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노 Aug 09. 2016

쾌적하게 산다는 것

집을 정리하다


장장 3개월에 걸친 집 청소가 일단락되었다. 계속 청소만 한 것은 아니고, 사람을 만날 겸 약속도 다니고 여행도 다녀왔으니 꽉 채운 3개월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고 또 아직 액자도 덜 걸었고 나간 전구를 다 갈아 끼우지 못했으니 다 치웠다 하기엔 아직 영 어설프다. 하지만 정말로 기쁜 것은 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아직 익숙하지 않아 작업이 쉬이 이어지진 않는다)이지만 두 번째로 기쁜 일은 청소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사실이다. 잡동사니가 여럿 쌓여있을 때는 쌓이는 먼지도 그냥 잡동사니의 하나일 뿐이라서 넘어갔다면 이제는 쓱싹쓱싹 닦아내기도 훨씬 수월하다. 아끼던 물건들이 제대로 위치를 찾았다는 것도 기쁘다.



Before

뭐지 이 난장판은...


여동생 결혼 준비에 나도 회사 다닌다고 바빴지, 남동생도 졸업 준비에 다 같이 정신없는 1년을 보내고 나니, 제대로 앉을 곳도 쉴 곳도 없는 집이 되었다. 뭘 정리해도 정리한 것 같지 않은 잡동사니가 한가득한 집이랄까나. 바닥을 닦으면 청소 끝이라고 말했던 정말 잡동사니가 많은 집이었다.



After


집을 수리할 때, 원체 젊은 감각으로 꾸며놓은 것 좋았는데 서비스로 주신 공주풍의 전등에 하얀 목재로 짠 부분이 물건을 조금만 오래 올려두어도 바니쉬를 칠해둔 목재에 때가 타거나 녹아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일을 벌일려니 구석만 다시 바를 수도 없어서 애만 태우고 있었는데 이번 대청소를 계기로 깔끔하게 수납할 것은 수납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새로 다 칠해버렸다.



이때 애용했던 곳은 '주마' 중고나라에서 하는 재활용품 수거 서비스인데, 헌 옷이나 무거운 종이류를 신청해놓으면 현관 앞에서 깔끔하게 무게를 재고 얼마 나왔는지 알려주시고 가져가 주신다. 아파트 3층인데 복도형이라 끌고 가는 일이 힘들어 신청했었는데 책 130kg 정도를 3번에 나눠서 신청했더니 수거 담당하시는 분이 우리 집 올 때면 바짝 긴장하시고 오시더라. 그래도 나는 너무 편해서 좋았다. 옷까지 합하면 180Kg은 팔았던 것 같다. 주마에 팔 수 없는 대형 폐기물은 서대문구청 대형 폐기물 신청을 하면서 인터넷 결제 후에 종이를 부착해 내놓으면 되었다. 특히 오래된 캐리어와 인라인 스케이트, 전기장판 등은 꼭 신청을 하고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상태가 좋고 중고 판매가 가능한 책들은 yes24와 알라딘 가격 검색 후에 판매했는데, 개인적으로 yes24가 받아주는 책들은 많았지만 작은 사이즈의 만화책들은 거의 폐기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yes24 포인트로 받는 것으로 신청해서 11만 원 정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번 집 정리의 일등 공신을 뽑자면 아래와 같다.


1. 대리석 시트지

2. 하얀색 페인트와 수성 조색 잉크



대리석 시트지

*꾸미기닷컴에서 나폴레온 마블 그레이 구매, 총 배송료 2500원과 밀대 5500원 포함 40000원 지출



좀 비싸더라도 무늬가 진짜 같고, 도톰해서 좋은 걸 사고 싶었다. 그래서 100X122 에 8000원인 꾸미기닷컴에서 구매했고 총 400X122를 구매했는데 나중에 더 구매할 것을 그랬다고 조금 아쉬워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중에 더 구매해서 낡은 느낌 팍팍 나는 에어컨에 발라버리고 싶다.

오랫동안 책을 꽂아 두었더니 책장의 색부터가 차이가 난다. 영 보기가 좋지 않아서 시트지를 잘라 붙여주었다. 안 보이는 밑까지는 다 붙일 필요가 없으니, 약간의 길이 여유를 더 두고 자른 다음 안쪽부터 조금씩 종이를 떼어내며 붙여주면 된다. 붙이는 동안 기포가 없도록 밀대로 잘 밀어주면 더 좋다.

*시트지 뒤쪽에 모눈종이처럼 눈금 표시가 있으니 참고해서 자르면 된다. 미리 선을 그려두면 좋다.



대리석 시트지를 다 바르고 나서 뭔가 포인트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금색 아크릴 물감을 사서 포인트로 발라주었다. 테이프로 다 작업을 해두고 나서 발라야 훨씬 깔끔하고 예쁘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부분은 면으로만 발라주면 옆에서 볼 때 물감 같기 때문에 안쪽으로도 약간씩 더 깊이를 주어야 한다.



원래는 이 책장과 아일랜드 식탁, 그리고 4인용 식탁에 대리석 시트지를 바를 예정이었는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소소하게 붙일만한 곳이 많았다.



특히 이 화장실 앞 미니 화장대는 헤어 무스나 바디 오일 등이 떨어질 일이 많은데도 목재인 데다가, 그 위에 바니쉬가 발라져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먼지가 수북이 쌓이곤 했다. 그래서 대리석 시트지로 깔끔하게 발라주고 금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더니 훨씬 깔끔해졌다. 역시 금색 아크릴 물감으로 포인트를 줬는데 이걸 보고 남동생이 누나는 로마. 그리스 풍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그 시대의 목욕탕이 생각난다고 놀렸다. (끙)



그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식탁. 어마어마하게 큰 데다가 조금만 어긋나도 다 비틀어진다. 30분 동안 붙였나. 식탁 붙이면서 제일 비속어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기포도 엄청 잘 생기고 기포 때문에 다시 떼어내는데 늘어나는 바람에 결국 세제물을 뿌려가며 작업했다. 그래도 제일 뿌듯한 작업물이었다. 남동생이 집에 와서 식탁을 새로 산 줄 알았다며 호들갑을 떨어주는데 어찌나 기쁘던지. 그래도 시트지는 열에 약하니까 원래 있던 유리를 다시 덮어주었다. 어딘가 성스러워 보이고 비싸 보이는 대리석 시트지 효과는 유리를 위에 올리면 반감된다. 그렇다고 뜨거운 걸 막막 올려야 하는 식탁에 시트지만 붙인 채로 사용하긴 또 두려우니까 유리를 살포시 덮어주는 걸로.



곡선에서 내게 좌절을 맛 보여준 아일랜드 식탁. 쉬울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하지만 제일 결과물이 있어 보이니까 참는 것으로... 밋밋해 보일까 봐 금색 테두리를 둘러줬는데 포인트로 딱 예쁘다. 전개도를 반대로 생각해서 잘못 자르는 바람에 울면서 시트지를 다시 시킬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아일랜드 테이블이다. (흑)

결국 곡선 부분은 드라이기로 하려다 무리여서, 그냥 직사각형 하나 길게 오려서 붙였다. 곡선 정 안되시면 저처럼 그냥 직사각형 띠 오려서 붙이세요. 티가 안 나요.



남은 대리석 시트지는 명함꽂이에 붙여서 티백 꽂이로 바꿔봤다. 대리석 테이블이랑 세트인 것 같아서 예쁘다.

남동생이 얼마 전에 홍대 고디바 매장을 다녀오더니,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비싸 보이는 대리석 원형 테이블 사진이었는데 처음에 보고는 우리 집처럼 시트지인가 싶어서 만져봤다고 했다. 그러더니 보니깐 대리석 테이블도 보면 시트지랑 별 차이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 집도 대리석 테이블인 줄 알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하하.





하얀색 수성 페인트와 조색 잉크 2종

*페인트마스터에서 배송료 2500원 포함 32600원.

*추가로 집에 있는 붓 2개 사용함



나 이래 봬도 미술 공부했던 여자야!라는 자부심과는 반대로 절대로 손대지 않으려 했던 것은 바로 페인트 작업.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페인트와 발라놓고 색이 안 예뻐서 실망했던 과거를 토대로 절대로 안 바르려 했는데 잠 자기 전에 자꾸 때가 탄 하얀색 선반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대리석 시트지로 그 선반을 몽땅 발라버렸다간 진짜 로마시대 목욕탕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엉엉...

팬톤 페인트를 사고 싶은데, 리빙 페어에서 내게는 바를 일이 없는 페인트라며 스쳐 지나간 과거가 갑자기 원망스러워지고 페인트 가격을 한 달째 검색해보다가 결국 일을 내버렸다. 까짓 거 발라버려!



일단 페인트 칠할 곳을 다 비우고,



신문지를 깐다. 아 벌써 노동의 냄새가 스멀스멀...



보면 아시겠지만 새로 페인트 칠할 부분들은 다 이렇다. 먼지는 다 닦아내고 젯소칠과 페인트를 칠할 준비를 한다.



페인트가 튈 수도 있는 부분에 커버링과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덮어준다. 아래 문까지 다 칠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위에만 다시 칠하기로 했다. 보면 먼지가 쌓였던 부분과 아닌 부분의 색이 확 차이가 난다.



젯소칠을 하고 나니 얼룩덜룩한 부분들이 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인트 마무리. 수성 페인트로 한 뒤에 바니쉬를 해주면 더 오래가지만, 어차피 나중이 되면 다시 덮지 싶어서 그냥 페인트로 마무리했다. 칠하다 너무 파이팅 넘쳐서 벽지에 튄 적도 있었는데 바로 걸레로 닦아내니 잘 지워졌다. 마르기 전에 지우면 잘 지워진다. 옆에 늘 젖은 걸레를 상시 대기시켜놓으면 마음이 좀 편하다.



이렇게 선반과 책장은 다 칠하고 말리는 것까지 완료.



이제 반대편 벽지를 칠할 차례다. 일단 무늬가 안보여야 하니까 일단 발라줌.



근데 그냥 수성 흰색 페인트 칠해도 될 뻔했다. 생각보다 잘 가려진다.



몇 시간 더 말리고, 다시 칠하길 반복한 다음 흰색처럼 보일 때 고민을 시작했다. 어떤 색으로 칠할 것인가. 사실 인디언 핑크와 그레이 투톤으로 칠하려고 조색 잉크를 시켰는데, 할인이 되는 카드가 딱 그 날 자정 까지라서 그 다음날 되기 1분 전에 급하게 옵션을 선택하고 결제를 했다. 그랬더니... 주문을 분명 황색(붉은색)과 검은색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하하, 검은색이랑 노란색이 왔네? 보색 대비.....??? 이걸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새해 보신각 타종처럼 격하게 두들겼다. 나는 빨리 칠하고 페인트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페인트가 날 놔주지 않는 것 같은 두려움. 이미 남동생은 본인의 허락 없이 벽을 칠한 것에 불쾌감을 살짝 내비치고 있는데 훌륭한 벽을 보여주지 않으면 더더욱 불쾌해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어차피 바탕이 하얀색 페인트이니까, 노란색을 섞어도 연노랑이 될 테고 거기에 블랙 잉크를 섞으면 카키에 가까운 노란색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자다가 일어나 조색 테스트를 시작했다. 생각대로 차분한 탁한 노란색은 오묘한 빛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그 아래에 그레이로 마무리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마르면 색이 변할 수도 있으니, 벽에 조금 칠해보고 잠자고 일어나 체크하기로 했다.



괜찮은 것 같아서 칠하기 시작. 몰랐는데 롤러를 페인트에 꽂아둔 채로 놔두면 페인트를 다 흡수한다. 조색해뒀는데 롤러가 다 빨아먹어서 당황. 사용한 후에는 롤러를 꼭 짜낸 후에 분무기로 물을 조금 뿌리고 비닐에 싸서 보관하면 마르지 않는다.



욕심내서 롤러를 너무 큰 걸로 샀더니 트레이에 들어가지 않았다. 바보인가.



이렇게 상단 도색 완료. 간단해 보이지만 중간에 약속도 있고 해서 3일 걸렸다.



생각했던 선에 맞춰 테이프를 붙인다.



생각했던 색에 맞춰 조색을 하고 칠하고 나서, 페인트가 마르기 전에 테이프를 떼어낸다. 마르고 나서 떼어내면 잘 안 벗겨진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녹색이 잘 어울리는 벽 탄생. 어떻게 보면 갤러리 같고, 어떻게 보면 교실 같다.

하지만 페인트칠이 빛을 발한 곳은 따로 있다.



냉장고!!!! 너무 오래돼서 위에 칠판 겸용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게 더 이상했다. 게다가 이런저런 자석들이며 번잡해서 냉장고만 보면 속이 시끄러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은 페인트를 칠해보자 싶었다.(어차피 못생긴 거 얼마나 못생겨지겠어 싶기도 했다.) 남아있는 회색 페인트에 검은색 수성 잉크를 더 섞어서 쓱싹쓱싹 칠했는데 2번 칠하고 완성! 로고 부분이 휑해서 로고 부분에 유성 색연필로 손글씨를 써넣어주고, 손잡이 부분에는 매니큐어 탑 코드를 발라 손에 닿는 부분이 미끈미끈하도록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벗겨짐도 아예 없고 물에 살짝 젖어도 금방 마른다.

그 위에 홍콩에서 사 온 자석을 붙여주니까 어디서 새로 사 온 냉장고라 해도 믿을 수 있는 새 아이로 재탄생!

내가 3개월 동안 냉장고 새로 사고 싶다고 노래를 했더니 남동생이 아침에 일어나서 결국 내가 냉장고를 사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안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내가 집 정리하면서 한 리폼 중에 최고라고 극찬해준 덕분에 요즘 냉장고만 보면 기분이 좋다.





충격적인 Before

친구가 카메라 빌리러왔는데 한참 집 정리 중이라 미안했다


After


내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민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정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제일 많은 시간을 들였던 일이었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집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중고로 팔게 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또 그런 공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페인트 칠이며, 시트지를 바르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곧 액자를 주문해 벽에 내가 그린 그림도 달고, 새롭게 정리한 작업 공간에서 다양한 작업을 궁리해볼 생각이다. 욕심을 낸다면 소파에 어울리는 쿠션도 사고, 러그도 깔고 싶지만 차차 해나가야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재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