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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ce magazine Dec 04. 2019

프로골퍼가 레슨 1회당 1만원을 받는 이유

스캠인가 호(虎)구인가

논스 1호점 계단을 올라와 2층 코워킹 스페이스 문을 열면 왼측 데스크에 확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양배추 잎 색으로 물들여진 머리카락, 아니, 처음에는 양배추 잎이었다가 서서히 금발로 바뀌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은 머리카락이 네이비 색감의 사무실에서 나를 좀 봐 달라는 듯이 찰랑거린다. 


역삼동 양배추


이 다소 관종스러운 머리카락의 주인은 '에릭'. 나름 미국시민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인 줄은 모르겠으나 무튼 그의 옥수수-ish 머리카락은 노르스름하다 못해 구수한 냄새마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구수한 것도 잠시, 그의 데스크 밑 쪽에서 차가운 쇳내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짝다리 짚지 마라..

골프채다. 골프채 두 개가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휘파람을 불었다고 방송실에서 끌려가 친히 맞아준 이후로 신체적 접촉이 없었던 분들인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조금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건 기분 탓인가..


때리려고요?


"Eric 형, 골프 해?"


"어 나 골프 하지"


"프로골퍼야?"


"뭐 그렇게 사람들이 부르지"


"이야~ 어디 프로필 같은 거 있어? 웹사이트나 그런 거"


"아 PGA 사이트 멤버 디렉터리에 찾으면 나와"


"오 여기 있네. 근데 PGA 멤버 아무나 하는 거 아냐?"


"...."


"그냥 회원 가입해서 사진 올리면 멤버 되는 거 아님?"


"...."


"아냐?"


"응. 아니야"


"아무나" 하는 PGA 멤버


그렇다 에릭은 프로골퍼다. 신문에선 보지 못했지만 루프탑에서 드라이브 샷 날리는 폼을 보면 왕년에 한 '버디' 한 폼이다. 운동에 에너지를 다 쏟는지 에릭은 논스 코워킹에 상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소개팅녀와 카톡이 잘 안 풀리면 갑자기 골프채를 루프탑으로 가지고 올라가 드라이브 샷을 날리는 것을 제외하곤 그리 특이해 보이는 건 없는 청년이다.


.

.


하지만 그런 에릭이 최근 커뮤니티 슬랙에 특이한 글을 올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논스 슬랙 #general 칸에 올라오는 글을 슥슥 넘기다가 발견한 포스팅이다. 넘기다가 뭐지?.. 하며 다시 위로 올라가 각 잡고 정독한 포스팅이다. 그냥 넘어갈 게시물은 아니라는 감이 왔다.



PGA 멤버가 전문 골프 레슨장에서 친히 교정해주는 레슨이 1회에 1만 원이라.. 이건 뭐 코인 스캠이 골프산업까지 확장된 것인가. 머리 색깔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가격을 보니 스캠이 아닐 수가 없다. 거기다가 체계적인 커리큘럼도 있고 모니터 위로 흘끔흘끔 보니 제본된 골프 매뉴얼들까지 탑처럼 쌓여있다. 아주 날카롭게 기획한 스캠 아니면 논스 정(情)에 취해 호(虎)구가 된 케이스 둘 중 하나다.


.

.


"형, 회당 만원이면 골프장 대여비 제외하면 남는 돈이 없잖아"


"없지, 오히려 내가 더 부담해야 할 수도 있어"


"님 뭐임?.."


"그냥 가르쳐주고 싶으니깐 하는 거지 뭐 딱히 이유가 있나 허허.."


훈훈하다. 훈훈하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이성과 비즈니스 로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삶'이라는 것이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것인가.. 같이 반찬도 나눠먹고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서로 공유하며 주말엔 삼삼오오 라운지에 모여 새벽 4시까지 마피아 게임을 하는 현상의 연장선인 듯하다.


.

.


"내가 원래 이런 거 잘 안 하고 숫기가 없어서 잘 못하기도 하는데"


"응응"


"좋은 사람들이니깐 같이 뭘 해도 기분이 좋고 그러니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고"


"이야~ 논스 들어와서 그렇게 바뀐 거야?"


"잘 모르겠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논스 와서 그런 마음이 든 건지는"


"하긴, 확 정의를 내리는 건 어렵지"


"근데 확실한 건, 내가 낯 엄청 가리고 사람 진짜 경계하는 독고다이형인데..."


"응응"


"그래서 꽤 오랫동안 나 자신만 믿으면서 뭐든 혼자 했고 사는 것도 혼자 쭉 살아봤다?"


"그런데?"


"빡세더라.. ㅋㅋ"


"아.."


"힘들어.."


"그럼 그럼"


"역시 인간은 영원히 혼자일 순 없나 봐"


"Well said"


.

.


이 행복하고도 '기이한' 현상을 통해 논숙자 모두 '같이' 루프탑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1회차 레슨 기념 사진

 작성 Forev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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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전정신(Challenging the Status Quo
):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

2. 다양성(Diversity):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3. 공유(Sharing): 나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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