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ional Museum of Finland
내겐 작가의 꿈을 키웠던 중학생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소설 쓰기에 얼마나 빠져있었냐면 신라 화랑과 원화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두 원화인 남모와 준정에 대한 상상에 역사적 사실과 신라시대의 문화를 잘 엮어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키려는 나름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설정을 따로 문서화해서 캐릭터별로 왜 그런 행동(역사적인 사실)을 취했을지 페르소나를 적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학생인 내가 받아들이기엔 신라시대의 문화가 너무 개방적이었다. 그래서 실패.
어린 시절에 그런 놀이를 하며 자랐기 때문일까 박물관에 들리면 나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상상해보곤 한다. 헬싱키에 있는 핀란드 국립 박물관은 그런 상상을 즐겨하는 나에게 더없이 딱 맞는 박물관이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소품이나 가구들이 많아 그 시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간혹은 돈을 주고서 구매하고 싶은 예쁜 소품이나 탐이 나는 가구들도 많았으니, 북유럽이 아름다운 가구와 디자인의 강국이 된 것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감각이 아니었을까?
http://www.kansallismuseo.fi/en/nationalmuseum
오픈 시간 : 화요일 - 일요일 11 am - 6 pm, 월요일 휴무
주소 : Mannerheimintie 34, 00100 Helsinki
입장료 : 헬싱키 카드 사용 가능 / 어른 10유로
상설전 외에 기획전도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1916년에 개관한 핀란드 국립 박물관은 건축 당시에 북유럽에 유행했었던 국가적 낭만주의 양식(National Romantic style)으로 지어져서 그런지 오래된 중세 성당처럼 보인다.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핀란드의 역사적인 유물과 문화, 예술, 생활, 민속자료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핀란드 국립 박물관 앞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다양한 사람들이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걸 구경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박물관 계단 옆에는 잘 만들어진 곰 모양의 석상이 오가는 방문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장하면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핀란드 화가인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가 그린 핀란드 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모아 엮은 서사시 칼레발라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상설전 입구에 들어서자 유럽과 비슷한 듯 다른 투박한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종교나 전설, 혹은 신화를 재현한 듯한 조각들이 많았다.
강렬한 채색이 입혀진 목각 조각들은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다. 위트 있게 조각된 것들도 있었지만 장식성을 뛰어넘은 목적성이 따로 있기 때문인지 어딘가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도 느껴졌다.(무섭기도 했다.) 만약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모두 다 이렇다면 얼른 보고 나가야겠다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생각이었다.
다음 전시실부터는 다행히 사람 냄새가 났다. 특히 이 거울은 반대편에 장식 그림이 그려져 있어 무척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울이 옷장의 문 역할을 했던 게 아닐까? 아니면 상자의 뚜껑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사용했을 옛 핀란드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오래된 거울이 더없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피곤하더라도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것들은 꼭 보고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감기에 걸려 조금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박물관은 생각보다 통로가 좁고 소박하다. 나눠진 방도 크다지 큰 편이 아니라서 큼직한 공간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국립 중앙 박물관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귀족의 저택을 둘러보는 것만 같은 느낌? 혹은 공간이 적은 것이 아니지만 놓인 유물들의 친숙한 배열이 박물관을 가정집처럼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목재 바가지를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가? 집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바가지나 물병에도 각각의 멋이 다르고 곡선이 다르고 장식이 다르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 귀여운 일이다. 특히 저 백조 모양 나무 그릇은 살아있는 것처럼 모두 모양이 다른데 그 모습이 어찌나 투박하면서도 귀여운지 웃음이 났다. 지금 꺼내서 사용해도 분명 멋스러워 보일 것 같은 과거의 유물들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현대의 디자이너나 공예작가들이 봐도 새로운 디자인의 모티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지금 놓아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을 유물들을 보다 보니, 북유럽이 인테리어 강국이 된 배경에는 과거부터 이런 것들을 보고 놓고 생활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러브레터가 곱게 들어있었을 것 같은 목재 상자를 보며 앤티크를 향한 마음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박물관을 관람하며 그 시대의 유행을 엿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박물관에서 접는 부채를 보았는데 동양과는 다르게 화사한 장식적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쥐고 무도회에 나갔을 아가씨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다양한 자개나 돌로 만들어진 다양한 크기의 용기들은 보물처럼 아름다웠다. 실제로 이 물건들을 그 시절에 사용했던 사람들은 이걸 아끼며 사용하지 않았을까?
핀란드 박물관은 북유럽 사람들의 과거의 삶과 그들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멋스러운 공간이었다. 감기에 걸려 피곤한 와중에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아름답고 독특한 가구나 물품들을 통해 북유럽이 어떻게 디자인 강국이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가구나 전통 의상의 패턴, 그리고 북유럽의 미적 취향의 유래 등이 궁금하다면 들려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런데 박물관 샵에는 사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웅장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헬싱키에 있는 핀란드 국립 박물관 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