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근본을 찾아서..
“형 이거봐봐"
"오 뭐야?"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제목: ‘일본검 26대째 장인의 하루’
동영상 시작부분,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잠깐 제작진들에게 가문 소개를 하고 작업장으로 안내한다. 이들은 대대로 사무라이 칼을 만들어오고 있는 집안. 석탄과 숯검댕으로 뒤덮인 작업장에서 새하얀 옷을 입은 장인들이 화로에 불을 지핀다. 그리곤 그 불로 양초를 켠 다음 집안에 조그마한 미니 신사에서 기도를 올린다.
의식을 끝나면 아버지 장인과 아들 장인이 달궈진 숯을 하나씩 번갈아가며 내리친다. 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인데 이때 정신이 맑지 못하거나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면 정중앙을 내리칠 수 없다 한다. 그래서 다들 마음의 눈으로 초집중하면서 작업에 임한다.
내리치기 작업이 끝나면 담금질이 시작된다. 800도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담금질.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만 해야 깨지지 않는 ‘완벽한’ 칼이 탄생한다. 앳되 보이는 장인 한 명이 화로에 앉아 한 손으로는 불을 유지하면서 한 손으로는 담금질을 한다. 깜깜한 방 안에 땀이 비 오듯 온다. 그런데 지쳐보이지 않는다. 눈이 굉장히 맑다. 일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뭔가, 수행을 하는 것 같다. 어떤 신성한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한 달에 검 딱 한 자루가 만들어진다.
돈을 더 벌 마음도 없다.
신념이라고 한다.
진정한 장인정신.
이들은 일에 ‘근본’을 가지고 있다. 근본이자 철학. 그 좋다는 돈과 사치가 아닌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만의 신념을 유지하는 것. 그 무엇에도 쓰러지지 않는 아주 강한 중심.
“이야 진짜 멋있다”
“그지?..”
“응응, 근데 이거 갑자기 왜 보여줘?”
“그냥 뭔가 이런 일을 한다면, 돈이나 명예를 떠나서 이 숭고한 노동에서 얻는 충만함이 대단할 것 같애..”
“음..”
“이런게 진정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것 아닐까? 한낱 기계나 로봇 따위가 대체할 수 없는..”
“그렇지..”
“나도 이렇게 뭔가 숭고한 노동의 미가 느껴지는.. 마치 의식을 거행하는 것과 같은 일을 배우고 싶다”
“커뮤니티는?”
“커뮤니티?”
“우리 커뮤니티 일에 이런 장인정신을 가질 수 없을까?.. 어떤 철학이나 근본으로?”
“흠.. 장인정신의 커뮤니티라..”
커뮤니티의 근본은 무엇인가?
서양은 자연을 분석적 수학적으로 인식하여 객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발달시켰지만 우리는 개체의 차이보다는 개체들의 공통적 요소를 발견하여 이를 상생적 관계로 인식한다. 1+1=1이 되기도 1+1=5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합쳐져 하나로 통합되고, 그 하나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6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포용과 조화의 철학’이라 한다.
이렇듯 예부터 우리 선인들의 가르침은 모두 상생공동체 철학을 기반으로 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만물이 모두 소중한 생명체로서 상생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근본철학이다. 상부상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 세계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는 앵글로 문화는 무력과 정복을 숭배했다면, 우리 문화는 평화와 상생을 숭배했다.
한국의 성씨문화가 이를 가장 잘 나타내준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물들어 있다. 본래 전쟁이 일어나면, 그 후대의 왕족이 이전의 왕족을 다 멸족시키는 법. 그래서 전쟁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씨가 다양해진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보편적인 성씨인 ‘사토’는 전체 인구의 1.5%에 지나지 않고 독일의 Muller는 1%, 인도의 Singh는 2.7%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경주김씨, 파평윤씨, 순흥안씨, 달성서씨 등 400여개의 성씨, 즉 400여개의 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의 40% 가량이 김, 이, 박씨로 되어 있다.
이는 세계역사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다.
신라왕족 천년, 고려 500년, 조선 600년. 이렇게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왕족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은 세계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외세에 의해 정복된 왕족은 멸족되는데 한반도에서는 전쟁에 패하더라도 이전 가문들이 뿌리 채 제거되지 않고 큰 나라에 흡수되는 식으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백성들 또한 물론 다 흡수 및 포용되었다. 즉, 최소 1500여년 이상은 가족의 ‘혼’, 즉 커뮤니티가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고 별탈 없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와 상생을 사랑하는 민족
따라서 한국인이라면 강인한 집단주의와 공동체 DNA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혈연집단, 지역집단, 이념집단, 학연집단, 이해집단, 취미집단 등 무수한 집단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한국처럼 ‘동아리’나 ‘패거리’가 많은 나라도 없고, 온라인 카페나 팬클럽이 발달한 나라도 없다.
이 한국의 동아리 문화는 특히 국난을 당했을 경우, 동아리들이 큰 공동체로 뭉쳐서 무서운 단결력을 보이는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 당시 외세에 대한 저항의 주체로 나선 민병대가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다. 고대의 낭도, 조선시대의 의병, 일제시대의 항일무장세력들이 모두 민병대 전통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나라가 싸그리 말아 먹혔어도 전혀 놀랍지 않을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은 이 민병대 전통으로 끈질기게 생존했다. 평화로울 땐 지들끼리 쓸데없이 죽이니 살리니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라에 큰 문제가 생기면 무서울 정도로 하나로 뭉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현대의 대표적인 예로는 외화위기 금 모으기, 2002년 월드컵 전국민 떼창, 그리고 평화촛불시위가 있는데 특히 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는 참가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극도로 평화롭게 진행되어서 해외언론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화염병 하나 던질만도 한데 다 같이 모여서 막 노래를 부르질 않나, 아낙네는 유모차를 끌고 오질 않나, 이렇게 민중의 시위가 평화적으로 일단락된 것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인은 동아리, 즉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애초에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부모님도 테니스 동아리, 탁구 동아리, 초등학교 동창회 등 엄청나게 많은 동아리들에 속해있다. 그 동아리들이 큰 공동체로 뭉치면 국가발전의 윤활유가 되고, 작은 공동체로 뭉치면 사회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주지만 때로는 탐욕과 이기심에 눈먼 지나친 경쟁으로 사회혼란의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고질병도 여기서 나오는데, 이렇듯 작은 동아리 사이의 경쟁이 지나치면 큰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치명적인 허점이 존재한다.
즉,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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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은 가족, 마을과 같은 전통적 공동체에 분열이 생기면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커뮤니티 방랑자' 혹은 '커뮤니티 덕후'라 하는 커뮤니티 쇼퍼(Shopper)들이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생존할 수 없는 법.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소속된 커뮤니티를 찾으려 나서는데, 요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종교단체, 소셜살롱, 밋업 등이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커뮤니티 쇼퍼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기 위해서 브런치 작가 Lynn님의 '커뮤니티 덕후의 탄생'이라는 매거진을 언급하고 싶다. 자신을 커뮤니티 쇼퍼라 부르는 Lynn님은 3년간 전 세계를 일주하며 인도 오로빌, 태국 퍼머컬쳐 농장, 태국 치앙마이 코워킹 스페이스, 독일 베를린 밋업, 인도네시아 발리 리트릿 등 유명하고 좋다는 곳을 방문해보고 그에 대한 솔직담백하고 생생한 후기를 포스팅으로 남기셨다.
초기 포스팅은 뭔가 나의 커뮤니티는 내가 찾겠다는 강한 의지와 열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갈수록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가 글에서 약해져간다.
그리고.. 작가님은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신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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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한 바퀴 돌았는데도 그 어떤.. 이름 모를 허기짐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를 가야되나?’
‘이곳은 이게 문제야!’
‘저기는 좀 다를까?’
작가님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기호에 맞는 커뮤니티를 쇼핑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리신다.
커뮤니티라는 것, 진정한 ‘공동체’라는 것은 1-2시간 모임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모임을 위한 모임,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항상 ‘본질’을 놓친다. 하지만 지금 우리세대는 내 계산에 의한, 내 기호에 맞는, 좋은게 좋은거고, 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보지 않는 이런 일회성 관계로 잠식 되어 버렸다. 연애를 쇼핑하듯 하고, 나중에는 초고독사회인 일본처럼 가족을 렌탈하고 미국처럼 가족까지 쇼핑할 기세다. 그렇게 밀레니얼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모임과 ‘공동체’는 휴지처럼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성 만남과 관계를 반복한다. 그렇게 하하호호 거리다가 끝에 남는 것은 허망함과 더욱 사무치는 외로움뿐이다.
다 결국 ‘껍데기’였던 것이다
괜히 '먹방' 문화가 발달한 것이 아니다. 세계 어딜 가도 한국만큼 먹방이 발달한 곳이 없다. 영미권에서는 이를 너무나 특이하다고 인식하여 컨텐츠 자체를 아예 영어로 'Mukbang'이라 부른다. 사람을 경계하고 불신하니. 혼자 밥은 먹어야 되겠는데, 무의식에는 공동체 DNA가 살아 있기에 한켠엔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그러니 랜선으로 안면도 없는 사람 밥 먹는 것을 지켜보며 자기도 씁쓸히 같이 수저를 뜬다.
결국 우리 한국인은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프롭테크니 소셜살롱이니 하는 처음부터 ‘수익’이 목적이자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만 따지면서 사람을 ‘근본’없이 모아놓은 커뮤니티와는 애초에 호환성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몇 천년, 아니 몇 만년에 걸쳐 형성된 공동체 문화와 얼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모래반석 커뮤니티를 지으니 다들 혼란스러운 것이다.
상생이 결여된 껍데기
우리 세대 잘못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제국주의와 한국전쟁 이후 자본의 팽창과 물질적 성장에만 집착한 산업화가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욱여넣었고 그 과정에서 기저문화, 즉 전통문화가 마치 이국적인 모습으로 생소하게 느껴지면서 우리의 '근본'이 잊혀졌을 뿐.
단기간 초고속 성장을 이루겠다고 물불 안 가리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와서 뒤를 돌아보니 전통과 문화는 저기 멀리서 엄마 손 놓친 애 마냥 앉아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땀은 많이 흘렸고 이룬건 많은데 정작 주위를 돌러보니 우리는 혼자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길 한복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뭐가 우리 것이고 뭐가 소중한지, 앞으로 더 뛰어가야 할지 뒤로 다시 가야할지 이제 분별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나는 그래서 한 번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고 생각한 1인으로서 잠시 페이스를 늦춰 뒤로 다시 걸어가 울고 있는 얘가 누군지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난 경상북도 외지의 우리 할아버지 마을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집안은 경주 김씨 일천공파로 임진왜란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경상북도에 한 터를 잡아 지금까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가문이다. 평소에도 미세먼지를 피해 할아버지 집에 자주 놀러 가는데 마을에서 여기저기 산책을 하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거 누구 아들인교?” 라고 물으신다. 그러면 나는 “저~기 건동댁 손자입니더” 라고 답한다 (건동댁이란 저기 건너 동네에서 시집을 온 밀양 박씨네 딸 우리 할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이렇듯 할아버지 마을은 다양한 가문들이 아주 밀집성 있게 커뮤니티를 이룬 곳이자 아들딸 자식을 다리나 강 건너 시집과 장가를 보내면서 커뮤니티들이 ‘같이’ 팽창하고 있던 곳이었다. 할아버지 같은 경우 건너 동네 밀양박씨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당시 그 집 딸이었던 할머니를 데리고 다시 본인 마을로 돌아오셨는데 이렇게 마을에 ‘혼례’라는 경사가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터를 잡고 집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집 짓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저기 마을 한켠의 사랑방같이 생긴 집에서 신혼여행 아닌 신혼여행?을 하셨다. 집이 다 지어지면 집들이 잔치를 하고 그렇게 젊은 부부는 마을의 정식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또 다른 ‘가족’이라는 小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정(情)과 화합이라는 ‘근본’으로 같이 성장한 것이 우리의 커뮤니티, 즉 공동체 문화다. 일손이 부족해 아이를 못 보고 있으면 옆집에서 봐주고, 밥도 멕여주는 말 그대로 니 자식이 내 자식이다 하는 그런 Empathy(恕)의 문화. ‘내’와 ‘네’가 발음과 철자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안에 네 있고, 네 안에 내 있다'
'내가 네고, 네가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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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논스는?..
디지털 혁명 최극단에 있는 논스는 전통 공동체 문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소셜살롱이나 소그룹 모임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게 떴다가 결국엔 지는 것일까?
논스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요리조리 하나씩 뜯어보고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그림에서 다시 비추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이 얄팍한 지식과 짧은 경험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1. 먼저 탄생배경을 보자.
현 논스의 시조 하시은은 본래 부산에 있다가 블록체인에 빠져 군대 사무실 동기였던 문영훈을 컨택해 광교 원룸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명이 2명이 되고 그 다음엔 강영세가 합류하면서 3명이 됐다. 그러면서 블록체인과 스타트업에 빠진 지인들이 좁디좁은 원룸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으며 지인들이 또 지인들을 데려와 다소 더디게, 하지만 굉장히 실속 있게 커가기 시작했다.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논스는 Top-down식 인위적 ‘비즈니스’라기 보단 민들레처럼 스스로 포자를 터뜨려 자신 주위에 자연스럽게 군집을 생성하는 Bottom-up 커뮤니티로서 발돋움했다.
2.1 다음으론 운영진과 논숙자의 공통적 기질을 뜯어보자.
우선 논스가 타 커뮤니티와 다른 점은 운영진 자체가 커뮤니티 멤버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즉, 운영진을 따로 고용해 놓고 건물을 세워 사람을 채워 넣는 타 코리빙 기업들과 달리, 논스는 운영진들이 애초에 커뮤니티 일원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논숙자들과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다. 지도층?이 사람들과 같이 살고, 기쁘면 같이 웃고, 슬프면 같이 우는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
적자와 캐시버닝이 엄청났던 작년, 애물단지인 코리빙 사업을 버려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상황에서 형들이 끝까지 커뮤니티를 지켜야 한다며 한 말이 생각난다.
“정과 의리 때문에라도 계속 할 것이다”
논스 커뮤니티가 해체돼도 멤버들이 밖에서 스스로 잘 살아 갔을거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운영진은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낸다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정말 가슴 아파했다. 즉, 사람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밑 빠진 독 같은 논스 커뮤니티가 버텨나갔다. 다른 건 없다. 그 ‘정’으로 버텼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애초에 지도층이 미국이나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한 것이었으면 커뮤니티는 바로 버렸을 카드다.
정(情)은 인간의 아주 깊은 곳을 건드린다.
진심과 신의로 작동하는 커뮤니티
2.2 그렇다면 운영진은 사람의 어떤 부문을 보는가?
오랫동안 인터뷰를 관찰해보니 논스 운영진은 신입 인터뷰를 할 때 겉으로 보이는 ‘스펙’보다는 사람 안에 내재되어있는 '선함', 즉 인격체에 아주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만물은 모두 내면에 ‘선함’을 내재하고 있다는 굉장히 한국적인, 즉 ‘선비’스러운 철학과 가깝다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운영진과 논숙자들의 독특한 행동패턴과 그에 따른 선의의 연쇄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판 깔아주기 → 자발적 프로그램 등장’ 패턴이 대표적인 예시다.
논스는 다른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와 달리 막 어떤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억지로 벌이기보다는 그러한 이벤트들이 스스로 나타날 수 있게끔 인프라를 깔아주는 것, 즉 ‘판을 깔아주는 것’에 집중한다. 판과 환경만 잘 갖춰준다면 모든 것 알아서 잘 스스로 갖춰진다는 것이다.
몇 개월 전에 내가 무리하게 추진하려했던 영어 스터디 개설 해프닝이 대표적인 예시다. 작년 가을, 논스가 사사로운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커뮤니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스터디와 프로그램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 흐름을 타서 영어스터디를 따로 무리를 해서라도 개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왜냐? 일시적 상승추세를 타 논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세형은 단호한 ‘No'를 외쳤다.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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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야한다”
“특히 영어는 누구나 수요가 높은 부문이기 때문에 인프라만 갖춰주면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스터디를 구성할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얼마 후에 성동이형 리드로 영어 스터디가 보라는 듯이 구성되었다. 나의 인위적, Top-down적 의도가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것을 아주 깔끔하게 증명해 주는 케이스였다.
금하고 통제하는게 많아지면 더욱 영악해지고 불신한다
이렇듯 논스는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함’에 대한 믿음으로 자연생식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다. 환경을 만들어주면 알아서 스스로 발라지고 고쳐진다는 동양철학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데, 이는 사익추구를 위해 무한경쟁을 하면서 억지로 일을 벌이는 바깥세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3. 마지막 질문은 상생.
상생을 추구하는가?
같이 잘 살아보자는 우리 공동체 뿌리에 입각해 논스는 ‘상생’을 추구하는가?
그들이 잘 됐을 때 나도 같이 잘 되고, 내가 잘 됐을 때 그들도 같이 잘 되는가?
진심으로 타 커뮤니티원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잘 됐을 때 나 또한 기쁘냐는 것이다.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커뮤니티 얘기를 하다가 무슨 자기반성하는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 운영진들은 위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싶다.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논스에 남아 있다.
“논숙자들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논숙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논숙자들 스스로가 위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는 확답을 주기가 어렵다. 운영진이 그들의 마음 내 마음이라 한들 실제로는 그들의 입장이 안 되어봐서 잘 모르겠다.
논숙자는 다른 논숙자가 잘 되기를 도와주고 싶어하는가?
다른 논숙자가 잘 되었을 때 자신도 잘 될 수 있나?
논스가 성장할 때 논숙자 또한 같이 성장할 수 있는가?
반대로 논숙자가 성장하면서 논스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가?
하.. 모르겠다.
근데 하나 확실한 것은 있다.
논숙자들은 ‘논스’라는 큰 공동체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주인의식과 단순한 사업체-고객의 관계를 초월하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작년에 운영진이 커뮤니티 사업을 버릴까 말까 했을 때, 남아 있는 논숙자들이 절대로 논스가 없어지면 안 된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여기저기 스스로 발로 뛰어 영업을 해줬다는 것.
평범한 쉐어하우스나 코리빙 같으면 커뮤니티가 사라지든 말든 나야 뭐 다른데 가면 되니깐.. 하는 마음이었을텐데 유독 논스와 논숙자는 그 협력적 결집성이 대단하다. 이는 1+1=2가 아니고 3, 5, 심지어 100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해주는 케이스인데 그 핵심에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사람’들이 교류하여 형성하는 무한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래서 논스 사람들은 ‘나눔’을 좋아한다. 좋은 것은 자기만 독식하는 것이 아니고 나눠야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누지 않는다면 1+1=2.. 아니, 1+1이라는 공식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나누기 시작한다면 1+1의 결과 값이 어떻게 될지, 개인들이 모여 큰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 그 힘의 파급력이 어느정도가 될지는 정말 상상에만 맡길 수 있다.
정은 곧 나눔이다.
나눔은 곧 평등이다.
평등을 통해 남을 포용한다하지 않는가.
숫자 놀이를 떠나 애초에 좋은 것을 나누지 않는 정이 없는 사회는, 끝없는 고독함에 몸과 마음이 아파지고, 반대로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사회는 몸과 마음에 여유와 평안을 가져다준다.
이로써 논스는 껍데기형 소셜 커뮤니티라기보다는 ‘전통’에 좀 더 가까운 한국적인 ‘마을’이라 볼 수 있겠다. 도심 속의 마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디지털 마을? 밀레니얼 타운? 스마트 타운? 블록체인 타운?
우리조차 너무 생소해서 그 이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좋은 곳’이라 불러본다.
그래서 우리 운영진은 매주 수요일 점심을 같이 먹는다. 비즈니스 미팅이라기 보단 그냥 형들이랑 모여서 밥을 먹으며 논스와 관련하여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의 근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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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옛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을 ‘전통’이라 한다. 오래가는 것엔 이유가 있다. 아마존이 '책'으로 시작했듯, 수 백년, 수 천년된 고전문학이 여전히 널리 읽히고 있듯, 10년된 전자 믹서기는 고장난지 오래지만 할머니의 100년된 멧돌은 여전히 건재하듯,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러시아 오미야콘 마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100세이듯, 오래가는 것엔 이유가 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뀌지 않는 '본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혁명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더욱 산업적으로 발달했다고 전통을 무시하는 선진국은 없다. 오히려 전통을 더 보호하고 굳게 잡아 홍수처럼 밀려오는 트렌드들을 흡수하려한다. 본질에 가까운, 바뀌지 않는 ‘무엇’ 즉, 근본이라 하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강력하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끝없는 멸종의 위기가 있었어도 거의 반만년을 생존했듯이 말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만큼 인간적인 것은 없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 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것. 선인들은 언제나 외래문화를 받아들일 때 이 법고창신의 정신을 발휘해왔다. 근데 문제는 제국주의와 한국전쟁이후 급격한 산업화로 전통이란 것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생소하게 느껴지고 그 흔적이 지워지면서 우리의 '근본'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대는 선이 끊겨버린 전통과 그로써 붕 떠버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괴리감은 신뢰의 붕괴, 끝없는 고독감, ‘탈조선 페티쉬’ 등 기형적인 사회적 문제들로 발현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문명’이라는 게임을 하면 참 숙연해지는 순간들이 많다. ‘문명’이란 한 국가를 선택하여 고대부터 성장시켜 마지막으로는 세계를 지배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한국’을 선택하여 운영을 잘하면 외세침략 없이 자체적으로 근대화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광경이 참 아련하다. 한옥형 건물들과 미래형 건물들이 같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숙연해진다. 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트렌디한 기능성 한복 같은 것을 입고 다닐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게임 속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
그렇게 멍하게 게임 속 그래픽을 보고 있다보면 얼마 안 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든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여전히 시간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지는 이제 100년이 넘었고 한국전쟁을 치른지는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큰 역사적 흐름으로 봤을 때 우리는 여전히 상처와 트라우마를 회복하고 있는 시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회복의 징조로써 논스를 말한다.
우리 무의식에 웅크리고 있던 문화적 DNA가 다시 부활하는 것 같다고..
먼지 한 줌 속에서도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는 문화적 민들레가,
노란 빛의 일편단심 민들레가
현대 한국 도시 한복판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성 김영원(Forever Kim)
1. 도전정신(Challenging the Status Quo):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
2. 다양성(Diversity):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3. 공유(Sharing): 나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