enough:-)
Wbr Maikku


182유로도 충분하다는 답변이었다. 눈보라를 맞으며 드라이브를 한다고 해도 기꺼이 하고 싶어지는 답변이었다. 땡큐를 남발하며 침대에 누워 기쁨을 만끽했다. 대신 수중에 있던 유로 4분의 1을 액티비티 한 번에 몽땅 쓴다고 하니 긴축정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식사를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어제 나도 모르게 사버린 너겟 20조각과 크리스마스 햄, 안주용 햄, 야니가 사우나 후에 마시라고 준 까르후(곰) 맥주, 그리고 물에 불린 누룽지를 간단하게 먹었다.



맥너겟은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올드보이에서 감금된 오대수처럼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하나 입에 넣어 먹어 치우다 보니 나름 먹을만했다. 헬싱키에서부터 계속 가져온 햄도 맥주 안주로 맛있게 먹었다. 맥주를 마시니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아직 7시가 되려면 멀었다.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모처럼의 낮잠을 청했다. 술기운에 고롱고롱 잠이 들었다.


7시 40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파리를 하러 가는 손님이냐며 픽업을 하러 드라이버가 왔다. 차를 타고 곧 케미의 투어 사무소 앞에 내려주었다. 투어 사무소 안쪽은 온통 올인원 스키복과 부츠, 헬멧들로 가득했다.



스노우 모빌을 타는 동안 물웅덩이에 들어가기도 하고, 눈보라를 맞기도 하기 때문에 일체의 장비를 입혀준다. 내가 스키복과 스키바지를 입고 왔어도 또 입으라며 적당한 사이즈의 스키복을 건네주었다.


두꺼운 털실 양말

방한 방수 부츠

올인원 스키복

얼굴 보호 마스크

헬멧


위에 적힌 것들을 하나하나 가져다주면서 어떤 사이즈가 적당한지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체크해주었다. 특히 배가 볼록 나온 아저씨는 올인원 스키복은 몸과 스키복 사이에 공기가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따뜻하다며 몇 번이고 강조해주었다.(그 와중에 자신의 배로 유머를 한 번 날려주셨다.) 핫팩 등은 따로 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미 발바닥 핫팩과 온몸에 핫팩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거기에 올인원 스키복까지 입으니 몸의 관절 부분이 제대로 구부려질 수는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덩치가 거대해졌다. 영국인 커플은 지도를 보며 오늘 어디 부근을 드라이브할 예정인지 스태프들에게 묻고 있었다. 그 날의 기상 상황이나 온도에 따라 달리는 루트를 변경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멀리 돌지는 않는다고 스태프가 대답해주었다.



모든 체험 인원이 안전 조항을 확인했다는 서류에 사인하고 나서 준비된 벤에 올랐다. 벤이 비를 해치며 도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도착한 곳은 시내 외곽의 숲 근처였는데 이미 몇 명의 스태프들이 스노우 모빌을 정렬해 둔 상태였다. 한 체험팀당 네 명정도의 스테프가 따라다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벤에서 내리자마자 자동차 라이트가 없으면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어둠에 신이 났다.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해서 어린아이들은 노련한 스태프가 운전하는 스노우 모빌 뒤의 썰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어른들은 스노우 모빌 운전 방법과 수신호를 배우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운전 방법은 쉽다. 당기면 달리고, 놓으면 서서히 멈춘다. 왼쪽에는 브레이크가 있어서 긴급할 때 사용하면 된다. 앞사람의 수신호를 보고 판단해서 수신호를 보내면 되는데 이 것 또한 쉽다.



왼팔을 ㄴ자로 만들어 위아래로 흔들면 Move라는 뜻이고 ㄴ자로 가만히 있으면 Stop이라는 뜻, 문제가 있을 때는 손을 들고 있으면 된다. 앞과 뒤에서 스태프가 계속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수신호를 정확하게 하기만 하면 큰 문제없이 운전할 수 있다. 그런데 다들 둘씩 와서 한 명이 운전에 집중하면 다른 한 명은 뒤에서 숲을 구경하면 되었는데 나만 솔로 드라이버라 커다란 스노우 모빌의 안전이 오롯하게 나에게 달려있다니 새삼 한국에서 여행자 보험을 두 개나 들고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눈에는 작은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운전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호텔에는 넘쳐났던 중국인과 동양인이 신기하게도 이 날 나이트 사파리 투어에서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몰았던 스노우 모빌


맨 앞 왼쪽의 스노우 모빌은 스태프의 것으로(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마음에 드는 스노우 모빌에 각자 알아서 탑승하라고 알려주었다. 시동은 앉아서 자세 좀 잡아보고 있으면 스태프들이 와서 켜준다. 시동을 켜자마자 스노우 모빌에 달린 라이트가 강하게 빛나면서 앞 시야 500m 정도가 확보된다. 하지만 사방이 어둠이라 라이트가 켜져도 겨우 앞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만 보이는 정도라 신경을 계속 곤두세워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스태프 뒤 두 번째 운전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놓치면 뒷사람들도 다 방향을 놓친다 생각하니 아찔했다.


작은 전나무 숲 중간에 멈춰섰다. 나이트 사라피 투어에서 스노우 모빌은  300m정도의 간격으로 일렬로 운전한다.


그런데 정말 어두웠다. 어둠에 눈이 익었던 터라 내 눈에는 나무도 눈도 웅덩이도 다 잘 보이는데 카메라로 찍으면 온통 까맸다. 진눈깨비는 운전하는 내내 헬멧과 안경에 찰싹 달라붙었다. 몸에 붙인 6개의 핫팩 덕에 몸은 춥지 않았지만 계속 엑셀을 쥐고 있는 오른손 손가락 끝이 얼기 시작했다. 발가락에서도 차가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 재밌었다. 커다란 스노우 모빌로 숲을 헤치고 어린 전나무 가지를 건드리면서 속도를 내서 물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면 스노우 모빌 양쪽에서 모락모락 하얀 김이 올라왔다. 앞의 스태프는 노련하게 계속 뒤를 확인하면서 내가 속도를 맘껏 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처음에는 무서워 얌전히 몰았던 스노우 모빌을 나중에는 원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몰았는데 투어가 끝난 후에 앞에 있던 스태프가 다가와 너 참 빨리 달리더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쩐지 투어가 일찍 끝나더라니, 나 때문에 스태프가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쉬웠다. 그러니 너무 간격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빨리 운전하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고요한 숲에 스노우 모빌의 엔진 진동음만 들리고 까만 어둠 속 까만 전나무들과 흩날리는 진눈깨비와 내 앞에 하나뿐인 길잡이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내 안의 갈증이 콸콸 등유를 뿌리는 것처럼 크게 타올랐다.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등산을 할까, 목숨을 걸고 서핑을 할까 하는 무의식 중에 가졌던 의문들이 주행 내내 활활 타오르는 경추를 타고 오르는 아드레날린의 쾌감에 모두 해소되었다. 그래, 신나니까 하나보다. 몸이 긴장으로 곤두서고 모든 상황을 살피며 공기를 피부로 느끼는 그 상황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스노우 모빌은 내가 핸들을 옮기는 대로 움직인다. 웬만한 경사도 엑셀을 강하게 잡으면 금방 올라가고 파도처럼 굴곡진 경사에서 튀어 오르듯 달려가는 것이 마치 로데오를 하는 것만 같았다. 도로에서 운전하듯 상대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직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나하나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중간에 몇 번 포토타임이 있는데, 셀카를 찍어도 너무 어두워서 안 나온다. 플래시를 터트리면 호빵 같은 내 얼굴이 나온다. 결국 사진은 포기하고 어둠을 즐기기로 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코스가 난해해진다. 처음에는 직진 코스만 있었다면 경사와 낮은 나무들로 인해 지그재그로 사라지는 스태프를 따라가느라 혼쭐이 났다. 그러니 혼자 운전해도 30-40분이 훌쩍 간다. 운전에 익숙해질 즈음에 점점 코스의 난이도가 올라가니 나중에는 이거 봐라 하고 이 악물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손 끝의 감각이 무덤덤해지면 비로소 투어가 끝이 난다. 이제 좀 탈만한데 내리라니까 너무 아쉬웠다. 내가 핀란드 북쪽 시골에 태어났다면 스노우 모빌 폭주족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능숙하게 운전하는 스태프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체험팀을 위해 준비된 모닥불 주위에는 따뜻한 딸기향이 나는 차가 준비되어 있었고 스태프가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사람들이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는 동안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사람들은 모두 아 맞아 오늘이 크리스마스였지하고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스태프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제껏 서먹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를 나눴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비록 진눈깨비가 날리고 오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좋은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해피 크리스마스




나이트 사파리 체험을 하고 난 뒤에 내 남편상이 조금 바뀌었는데 집에 스노우 모빌이 있는 남자면 좋겠다. 오토바이는 안 부러운데 스노우 모빌은 부럽다. 이 이야기를 야니에게 하니 북쪽 시골 산속에 사는 집은 하나씩 갖고 있다면서 만날 수는 있을 거라고 해주었다. 대체 어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스노우 모빌 동호회?








나이트 사파리

링크 : https://lapponiasafaris.com/portfolio/northern-lights-safari/


스노우 모빌을 운전하며 하는 저녁 투어인 만큼 가격이 비싸다.

2인이 함께 하나의 스노우 모빌을 탑승할 경우, 1인 가격이 좀 더 저렴해진다.

바다가 꽁꽁 얼었을 경우 얼음 바다 위를 달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성수기의 경우 몇 주 전에 예약이 필요하다.

투어가 끝나고 모닥불 주변에서 차와 초콜릿을 제공한다.


전체 2시간 / 최대 30Km 주행

2명이 신청할 경우 : 1인당 132유로 X2 = 264유로
1명이 신청할 경우 : 1인당 191유로

프로그램 시간 : 매일 20.00-22.00


그 외의 Kemi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도 예약할 수 있다.

얼음 낚시, 데이 사파리, 허스키 썰매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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