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긴 비행을 시작하다
2015년 12월의 바쁜 일상은 곧 여행을 떠날 나를 약 올리듯 송년회며 다양한 행사로 가득했다. 너무 바쁘다 보니 내가 정말 며칠 후에 여행 가는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가득했다. 만남이 있으니 이별도 있는 거지만, 이번 북유럽 여행은 2015년 열심히 일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의 마지막 출근 다음날 떠나는 것이라 더 내게 의미가 컸다.
마지막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퇴사 선물로 회사 친구에게 받은 커다란 바디 필로우 박스와 핫팩과 음식, 그리고 옷과 화장품들로 가득 찬 20인치 캐리어, 그리고 백팩과 카메라 가방이 불 꺼진 거실 한편에 놓여 있었다. 화장을 지우고 마지막으로 모든 짐을 챙겼는지 확인 후에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내일 진짜 북유럽을 가는 건가?
갑자기 생경했다. 갑자기 치열했던 일상에서 뚝 떨어져 내일이면 언어도 문화도 모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12시간의 비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서 사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여행일 뿐인데도 낯설었다. 12시간이나 비행하니까 좀 덜 자도 괜찮겠지, 그렇게 그 날은 새벽까지 쉽게 잠들기가 어려웠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 시간보다는 훨씬 이른 9시 반쯤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가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출국 줄이 무척 길다고, 고운 씨는 일찍 출발해서 다행이라고 아쉽게도 얼굴을 볼 시간이 없겠네요 라며 즐거운 여행을 하고 내년에 보자고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도착해서 티켓은 모바일 발권으로 이미 체크인을 해뒀기에 수화물 체크인을 했다. 20인치 기내용 캐리어를 이용하는 개인적인 이유를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기내용 캐리어는 짐을 무거운 걸 많이 넣어도 20Kg을 넘기지 않아서 짐 싸는 고민을 덜할 수 있어서 좋다. 수화물 체크인을 할 때 캐리어 무게를 확인해보니 13Kg였다. 수화물 체크인을 마친 뒤에는 미리 결제해둔 유심 카드를 찾으러 갔다. 유심을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유럽에서 데이터 무제한이 가능한 유심을 빌려가기로 했다. 3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Three 유심과 하루당 3500원 무제한 데이터 유심을 고민했는데 가격을 비교했을 때 같은 가격이라면 통화가 조금 더 비싸더라도 데이터 무제한이 더 유용할 것 같았다. 통화가 불가능한 대신 더 저렴한 데이터 유심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통화가 가능한 유심을 빌려가는 것이 좋다. 숙소로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면 만약의 경우 통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미리 알아둔 여행사 부스로 가서 유심을 찾고 출국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보안 체크를 위해 기다리는 줄은 길었지만 스톡홀름 여행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보니 금방 출입국 심사까지 끝낼 수 있었다. ( 자동출입국 심사를 미리 공항에서 한 번만 등록해두면, 대한민국 출입국 도장은 받을 수 없지만 출입국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나 라운지에 가있기로 했다. 탑승동보다는 메인동의 음식 맛이 좋다는 평이 있어서 비행기 탑승은 탑승동에서 해야 했지만 메인동 아시아나 라운지로 향했다. 생각보다 한적했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뷔페가 바이킹에서 유래했다는 여행 전 읽었던 북유럽 책을 상기하면서, 라운지의 사과쥬스와 커피로 우선 목을 축이고서 간단한 음식들을 가져다 먹었다. 특히 녹두전은 바삭하고 고소해서 맛있었다. 아마 천편일률적인 라운지 음식들과 달리 정성이 더해진 음식이라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받으러 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전을 부치는 직원분이 고맙기도 해서, 녹두전이 정말 맛있다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직원분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스러운 듯 씩 웃으셨는데 나도 처음엔 좀 부끄러웠지만 곧 기분이 좋아졌다. 돌이켜보니 이때 아시아나 라운지부터 나의 북유럽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고맙습니다"는 말을 선뜻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북유럽 여행이 말이다.
Thank you! Kiitos!
아시아나 라운지는 PP카드로 이용했다.
녹두전은 점심시간에 잠깐 운영했는데, 식사 시간에 맞춰 특별히 준비하는 듯하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리셉션 카운터에서 받을 수 있다.
샤워실이 있어, 리셉션에 문의하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핸드크림을 잊고 가서 손이 매우 건조했는데, 라운지 내 화장실에 핸드크림이 비치되어 있었다.
수면실같이 유리로 파티션이 쳐진 개인 공간이 여러 개 있었는데 인기가 많았다.
여행의 기대감이 더해져서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기내식은 정말 맛있었다. 하늘에서의 식사라 더욱 특별해서일까? 작은 플라스틱 쟁반에 옹기종기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내식에 함께 나온 고추장볶음은 따로 챙겨 노르웨이에서 요긴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고추장을 여행에 가져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북유럽 여행에서는 참고 참았다 여행 13일째 먹은 고추장볶음에 가출했던 입맛이 돌아오는 걸 느꼈을 정도였다.
기내식을 맛있게 먹고 조금 지루해질 때쯤 노르웨이 베르겐을 모티브로 했다는 겨울왕국도 다시 한번 보았다.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의 노르딕 문양도 눈여겨보고 스벤이 끌고 다니는 썰매와 상점 상인이 권하는 사우나까지, 북유럽을 간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다 창 밖으로 보인 저 하얗고 삭막한 땅 위에 해가 지는 것을 보다 여행 일정을 미리 반추해보았다. 그리고 생각났다. 이번 여행이, 그러니까 앞으로 내년 1월 1일까지 남은 13일이 나의 마지막 20대의 날들이라는 것을.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12월 18일부터 시작된 여행은 2016년 1월 2일에 서울로 돌아오면서 끝나니까
나의 마지막 스물아홉과 서른의 시작을 북유럽에서 맞이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