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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Sep 02. 2016

그림을 그립니다

집에 걸어보자 그림!


빈 공간에 적절하게 걸린 그림은 집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알면서도 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어떻게 고를지 몰라서 혹은 그런 그림들의 가격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 선뜻 구매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려보는 건 어떨까? 오히려 복잡한 그림보다 간단한 그림들이 집에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많다. 꼭 나만의 창작물이 아니어도 어디선가 본 이미지에 영감을 받았다면 그 이미지를 그려보아도 좋다.



꽃과 나뭇잎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마리메꼬의 쿠션을 보고 어찌나 예쁘던지 천을 살까 하다가 연습용으로 사 온 캔버스에 그려보기로 했다.



대강 캔버스 천 위에 연필로 선을 따고 마땅한 채색 재료가 따로 없어서 카버 파스텔의 수채 색연필을 꺼냈다. 과연 채색이 잘 될까?



미술을 배울 때 제일 좋아하던 재료가 파스텔과 수채색연필이었는데, 그중에서 수채색연필을 제일 좋아했다. 그래서 아직도 엄청난 양의 수채색연필을 가지고 있는데, 오돌토돌한 면천 캔버스 위에 칠하려니 색연필 가루가 자꾸만 떨어졌다. 아까워라.



1차 채색이 끝났는데 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색이 너무 흐려서인 것 같아서 머그잔에 물을 담아 붓을 꺼내왔다. 물기 조절용 걸레도 꺼내 들었다.



물기를 얹으니 선명하게 색이 살아났다. 수채색연필의 푸른색이 나비 날개처럼 예쁘게 살아나자 조심조심 세필붓을 놀렸다.



붓놀림을 신경 쓰지 않으면 특정 부분에 색이 몰린다거나 인접해있는 색끼리 섞여서 신경 쓰며 칠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조금 까다롭기도 했다.



칠하다 보니 조금 피곤해져서 잠자고 나서 다시 그리기. 색이 연한 것 같은 부분에는 물기가 마르고 나서 색연필로 색을 더 얹어서 진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 완성하고 나서 가족들에게 보여주니 조금 더 그림이 컸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래서 캔버스를 더 구매했다.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보니 저렴하기도 하고 레벨 등급이 VIP라 이마트몰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그려보고 싶은 그림 모티브가 많아서 여러 개씩 구매했더니 제주도 여행 후에 커다란 박스로 집에 도착해있었다. 잘 꺼내서 책상 뒤쪽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알랭 드 보통의 신작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다가 가을용 그림이 떠올랐다. 급하게 정지를 시켜놓고 캔버스를 가져왔다. 적당히 벽에 걸만한 크기를 골라서 벽에 요모조모 구색을 잡아보니 세로가 좋겠다 싶었다.



단순한 물맛이 좋아서, 그레이 색연필로 대강 모양을 잡고 그 위에 블루 계열 색연필과 네이비 계열 색연필로 색을 올렸다.



수채색연필 위에 물을 올리면 좋은 점은 대강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붓질할 때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렇게 쓱쓱 붓질을 하고 보니, 배경이 허전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심플하게 두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을 걸고 싶었기 때문에 일단 벽에 걸어보았다.


 



처음엔 역시 허전한가 싶었지만...



빛이 들어오니 썩 마음에 든다. 인물을 그리는 건 약해서 걱정했는데 이런 인상을 표현하기엔 인물만 한 소재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저 앞을 지날 때마다 저 둘의 등에서 이야기가 자꾸 읽힌다.


서로를 의지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라거나, 남자가 아직 믿음직하지 않은 여성의 망설임이라거나, 자신도 미래가 두렵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남자의 이야기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그림은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누군가 내 곁에서 손잡아 준다는 것은 인생의 위안이 되어준다는 것을



그러니 그려봅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찾아. 그림을 걸어둔 벽 하나 있다는 것도 삶의 위안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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