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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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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Sep 03. 2020

길냥이가 간택한 거친 남자 이야기

거친 하드웨어에 여린감성 소프트웨어

논스로 통하는 마지막 언덕을 마주하면 먼발치에서 뭉게뭉게 연기구름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그 담배굴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논스 올빼미족 대표 예훈. 오후 3시 정도가 되면 "기상시간"에 맞춰 어스렁 어슬렁 나와 차에 잠시 기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담배연기를 한 아름 마셔준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참 '크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거기에 포인트로 살짝 각진 턱에 수염이 굉장히 많다. 굉장히 빨리 자랄뿐더러 얼굴 전체에 골고루 뿌리가 뻗쳐있는 그의 수염, 간혹 한국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국적이다. 확실히 지하철에서 목격하는 현대 한국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근대화가 되기 전 찐 한국인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는 왜인지 마당에서 일을 잘할 것 같다. 주저 없이 뿜어 나오는 그의 테스토스테론의 원천이 궁금한 순간.


담뱃불을 끄고 난 뒤의 그를 조용히 따라가 보면 논스 2층 코워킹 그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다. 가히 대단한 자리라 부르고 싶다.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옆에는 방금 딴 것 같은 맥주 캔들이 보이고 왼쪽 코너에는 위스키 병이 시크하게 서 있다. 왠지 서랍을 열면 쿠바산 시가가 나올 것 같은 광경이다. 덥수르르한 수염을 한 각진 턱에 시가를 하나 딱 물고, 위스키를 들이키며 간간이 안주로 맥주 한 캔하면서 코딩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진정 우리가 밀레니얼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살갗으로 깨닫게 해 준다.


"와서 스테이크 드세요~"


"스테이크요?"


"네"


갑자기 마장동.jpg


시가, 위스키, 맥주, 스테이크.. 이 정도면 뭐 컨셉이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매번 그가 썰어주는 스테이크가 항상 맛이 있는 것을 보면 보통 내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는 논스에서 인기, 아니 인지도가 대단히 높다. 건물 앞에서 자주 목격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위의 스테이크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요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요리를 잘하는데다가 사람들을 잘 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논숙자들이 들붙어 있다. 필자도 포함.


밥묵쟈.jpg


그만큼 여기저기 퍼져있는 논숙자들을 한 공간으로 잘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도 혀를 내두른다. 쿨타임 찰 때면 한 번씩 오는 그와의 코스트코 파밍러쉬는 조인하고 싶은 파티원이 너무 많아 예약을 해야 할 정도이니..


코스트코 히어로


그런 산타클로스 같은 그가 논숙자들 쩔 해주는 것에 싫증이 났는지 최근에는 논스 입구에서 특이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아, 여기 고양이 밥 멕이려고요"


"에에? 고양이?"


"네, 너무 귀여워서 밥 좀 멕이려고요"


"쭈쭈바 같은 거네요?"


"아 네 츄르입니다 ㅋㅋ"


사정을 들어보니 우연찮게 논스에 간혹 나타나는 길냥이와 인연이 되었고 그 이후 친해지는 노하우를 인터넷에 찾아보면서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교감일기?도 쓰고 있다는데 이 자리를 빌어 그의 사생활을 잠깐 공유해보고자 한다.



논스 길냥이 교감 일기

작성자: 이예훈, aka 도지모스


지난 한 달간 논스 1km 반경을 벗어나는 시간이 10%도 되지 않아서 심심했는지, 7월 중순쯤 나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건은 단순하게 1. 돈이 많이 들지 않고 2. 몸이 피곤하지 않고 3.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만족감이 늘어난다. 그냥 운동을 취미로 해야되는 것 알면서 하기 싫어서 다른 취미 찾기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 찰나에 논스 입구에 만난 두 마리 길냥이:


"닝겐아, 운동하기 싫으면 우리 밥이라도 줘라!"


그렇게 길냥이 길들이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7월 17일


결국 나는 쿠팡에서 츄르 30개를 구매하고 한 달 동안 인간 츄르 자판기 역할을 시작한다.


초반에는 3미터 거리 안에만 가도 길냥이는 쫄아서 도망갔다. 그래서 적당한 곳에 츄르를 뿌리고 멀리 가서 지켜봤다. 냥이는 한 10분 눈치 보더니 결국 츄르를 못 이기고 츄릅츄릅을 시작했다.















7월 23일


이제 자판기라는걸 알아보는지 귀 쫑긋 세우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둔다.




















7월 27일


1미터 접근 성공.





















8월 8일


길냥이 눈 키스받기 성공.

물론 너무 가까이 가서 츄르 주려다가 냥냥펀치 한세례 받은 거는 비밀.



















8월 13일


이제 좀 덜 무서운지 문에서 나오는 것 지켜보다가 밥 달라고 문 옆에 와서 덥석 앉아버린다.


늠름한 식빵자세


8월 24일


"닝겐 왔냥?"


이 날 길냥이 이름은 '고구마'로 결정. 성씨는 고양 '고'씨이다.



















8월 26일


20cm 접근 성공.


한 달 반 만에 같이 셀카정도 찍을 사이정도는 되었다. 물론 아직 냥냥펀치 PTSD가 있어서, 역으로 인간이 고구마를 무서워하는 상황이 되었다.



















8월 28일


이제는 그냥 옆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냥냥 눈키스 듬뿍 날린다











사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우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도한 척 시크한 척 다하면서, 저녁마다 츄르 달라고 논스에 찾아오고, 배부르면 멀리서 눈키스 날려주는 고구마가 더 좋은 것 같다. 처음에 고구마 츄르 준다는 얘기했을 때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했던 정환 님도 이제는 논스 문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고구마를 찾는 집사 아닌 집사로 변했다. 이제 슬슬 쿠팡에서 츄르 정기배송 신청해야 되는 시기가 온건가? 일기 끝.


"예훈님.."


"네?"


"너무 귀여운데요"


"뭐가요?"


"예훈님 일기가요 ㅋㅋ"


"아하"


"예훈님은 첫인상과 달리 굉장히 은근 감성뿜뿜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사람들이 그런 말 하더라고요"


"무슨 말이요?"


"하드웨어에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들어가 있다고"


"거친 하드웨어에 탑재된 여린감성 소프트웨어"


"게다가 저 MBTI 유형 중에 INFP 입니다 흐흐.."


MBTI 타입 중 내향적이면서 여린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유명한 INFP. 


"예훈님이요? 믿기지가 않는데요?"


"하하, 제가 생긴 건 이래도 어릴 때부터 왠지 모르게 눈치를 정말 많이 봤어요"


"힘드시진 않았나요?"


"힘들었죠. 막 사실 정말 하기 싫고 몸이 힘들 때도 누군가 뭐가 필요하면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심지어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뭐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그게 계속 신경 쓰여서 제 할 일 못하고 끙끙거리고 그런 순간이 굉장히 많았어요"


"주변인에 대해 많이 예민하신 편인가봐요"


"네, 예전에 특히 많이 예민했었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그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제 자신을 탐구하면서 왜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이렇게 논스에 와 있잖아요? 직업도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특이하고.."


"왜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해야하는가?"


"실례지만, 제가 예훈님이랑은 너무 자주 봬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물어볼 겨를이 없었네요"


"전 지금 텐더민트라고 코스모스 프로토콜 개발팀에서 마케팅/전략쪽을 담당하고 있어요 제 코워킹 옆자리에 있는 정환님이랑은 체인앱시스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요"



정환(논숙자)과 함께하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 체인앱시스


"아아.. 안 그래도 코스모스쪽이랑 연관되어 있다고 제가 듣긴 했는데 전략쪽이셨군요. 그럼 개발은 안 하시는 거세요?"


"네, 사람들이 저를 코더로 많이들 보시는데 사실 저 코딩할 줄 모릅니다 하하"


"그럼 컴퓨터 스크린에 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아 제가 디자인 쪽은 좀 만질 줄 알아서 아마 그걸 보셨을거에요"


"키야.. 위스키, 맥주에 디자인이라.. 거의 아티스트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허허"


"논스는요?"


"논스가 왜요?"


"논스에 굉장히 오래 계셨잖아요 한 1년 좀 넘게?"


"벌써 그렇게 됐네요"


"오래 머물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시죠?"


"저도 사실.. 잘 몰라요 허허"


"??"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오래 살게 되었네요 허허"


"그래도 막 사람들이랑 이것저것 많이 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그렇게 잘 멕이신다고.."


"에이, 그냥 뭐 제가 먹는 걸 좋아하다보니 같이 또 먹으면 좋잖아요? 제가 살면서 받은 게 많아서 나눔에 있어선 크게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이야.. 감동인데요?"


"에이 뭘요~"


"이 대화 글로 써도 되나요?"


"에?"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예훈님 이야기를"


"아 좀 부끄러운데.."


"괜찮아요 제가 덜 부끄럽게 써 볼게요"


"아..알겠습니다"


.

.


그렇게 코워킹으로 올라와 키보드를 잡은 지금,


창가에 고양이 한 마리가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작성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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