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6개월째 소회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벌써 이직한지도 반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수습을 무사히 통과하여 정직원이 되었고, 개인명의 법인카드도 발급받았으며, 복지 마일리지도 받았고, 몇몇 회사 이벤트에 참여하여 소소한 상품도 받고, 슬쩍 회사 콘도도 예약을 해보았다(결과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판교 라이프로 말하자면, 코로나라 바깥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매일 보는 판교천과 그 주변의 다채로운 빛들의 자연, 그리고 그 풍경과 어우러지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운동 왔다 갔다 하는 때가 유일하게 밖에 나가는 시간인데, 요샌 미세먼지도 없어서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져서 오갈 때마다 기분이 업업된다.
전사 재택 기간이지만 나의 출근 비율은 80% 정도로 즐겁게 출퇴근하고, 점심 때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여 운동하고 있으며, 재택에도 나름 적응이 되어서 재택을 하더라도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이전보다 덜하게 되었다.
출퇴근 자유롭고 복지도 좋으며 여러모로 앞서가는 (그런 것 같은?) 회사에 다니다 보니, 좋은 것 같기는 한데, 한 회사에 오래 다니면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무언가 찾는 정보가 있는 경우에 이리저리 전화해서 수소문하면 담당자와 통화하거나 연락이 어떤 식으로든 닿아서 빨리빨리 의문이 해소가 되는데, 이 회사는 어떤 분이 무슨 일을 담당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있지를 않아서, 이럴 땐 누구에게 무얼 물어봐야 하는지 도통 미지수이다.
게다가, 전화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이나 챗으로 업무 연락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담당자가 휴가나 업무정지로 온라인이 아닌 경우에는 그 담당자에게 확인해야 하는 일은 담당자가 온라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도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한 세대에 속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우겨본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통화는 지양하는 편이지만, 지난 10년의 경험이 나를 업무 할 때는 전화가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이제는 챗으로'만' 업무를 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을 하고 싶은데, 빨리 해야 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이 느려서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전 회사들을 다닐 때는 몰랐던 답답함을 경험하고 있다.
내 성격이 급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빨리 한다고 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적시에 해줘야 다른 사람도 적시에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 무엇보다, 나는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들이기보다는 빨리해서 피드백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확인받고, 아니라면 조기에 수정하기를 원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일을 하고 싶은데 빨리 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괜찮은데 나만 조급함을 느끼는 거라면,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내가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인가? 이런 걸 일종의 책임감이라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 너무 무거운 책임감은 내려놓아야 하나 싶다.
덧붙여, 내가 회사의 안팎(ins and outs)을 잘 모르고, 내부적으로 회사의 요모조모를 쉽게 알 수 없는 구조이므로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일을 할 때 필요한 히스토리나 관련부서 파악이 어려우니, 라테 생각이 나면서, 이전 회사들 같았으면 관련부서, 담당 인원 찾아서 재깍재깍 빠릿빠릿하게 연락하고, 어려움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괜히 새로운 회사에 와서 이런 막막함을 느끼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아쉽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나는 원래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물론 내가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협력자를 잘 찾아내고 그들로부터 협조를 잘 이끌어내서 그런 것인지라, 커뮤니케이션이 유기적으로 안되면 내가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을...
나름 적응도 잘하고 일도 무리 없이 해가고 있지만, '좀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좀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제조업계로 돌아가고 싶냐고, 예전 회사들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놉'. 그건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답이 정해진 곳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과 함께, 자신들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상사들을 닮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면, 자연의 법칙처럼 그러한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그곳으로 돌아가서, 사람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일하라고 한다면, 그건 또 싫다. (물론 좋은 상사도 많고 본인에게 맞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내 위치와 상황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직하지 않고, 새로운 인더스트리에서 업무를 경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물론 회사 다니면서 내 삶은 잔잔하게 잘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약간 또라이 같지만 도전정신을 갖고 용기 비슷한 것을 내어 새로운 시도를 한 나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고 싶다.
많은 것이 예전과 다르지만, 그 변화에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업그레이드되는 경험도 기대된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