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다 급 선물사업
같이 돈 모아서 원하는 선물을 줄 수 없을까?
논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주연이가 얘기를 꺼냈다. 11월 논스 커뮤니티 멤버 중 생일자가 6명인데 어떤 선물을 줄지 그리고 생일파티는 어떻게 기획할지 같이 밥 먹으며 얘기할 참이었다.
"그래, 그 우리 학창 시절에 막 얘들이 돈 모아서 비싼 지갑이나 신발 사주고 그랬잖아"
"맞아 맞아"
"그리고 그것도 본인이 원하는 선물이어서 너무 좋았고"
"오호.. 2000년식 크라우드 펀딩이었네 지금 보니깐"
"그니깐. 그리고 나 같은 경우 생일날 카톡 기프티콘 겁나 받는데 진짜 90%는 쓰지도 않고 다 환불하거든.."
"안 그래도 나도 저번 주에 유효기간 지났다고 쿠폰 12개 환불 신청하라고 하더라고"
"그니깐, 그거 겁나 귀찮고 그리고 수수료도 많이 떼가"
그런 대화가 오고 가는데 영세형은 묵묵히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형, 형은 어떻게 생각해?"
"어?.. 나 안 그래도 개인이 원하는 선물 같이 펀딩 해주는 플랫폼 있는지 찾아보고 있었어"
"있어?"
"아니 없어"
"역시 없군"
"우리가 만들자"
"어떻게 만들어 그걸"
"야 내가 이래 봬도 사업 21년 차다"
이 날 이후 코워킹 사무실 바로 옆 자리에 있는 주연이는 영세형이랑 풀딱지처럼 붙어서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지 하루 종일 회의를 하기 시작한다. 옆에서 보니 영세형은 어드바이저의 역할, 주연이는 대표로 모든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은 것 같았다.
지금도 코워킹 사무실 옆에서 주연이는 플랫폼 기획 삼매경이다. 이게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막 앉아 있다가도 '생일'이라는 토픽이 나오면 갑자기 일어서서 침을 튀기며 흥분해서 얘기를 한다. 어쩔 때 보면 귀엽다.
근데 난 사실 스타트업 하는 친구와 지인들을 많이 보아왔고 나 자체도 스타트업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뭐 그냥 한번 반짝하는 수많은 스타트업 중에 하나이겠거니.. 하고 생각을 할 만한데 유독 이번 주연이 선물사업은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진심
돈과 명예가 아닌 커뮤니티 멤버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어렸을 때 정말 친구를 위해 돈을 모아 선물을 사주는 그런 순수함으로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누가 일일이 선물 뭐 원하는지 물어보거나 손편지를 써주는가, 그냥 카톡 기프티콘 하나 쏴주는 게 다지.
그래서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내심 기다렸다. 생일 전까지 과연 만들 수 있는지 먼저 궁금했고 그 마음을 어떻게 구현할지도 궁금했다. 그런 기대심이 코워킹 공기 속에 느껴졌던가 주연이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하루 종일 뚝딱뚝딱 템플릿 작업에 빠져있다.
플랫폼 이름은 "프레제뉴"
그렇게 논스 커뮤니티의 진심 어린 마음을 주연이가 실제로 구현해냈다. 꼭 생일파티 전까지 만들어야 한다며 영혼을 갈아 넣어 거의 2주 안에 완성한 작품.
일일이 사람들한테 가서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 물어서 살짝 경매? 식처럼 웹사이트에 구현해 놓았다. 승은은 5만 원짜리 도서상품권, 동욱이 형은 9만 원(오메..) 짜리 양주, 유미는 강아지 사다리 등등 뭐 갖고 싶냐는 질문에 생일자들이 처음엔 쭈뼛쭈뼛했을 것 같지만 용케 대답을 잘해줬나 보다.
"근데 경쟁구도가 생기면 어떡해?"
"어떤 경쟁?"
"누구는 펀딩 다 못 받으면?.."
"영원아 그런 건 어쩔 수 없어 지금 이 시대에 경쟁은 필수야"
"초딩 때 세이클럽 인기도의 부활인가. 그때 인기도 높은 캐릭터들이 참 부러웠지.."
기독교인이지만 '경쟁'은 필요하다는 주연이가 어쩔 때는 매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뭐 지금 이 세상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그래도 나만큼은 왠지 펀딩 못 받을 것 같은 사람에게 돈을 지원하겠노라.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사람은 사진 상단 중앙에 있는 '유미'. 중앙에 있어서 그런가 사진의 미소가 너무 어색해서 그런가 유미가 유독 나의 눈길을 끌었다.
유미가 원하는 선물은 강아지 사다리. 강아지들이 침대 왔다 갔다 거리는 게 골격에 좋지 않은가 보다. 어쩜 이리 좋은 주인을 만났을까.. 내심 강아지가 부러워진다. 하지만 부러움도 잠시, 축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점은 왜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지만 아마 선물을 얼마나 잘 골랐는지 멤버들이 평가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점쳐본다. 막 돼도 안 되는 선물이면 평점도 짜고 돈도 안 주는 것인가. 자기가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도 센스 있게 곰곰이 잘 생각해봐야 하는 이 곳. 커뮤니티가 내세우는 '주체성' 철학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칠 줄이야. 이럴 때 논스는 참 무서운 곳인 것 같다.
이렇게 ‘선물하기’를 클릭을 하면 기부 액수 탭이 뜬다. 그렇게 유미한테 나의 마음을 전달하였고 다른 몇 명한테도 전달하였다. 뭔가 카톡 기프티콘 보낼 때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고 해야 되나.. 무튼 좋았다. 그냥 마냥 좋았다. 좋은 건 사람들이 잘 알아본다더니, 며칠 안 가서 모두 원하는 금액에 달성했다고 논스 슬랙에 떴다. 역시 내가 촉 하나는 좋은가보다.
“약간 울컥하는 것 같아...”
“와 이거 생각도 못했는데... 진짜 감동이다.”
“오 완전 신기해!”
뭐 울컥한다니, 감동이니 하는 생일자 반응은 솔직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주연이가 이 프로젝트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였다.
“주연아 넌 이걸로 뭐하고 싶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오오”
“우리가 서로 관심은 있지만 표현을 잘 못하잖아. 내가 뭘 원하는지 상대방은 또 뭘 원하는지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걸 조금 더 발전해보고 싶어”
“발전?이라면 다른 산업으로 확장?”
“복지 사각지대가 많을 것 같은데 이렇게 바로 개인이 직접 복지펀딩을 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이야~ 벌써부터 빅픽쳐네”
“훗”
그렇게 주연이의 프레제뉴는 아래의 스텝들을 밟아 나가고 있다. 2020년이 오기 전까지 개발 기획을 완료하여 정식 플랫폼을 런칭시키겠다고 한다. 이미 블로그도 만들어서 소식을 뿌리고 있다.
프레제뉴의 다음 스텝
· 법적 검토와 통신판매업 신고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 로고 및 브랜드 이미지와 앱/웹 기획서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 그 기획서를 바탕으로 실제 프로덕트 개발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 VC 미팅을 진행하고 청년 정부 창업 지원금을 검토할 예정입니다.
커뮤니티 멤버들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에서 시작한 프레제뉴 프로젝트. 행복한 ‘우연’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텐 ‘인연’이라 느껴지는 것은 느낌 아닌 느낌인 것일까..
작성 Forev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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