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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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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Oct 05. 2020

머리는 워렌버핏, 가슴은 석가모니

투자자 강유빈과의 만남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왜 그런가요?"


"상생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


새벽에 장맛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논스 1호점 라운지 옆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유빈이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우연히 저녁약속을 잡게 된 날이기도 하다.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대화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대수롭지 않게 저녁 약속이 잡혔다.


청렴하고 바른 사나이로 소문이 자자한 유빈. 그와 저녁을 먹게 된 장소는 역삼의 한 백반집. 1인분에 7천원, 8첩 반상이 정갈하게 차려지는 백반 집에 앉아 그를 기다리니 볼기에 땀방울들이 흘러내린다. 언덕길 급하게 내려간다고 맺힌 땀방울들인가 보다. 마침 고맙게도 벽에 달린 레트로 선풍기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땀을 호호 불며 식혀준다. 그 바람에 잠깐 멍하게 넋 놓고 있는 사이 식당 문을 열고 훤칠한 키의 청년이 들어온다.


"이야, 정말 오랜만이야"


"그지?"


"거의 작년 여름에 1층 주방에서 같이 밥 먹고 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이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세월 참.."


"그 때 너랑 대화하면서 받았던 첫 인상은 파격적이었지"


"아.. 무슨 대화를 했더라?"


"워렌버핏으로 시작해서 싯다르타로 마무리 한 그 대화 기억나?"


"아하.. 그랬었군."


"불교와 주식투자라는 거의 상극에 있는 두 분야를 같이 아룬다는게 참 신기했어. 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묘사해주는 인물들인 것 같아"


"에이, 난 별거 없는 사람이야"


"그만큼 특별하지~"


"하하"


"아 참, 오늘 너랑 저녁먹는 데 관심사가 비슷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모시고 왔어~"


"응응, 안 그래도 단체카톡 방에서 자주 뵈었었는데"


두 남정네 옆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있다. 공깃밥은 됐다며 손을 설레치며 순두부 국을 조용히 뜨고 있는 그녀. 자칭 "논빠"로 유명한 논숙자 김다형.


"으악, 그동안 너무 나댔나 봐요”


"아, 아니에요~ 그때 영훈이 형이랑 수정 자본주의에 대해서 단체 카톡방에서 토론하실 때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저도 그런 주제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아 그러시군요!"


종교, 철학, 생물학, 그리고 가치투자에 관심이 많은 다형. 종교와 교리는 나룻배의 역할을 수행할 뿐 목적지는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을 오랜 시간 품어오던 그녀. 편견 없이 세계 여러 종교를 골고루 살펴보는 유니태리어니즘(Unitarianism)에 큰 매력을 느껴 진리추구 스터디(일명 '묻다')를 어떻게 구성해볼까 하는 찰나에 유빈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유빈님이 투자 쪽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아하.. 뭐 관심은 많은데 잘하지는 못해요"


"아 그리고! 불교신자라고도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우와, 동시에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신다고..”


“하하 쑥스럽네요"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으세요?"


"상생하고 싶어서입니다"


"상생이요?"


"네, 핵무기로써 이제 인류는 모두 다 같이 공멸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어요. 이기성이 악이라면 그 악의 극단이 핵이고, 인류는 그것을 지금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이제 인류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맞닥뜨렸다는 말씀이신가요?"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평화가 도래했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평화요?"


"네"


.

.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이제 우린 모두 다 개자식이야)


맨해튼 프로젝트 (인류최초 핵무기 프로젝트)의 책임자 Bainbridge가 첫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 했던 말이다. 누구는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핵폭발 장면을 그는 "기괴망측" 하다고 묘사한다. 핵무기 하나가 터지면서 수십만 수백만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모습을 보고 인류는 드디어 제대로 현자타임을 가지게 된다.


핵.jpg

2차 세계대전까지도 그저 서로를 이기겠다고 끊임없이 더 강한 군사력과 무기를 갖추려고 아우성치다 핵폭탄을 만들고서야 드디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인류. 일각에서는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반전 시위, 반전 운동 정신이 싹을 트기 시작했고 서양에서는 히피운동이 발발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요가 등 Zen(선)문화와 동양철학이 유입되었다고 말한다.


.

.


"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유빈님은 지금 사회 의식에 대해 조금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가요?"


"음.. 지금의 사회는 욕심을 지나치게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진 자는 더더욱 시스템을 유지하려고만 하고 그 결과 못 가진 자는 계속 피해를 보고 있죠. 사람들이 끝없는 욕심으로 자기만을 생각해 타인을 해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서로 공생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흠.. 근데 그것이 유빈님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죠?"


"지금 제가 태어난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고 자본에 권력이 따라가는 형태예요. 인류 변화에 있어서 큰 목소리를 내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래서 저는 게이츠 재단과 같은 재단을 만들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요. 그럴 돈을 벌지 못한다면 정말 진실된, 모든 사람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싶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장학 재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에 저는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어요. 저 같은 흙수저가 사람들의 선한 마음 덕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저 또한 동일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요"


"그래서 투자에 관심이 많으신거군요"


"네, 하지만 차트에 집착하는 단타성 투자가 아닌 장기적 관점의 가치투자를 좋아해요. 저는 주식시장이 인기투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이 마냥 좋다고 생각하면 그냥 훅 올라가고 아니면 훅 떨어지는 곳이죠. 시간이 지나면 반영될 것들이 다 반영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너무 흥미롭네요"


"시장은 효율적이고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는 시각이 있다면 저는 반대로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시장은 인간 마음의 또 다른 형상일 뿐,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워렌버핏을 좋아합니다"


"오.."


"워렌버핏만큼 시장을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그럼 버핏은 유빈님에게 삶의 멘토 같은 존재인건가요?"


"아뇨, 그냥 투자에 한해서 그의 기법과 철학이 매력적인거지 사실 그와 동일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워렌버핏 같은 경우 요리도 못하고 청소도 못하고 그냥 정말 오로지 투자 하나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불교철학을 가슴에 새겨놓죠"


"머리는 워렌버핏, 가슴은 붓다"


"유빈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버렸다.


"너의 얘기를 듣는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사실 아직도 불교철학이 어떻게 자본주의에 반영 될 수 있는지, 그 사상으로 어떻게 주식투자 혹은 크립토 투자를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가 가진 않아. 그래서 그런데.."


"응?"


"너 논스에서 투자클럽, 아니 철학 중심의 투자클럽 해보는 거 어때?"


"에이 내가 무슨.."


"아니 진짜로.. 너가 오늘 말해준 것들이 정말 흥미롭기도 하고, 논스에는 정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잖아?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고 실제로 투자 스터디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논스스러운게 없을 것 같아"


"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철학'이란 말에 눈이 반짝반짝하는 다형.


그리고 문득 무언가 떠오른듯, 휴대폰을 꺼내 한 사진을 보여주는 유빈.


유빈이 책장.jpg

"생각해보니깐, 막 어떤 투자기법이나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고 철학과 이념을 같이 공부하고 그걸 바탕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스터디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 이 사진에 나와있는 책들이 내 가치투자 철학의 토대가 된 책들이야. 이 책들 중 일부나 다른 투자 관련 책을 같이 읽으면서 특정 안건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북클럽을 만들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 내가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도 할 수 있고 말이지"


"그렇지.. 거시적으로 철학과 이념을 논하고 마이크로하게 같이 기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겸사겸사 실제로 투자도 해보는 클럽"


"너무 좋은데?"


"기획안 같은게 나오면, 퍼블리싱하는 거 도와줄게! nonce is all yours"


.

.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 벌써 마감시간이 되어버렸다. 투자철학에 대한 대화는 다음에 이어가기로 약속하고 다형과 발걸음을 다시 논스로 향한다. 참 많은 여운을 남기는 대화였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논스는 참 신기해"


"왜?"


"하루는 사람들이랑 코워킹에서 불교철학에 대해 같이 논의하다가, 다른 하루는 1층에서 기독교부터 시작해서 사이온톨로지, 몰몬교 등에 대해 토의하고 있어.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특이한 집단같애"


"다른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있는 무리는 원래 많지 않아?"


"물론 레저 동호회나 스터디 클럽 등 종교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섞여있는덴 많아. 하지만 그런 곳은 논스처럼 삶 그 자체를 공유하고 있진 않는 것 같아. 취미나 제테크 같은 어떤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성되었지만 본딩의 밀도가 논스처럼 높진 않다는거지"


"하긴, 이렇게 삶의 매 순간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종교단체 외에는 잘 없는 것 같아"


"응, 물론 영국의 올드오크라고 수 백명의 사람들이 같이 사는 코리빙 빌딩이 있고, 인도의 오로빌이라는 곳도 있긴 있는데.. 후자는 명상공동체라는 색깔이 조금 강하다고 들었고 전자는 그냥 흔한 쉐어하우스처럼 그냥 한 공간을 여러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정도라고 들었어"


"그럼 논스는 왜 가능한 것일까?"


그러게 말이다.


"잘 모르겠어. 다형은 어떻게 생각해?"


"난 논숙자들이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


"호기심?"


"응. 그 사람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그냥 그 삶과 철학이 너무 궁금한거지. 호기심이 많으니 자연스레 포용적이고 편견없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 같아"


"다형 말을 들으니 어린아이들이 떠올라"


"어린 아이들?"


"응. 놀이터나 이런데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면 애들은 종교나 인종, 사상 이런거에 상관없이 바로 막 친해지더라고.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인지하지만 그것이 전혀 그들에겐 방해물이 되지 않아. 오히려 다르기에 서로 더욱 호기심을 가지기도 하고"


"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


.

.


다른 가치관, 세계관이 나타났을 때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쏘아내릴 수도 있고 그 다름 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내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출 수도 있다. 무엇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논스에는 후자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주식투자 하는 불교신자에 대한 스토리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고, 또 언젠가는 그와 또 다른 사상, 혹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논숙자의 얘기를 듣고 함께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논스이지 않을까?


작성 김영원

편집 김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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