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스 Dec 17. 2019

이것은 사교클럽인가 해커하우스인가

인연과 우연의 가치

2층 코워킹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논스에 놀러 온 다양한 게스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기괴하고 특이한 곳이다


맞다. 좀 기괴하다. 그리고 조금 특이하다. 24시 꺼지지 않는 불. 사계절 내내 신고 있는 삼디다스. 일을 하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입주자들. 처음 놀러 왔는데 편하다고 1층에서 낮잠 자는 게스트들. 한국스러우면서도 서양틱한 건물과 사람 분위기. 매달 열리는 반상회. 피아식별이 안 되는 대표 등등.. 


기, 기괴하다.


설립 철학도 없다. 프레임도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정의 내리기가 굉장히 힘든 배경과 맥락, 그리고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1인 가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대기업들이 협력하여 만든 웬만한 쉐어하우스, 코리빙 타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속도와 커뮤니티 결속력을 보여준다는 것.


특, 특이하다.


논스를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설립 첫날부터 사실 정의 내리기가 힘들었다는 것이 대표들의 컨센서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조인한 나도 감히 이곳을 정의 내리기가 힘들었고 지금도 정의 내리기가 힘들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혹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은 정의 내리기가 쉽지만 (애초에 인위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오물조물 만들기 시작하니), 마치 숲 속 흙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새싹 마냥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은 정의하기가 힘들고 '감히' 정의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논스는 그냥 논스에요" 라고 하기에는 운영진으로서 무책임해 보일 수 있기에 굉장히 짧은 지식과 촉으로 어떤 가설을 세워 보았다.





Fraternity (미국 대학생 사교클럽)


Frat boys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했거나 미드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남자 사교클럽은 Fraternity라 하고 여자 사교클럽은 Sorority라 한다. 미국 대학의 '군대'스러운 동아리 문화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 군대에서도 폐지한 기괴한 신고식을 필두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클럽활동이 존재하고 졸업 뒤에는 Reference(추천서)를 해주거나 인맥을 놓아주는 등 그 연고가 거의 평생 지속된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서양판 학연, 지연의 메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에도 물론 비슷한 협회나 클럽 등이 있지만 위처럼 결속력이 그렇게 강하지가 않고 요즘에는 다 각개전투를 하는 분위기라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는 문화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물론 매우 제한되어 있는 표본이지만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사'자 돌림 직업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취직 한 친구들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그렇다. 사범대학 클럽이라 해봤자 선배들이 와서 임용강의 몇 번 해주는 것 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임용을 지원해주거나 극단적으로는 사립학교에 다리를 놓아주는 행위 같은 건 거의 없다고 한다. 후자 같은 경우는 개인역량으로는 가능할 수 있겠으나 커뮤니티 스케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갑자기 사교클럽(Fraternity)을 언급하는 이유는 논스의 초창기 파운더들이 유학생인 데다가 현 대표직을 맡고 있는 하모 씨는 '공군통역장교회'라는 육군, 해군, 해병대 통역장교들이 들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굉장히 군대스럽고 빡센 Fraternity 출신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하모 씨는 새벽에 뜬금없이 후배들을 복도에 집합시켜 기합을 주는 교관의 경력까지 있다. 내가 특기교육을 받을 때 제일 극혐하던 교관이었다. 맞은편 책상에서 앉아 이태원에서 주먹다짐을 하여 구속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걸 보면 가끔 이것은 대표인지 건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서울 한복판에 Frat 문화를 가져오다


참 그럴듯한 게, 구(舊) 논스의 역사를 보면 참 그 문화가 Frat스럽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2~3명이서 블록체인이 좋다고 같이 살다가 갑자기 유튜브 채널이 떡상하여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모였는데 대뜸 신입들한테 작업증명(Proof of Work)을 하라 하질 않나.. 40평 공간에서 20여 명이 시루떡 마냥 엉켜 붙어서 살고 있질 않나..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 있질 않나.. 이건 뭐 딱 봐도 Frat이 아닐 수가 없다.


더욱 쇼킹했던 것은 논숙자들이 운영하던 프로젝트가 실수로 돈 몇 억을 날렸을 때 지체 없이 바로 돈을 지원해줬다는 것이다. 차용증? 쓰지도 않았다. 지원해준 동기를 물어보니 그 답이 가관이다.


"난 논스의 신뢰를 믿는다"


"어차피 잘 돼서 나중에 갚을 것이다"


"설령 갚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게 내 팔자다"


대표들이 "내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마피아'스러운 멘탈을 갖고 있으니 결속력 있는 커뮤니티가 자연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추세로 지속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 뼛속까지 한국어 DNA 보유자인 COO 강모씨가 합세하여 한국의 '정'까지 추가했으니 대부분 코리빙 기업들이 저물어가는 이 와중에 논스만큼은 만실의 꿈을 앞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

.


그렇다면 논스는 단순히 Frat 문화의 산물인 것인가?


아닌 것 같다. Frat으로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린애들이야 그냥 데려다 놓고 "자, 둘이 이제 친구니깐 사이좋게 지내~" 하면 무슨 최면에 걸린 것 마냥 급 친해지지만 대학까지 졸업한 성인들은 안타깝게도 이 머리가 좀 커져서 ‘순수함’과는 좀 괴리가 생긴다. 그래서 "자, 이제 둘이 같이 사니깐 친해지세요~" 는 씨알도 안 먹히고 설령 돈을 준다 해도 '진심'으로 친해지게 하거나 뭉치게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인 쉐어하우스나 코리빙 기업보다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결속력을 보여주지만 서양 Frat House 만큼 충성도나 애착을 보여주진 않는다. 거기다가 논숙자들은 스펙, 비즈니스 감각 등 개인역량이 높은.. 다시 말해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름 “나 좀 잘 나가는 듯” 하던 사람들이라 개인주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짙을 수 있어 마냥 데려다 놓고 뭉치라고 하면 뭉칠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생각난 것


 해커하우스


‘해커하우스’란 개념은 다소 생소할 수 있기에 Lan Party(랜파티)를 빗대어 쉽게 설명해 보겠다. 


미국 십 대들의 랜파티


위 사진에서 보이는 랜파티는 피시방을 가정집에 재현해 놓은 듯한 밤샘 게임을 하며 먹고 마시는 파티의 한 형태인데 해커하우스는 이런 유흥용 파티에서 생존형 IT 해커집단으로 진화한 주거형태다. 


해커하우스


해커 하우스를 언급한 이유는 논스 자체가 ‘블록체인’이라는 IT기술의 철학을 토대로 시작되었고 대표들도 블록체인 삼매경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논스 입주민 절반가량이 블록체인 관련 종사자들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해커 하우스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하.. 근데 해커 하우스로도 부족한 것 같다. 물론 구논스는 거의 한국형 해커 하우스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의 논스는 블록체인 이외에도 법, 디자인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모여 있기에 해커 하우스라 단정 짓기에도 애매하다. 역시나 자연 발생한 만큼 정의하거나 프레임 잡기가 힘들다. 쓸데없이 갑자기 질적 연구하는 것 같다.


.

.


“우리 뭐하다가 이렇게 됐지?”


“그냥 우연인 것 같애”


“그럼 우연의 가치는 뭘까?”


“우연이라..”


논스 파운데이션 회의를 하다 보면 항상 나오는 키워드가 “우연”이다.


‘자연발생’ 하였고 그렇게 성장하였기에 정의도 내릴 수 없으니 그냥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성과 비즈니스 로직으로 논스의 성장을 주도하려 했던 파운더들은 도저히 프레임이 안 잡혀서 중도하차한 경우가 있다. 이게 수치로는 무엇도 도출시킬 수 없고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Frat(사교클럽)만큼 충성도나 결속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해커 하우스만큼 생존에 특화된 기술집약적 단체도 아닌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우연, 인연의 힘으로 생겨난 한국 밀레니얼 주거 집단이다.


.

.


그렇다면 커뮤니티로서 논스의 특이성은 무엇인가?


이야기


논스는 이야기가 있다.


우연의 만남, 인연에서 이야기가 싹튼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설화나 전래동화 같은 경우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플로우를 가지고 있는데, 논스 같은 경우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이미 ‘위기’ 즉, ‘문제’를 가지고 입주를 한다. 논숙자들이 ‘문제아’라기보다는 사실 뭐 이 세상에 문제랑 위기를 안 겪고 있는 사람이 어딨는가. 대신 논스에서는 타 쉐어하우스나 코리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입주민들이 자세하고 활발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위기를 서로 공유한다. 


'논스' 주거형태에 매료되어 한국까지 와서 박사논문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인류학자 Simon이 한 말이 생각난다.



"Nonce seems to find its base in a Narrative Technology called Blockchain"
"논스의 기반은 내러티브(이야기) 기술인 블록체인인 것처럼 보인다"



간간이 논스 라운지에서 목격되는 백인 인류학자 Simon. 사이먼은 논스에 있는 거주민들의 대다수가 항상 책을 잡고 있고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여겼다. 그리고 그 공부한 것과 관련된 경험을 서로 모여 쉴 새 없이 "이야기"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보따리들 속에서 '우연히' 북클럽이 되었든, 스타트업이 되었든, 연애가 되었든 무언가가 싹트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논스 입주민들은 '소설' 쓰는 걸 좋아한다. 회의에서 오고 가는 파운더들의 셀 수 없는 상상 속의 비즈니스 시나리오는 두 말할 것도 없고, 입주민들도 질새 없어라 밥 먹을 때, 놀러 갈 때를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상상 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무언가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고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한 예가 프레제뉴다. 논스에서 점심 먹다가 급 기획된 사업인 만큼 논스의 성격과 철학이 잘 담겨있는 '선물' 스타트업의 예시다. 더 특이한 건 논스 사람들이 스타트업의 시작 배경과 그 운영진을 인간적으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신뢰를 하고 지원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논스 입주자들에만 한하여 소액 크라우드 펀딩 기회를 제공하여 스타트업 성장과정을 같이 경험하는 건 어떨까.. 하고 또 상상 속의 시나리오를 그려가는 것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우리 소통해요~


한 마디로 논스는 입주민들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맞다. 그 소통. 인스타에서 해시태그로만 썼지 현실판에서는 딴 나라 얘기 같았던 그 '소통'. 바로 이 '소통'이 논스의 특이점이다.


"근데 이게 조금 부족하다"


물론 다른 코리빙이나 쉐어하우스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그 밀집도와 깊이가 조금 부족한 듯하다. 운영인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신입 주민들이 최근에 대거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간적인’ 스킬은 대단한 내공과 기력을 요하는 행위이자 학습한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타고나는 것이다. 그래서 논스는 특히나 강모씨와 정모씨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이 돋보인다. 사람과 사람을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교량 역할이 논스의 특이성이자 꽃인 것 같다. 이 특성을 잘 살려 더 많은 주민들을 입주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거미줄처럼 이어져있는 멤버들의 커넥션을 더욱 촘촘하고 끈끈하게 만드는 것이 커뮤니티 발전의 핵심인 것 같다. 


논스 같은 쉐어하우스나 코리빙의 주거형태는 일반 대중 마케팅으론 그 장점과 특이성을 전달하기가 힘들다. 마케팅은 '비주얼'이 상당량을 차지하는데 논스는 내러티브, 이야기, 커넥션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일반 마케팅 전략으로는 손 대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도 불구하고 신입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무엇일까?


커넥션


신입들은 대부분 기존 입주자들의 입소문을 타서 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좋은 것은 가만히 놔둬도 퍼진다 하지 않는가. 종교 전도 행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는 입주민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친구와 지인들을 데려온다. 나 또한 동생을 대구에서 다 때려 치고 논스로 상경하라고 한 번 데려와 미팅을 잡아준 적이 있다. 오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딱히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닌 알듯 모를 듯한 이 미지의 커뮤니티의 넘사벽을 '친구'와 '입소문'이 무너뜨려주는 것이다.


.

.


만실의 꿈, 그 이후


만실의 꿈을 앞두고 있는 현재, 이미 여러 파운더들은 넥스트 스텝을 고민하고 있지만 나 혼자는 애초에 '만실'의 꿈을 기적이라 보고 있었다. 트레바리와 같은 일반 스터디 그룹이야 그냥 집에서 씻고 덜렁 와서 앉아 있다가 가면 되지만 '입주'라는 건 한 인간의 20-30대 성인기에서 대단히 큰 부담과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릅쓰고 짐을 싸 피난 가듯 모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미국발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21세기 한국에서는 "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만실 이후는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북클럽 개설, 멤버십 확장 등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언급되고 있지만 나만큼은 만실이 되더라도 현재 인원들에 꾸준히 집중해야 하고 오히려 그것을 우선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큐레이션 된 이 값어치로 따질 수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지지고 볶으면 무엇이라도 나올 것이며 커뮤니티의 스케일보다는 질을 우선으로 두면 양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만큼 논스는 입주민들 사이에 이야기가 더 많이 오고 가야 하고, 더욱 많은 "소설"이 꽃을 피워야 하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이 곳은 사교클럽도 아니고 해커 하우스도 아니다.


그냥 논스다.


 작성 Forever Kim

논스 입주하기


1. 도전정신(Challenging the Status Quo
):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

2. 다양성(Diversity):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3. 공유(Sharing): 나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


매거진의 이전글 왜 모아놔도 친해지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