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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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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Aug 11. 2020

퇴사 후 CEO가 된 백수 이야기

삼성에서 논스까지

"투자펀딩 다 완료했어!"


논스 입구 계단에서 냅다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 한 손엔 막대사탕 다른 손엔 커피가 쥐어져 있다. "네이버" 라는 단어가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떡진 부슬부슬한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솟아오른 터법터법 턱수염, 잔 듯 안 잔 듯 카페인에 찌든 안색. 언제 유행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두껍고 새까만 플라스틱 뿔테안경. 하지만 두 눈만큼은 초롱초롱하다.


"네이버 텀시트 받고 드디어 펀딩 완료!"


"네이버한테서요?"


"응, 네이버!"


"이야.. 언제 거기까지 갔데"


"그러게 말이야"


"형 저기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서 멍 때리는 거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그렇다. 네이버로부터 텀시트를 받고 펀딩을 완료한 이 사람은 다름 아닌 논스 코워킹 죽돌이 김지윤. 작년에 이미 논숙자 매거진에서 소개된 바 있지만, 큰 호재가 있어 다시 한번 키보드를 잡아봤다. (기사참고)


기사 스크린샷.jpg


지윤과 그의 스타트업 DSRV 랩은 무슨 인연인지 논스 커뮤니티와 다사다난한 운명을 쭉 함께 해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다보니 매번 글을 쓰려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럽다. 그래도 천리는 한 걸음부터라니 그와 조우한 첫 날을 떠올려보고 싶다.


.

.


"영어 가르쳐 줘"


지윤은 영어를 애매하게 잘한다. 잘하는 것 같은데 못한다. 아니 못하는 것 같은데 잘한다. 그래서 참 애매하게 잘한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열정, 학습욕구는 남다르다. 그렇게 작년 논스에서 한창 영어교육 콘텐츠에 매진하고 있을 때 지윤과 안면을 터게 되었고 이후 그와 과외 스케쥴이 잡히면서 서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형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꼭 이렇게라도 영어를 배워야 하나요?"


"우리 회사가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내가 영어를 더더더 잘해야 해"


"아.. 그럼 형 회사 영어로 소개하는 거 먼저 들어볼게요"


"응?.."


"형이 최근에 차린 회사 영어로 소개하는 거 한 번 들어보고 싶아요"


"Um..."


"???"


"Hm..."


소개를 해달라니 계속 뜸을 들이는 지윤.


"잠시 한국말로 해도 돼?"


"당연하죠~"


"내가 삼성 때려치고 나와서 회사 차리긴 했는데.."


"넵"


"솔직히 나도 아직까진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정의 내리기가 참 힘들어"


"엥?.. 그럼 같이 있는 사람들은 뭐예요?"


"그냥 혼자 코워킹에 앉아 있는데 하나둘씩 자기도 같이 하자고 오더라고?"


2018년 겨울, 기반기술, 펀더멘탈의 부재에 환멸을 느껴 대한민국 취준생들의 로망인 삼성전자를 때려치고 다짜고짜 논스에 회사를 차린 지윤. 주변 사람 열에는 열 모두 너가 지금 그럴 객기 부릴 나이냐며 뜯어말렸을 텐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과 꿈을 외치며 무언가에 이끌려 논스 코워킹 데스크에 노트북을 냅다 던졌다.


어떤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청춘이니 아파도 괜찮다는 20대도 아니다. 결혼도 했고 슬하에 아들도 있다. 그렇다고 전 회사에서 평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나가서 연구분야 상을 줄줄이 탔고 해외 연구원으로 특파된 경험까지 있다.


"리스크가 굉장히 컸을텐데 왜 퇴사를 한거죠?"


"회사의 이익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한 영감을 받았어"


"오.."


"회사에서 밤새도록 코딩을 했는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쓴 코드 중에 쓰이는 코드가 거의 없는거 있지?"


"회사 제품에 쓰였겠죠"


"그러니 허탈하더라고.. 난 무얼 한 건가.. 회사만을 위해 일한 건가.."


"어떻게 보면 모든 회사원들의 숙명 아닌가요?"


"내 성격 때문에 그런가 그게 나랑 잘 안 맞았던 것 같아"


"그래도 회사원의 포지션은 안정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죠"


"나는 안정성보다 내 일이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견딜 수가 없더라고"


"오우.. 멋있는데요?"


"에이 객기를 부린 건데 솔직히 논숙자들, 우리 팀원들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거야"


"인류를 위해 코드를 쓰고 싶다"


신기하게도 지윤이 논스 코워킹 데스크에 자리를 세팅한지 몇 주 안 되어 그의 퇴사 및 논스 입주소식이 논스 커뮤니티에 울려 퍼졌고 그렇게 어느날 한 두명씩 같이 하자며 지윤 옆자리에 자신의 컴퓨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오라고 한 적도 없다. 가라고 해도 가질 않는다. 회사의 플래그쉽 컨텐츠가 부재했던 것은 물론 팀 빌딩하기에는 딱히 이렇다 할만한 게 없었는데 단순히 '지윤'이라는 사람만 보고, 그의 순수한 마음만 보고 대한민국 일타 개발자들이 자신들 회사마저 때려치고 그와 함께 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내가 밥이라도 해줄게!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작년 여름, 매일 바뀌지 않는 그의 티셔츠가 해바라기가 되어가고, 턱수염이 더욱 부슬부슬해지며,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멍하니 벽에 기대어 멍 떄리던 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안쓰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목숨을 걸었어"


"집이든 차든 모아놓은 돈 다 털어 넣었지"


"네!?"


"정말 목숨걸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거야"


"도..도대체 왜요?"


"나만 보고 팀원들이 퇴사하고 1년동안 월급없이 이렇게 함께 해주는데 잠이 오냐?"


"아..."


"나에게 또 다른 대안이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 아니 대안이 있더라도 그것을 없애야 하는 상황이었어. 나태해질까봐"


"아.."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팀원들 생각하면 힘든 것도 생각 안 나"


"마냥 고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에요"


"심각할 필요없어.. 아니 심각해지는 순간 우리 팀은 그냥 망한거야"


"네?"


"웃음을 잃은 순간 끝이 난거와 다름없어"


"웃음을 잃은 순간 끝난 것과 다름없어"


가장 일찍 코워킹에 출근하고 새벽에 3시에 퇴근하는 건 일도 아니며 주말에는 빈번하게 코워킹에서 침낭 깔고 밤을 보내는 그의 말이다. 들으면서 오로지 자신만 보고 온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그가 마음 한 켠에선 안타까웠다.


윗선의 오더를 받는 아무개 엔지니어에서 한 회사의 대표로 변태하는 과정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그 고통을 누가 감히 쉽게 감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배에 같이 뛰어든 팀원들은 그와 함께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옆에서 같이 인내했다. 애초에 같이 장거리 마라톤을 예상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다른 논숙자들도 자기 일처럼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개발에 개자도 모르고 사업적으로 도와줄 처지가 안 됐던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거나 캔 커피타임 때 말동무가 되어주고, 코워킹에서 마주치면 같이 헤벌레 웃었다.


구석자리 창가시절.jpg


"너무 고맙지. 별거 없는데 팀에 들어오고 여기저기 도와주고 참.. 여기 논스는 뭐하는 곳인지 항상 신기해"


"형을 봤을 때 어딘가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매번 변동할 수 있는 어떤 사업 아이템보다는 서로의 가치관과 마음을 신뢰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DSRV. 그 강한 본딩을 중심으로 작다 할 수 있는 팀에서 보안솔루션 InterceptX가 탄생할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 세계적인 POS 밸리데이터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매력을 느껴 네이버뿐만 아니라 다양한 네임드 투자자들이 러브콜을 준 것은 필연 아닌 필연이 아닐까.


재밌는 회의시간


현재 지윤은 자신의 팀과 함께 논스 구석 창가자리를 떠나 단독 사무실 두 채로 이사해 여전히 허슬 중에 있다. 그 옆을 지나가면 한 켠에 쌓여있는 과자들에서 나는 단내 사이로 세상에 갓 태어나 몸부림치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너무 밝고 활기차다. 웃음이 끊임없다. 무엇이 그들을 웃게 하는가?


"우리들 대부분이 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잖아"


"네"


"요즘엔 뭔가 일터가 일터가 아니고 도피처 같은 느낌이야.."


"도피처요?"


"응응, 뭔가 학교를 째고 피시방으로 다 같이 일탈하는 느낌이랄까?"


"이야.. 일할 맛이 나겠는걸요?"


"당연하지~ 무슨 수학여행 온 것 같다니깐"


영어에 열정을 뜻하는 단어 Enthusiasm이 있다. 여기서 En은 in과 같은 "안"을 뜻하고 thusiam의 thu는 '신'을 뜻한다. 열정적 에너지를 한국어의 "신내림"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영어. 이 신들린 열정은 무언가에 뒤쫒기고 압박받으며 일하는 환경이 아니라 DSRV 팀처럼 정말 일을 즐기고 사랑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새벽 3시까지 사무실 불이 훤하게 켜져있다.


팀원들 전체가 무언가에 열중이다.


스트레스에 찌들은 표정은 단 하나도 없다.


다들 무서울 정도로 웃음기가 넘친다.


무엇이 그들을 작동시키는가?


.

.


사랑, 열정, 기쁨


그리고 논스.


.

.


투자 펀딩을 완료한 DSRV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웹사이트


작성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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