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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ranger Jan 04. 2022

주말엔 메이플 스토리지

딸과 놀기-온라인 게임 편

주말,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느지막이 일어나는... 그런 풍경은 우리 집에 없다. 원래 늦잠을 못 자는 나는 주말에도 7-8시면 일어나지만, 딸은 알람을 6:30에 맞춰놓는다.


나는 주중에 6:20-30에 일어나기 때문에 주말엔 그래도 7시 정도에 일어나면 좋을 거 같은데, 딸은 반드시 6:30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먼저 알람을 들으면 끄는 경우도 있고, 요일을 잘못 설정해서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딸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지금도 가끔 있는 일이고, 2022년 1월 2일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귀여워서 웃었는데, 딸은 주말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치 노는 시간을 최대화하는 것에 사뭇 진지하여, 나도 동참하고 있기는 하다.


토요일, 일요일- 대부분 잠들어 있는 새벽에 우리가 무얼 하느냐... 하면,


일단 각자 컴퓨터를 켜서 메이플 스토리('메이플')에 로그인 후, 딸과 파티를 맺고, 퀘스트 하고 사냥하고 보스도 잡고 하면서 논다. 나는 워낙 3D 게임과 맞지 않아서 오히려 메이플 같은 2D 게임을 좋아해서 어쩌다 보니 딸과 같이 메이플을 하게 되었는데, 딸은 거의 매일, 나는 주말에 같이 플레이한다.


주중엔 하루에 한 시간(이라 하지만 두세 시간 할 때도 있고), 주말엔 아침에 벌써 두 시간(이라 하지만 새해 첫날부터 테라버닝-경험치를 1+2로 주는 이벤트-이라 4시간을 하긴 했다) 메이플을 한다.


최근에는 하루에 1시간씩 로그인이 되어있어야 하는 '황금마차'라는 이벤트를 하였는데, 어찌나 꼬박꼬박 잘 지켜서 하던지... 그 성실성에 놀랄 정도였다.


같이 플레이를 하면서는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한다.


예를 들면, 일단 딸에게 너무나 많이 혼이 난다. 똥 손이라고, 컨트롤이 왜 그러냐고, 빨리 안 따라온다고, 자기가 스킬 쓰는데 내가 얼쩡거려서 효과가 줄어든다고...


또, 눈물사태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에 '끈기의 숲'이라고 점프 맵 같은 걸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자꾸 실패한다고 너무 서럽게 우는 것이다. 당황, 황당... 했지만... 달래주고,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결국 4단계까지 가기는 했다. (4단계가 끝은 아닌 듯) 막상 내가 '끈기의 숲'을 해보니, 3단계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힘으로 끝냈을 때, 정말 단전에서 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는 하더라.


레벨 업하면서 메이플 이미지가 뜨면 또 어찌나 해맑게 기뻐하는지, 온 집을 돌아다니면서 축하를 받고. 너무 사냥만 하면 재미없으니 같이 놀자고 하면서 '프렌즈 스토리' 가서 떡꼬치, 샌드위치 이런 거 사주기도 하고, 내가 돈이 너무 없으면 용돈으로 메소를 좀 주기도 한다.


같이 게임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바로 내가 딸보다 레벨이 좀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테라 버닝 때 내가 좀 몰래 플레이해서 레벨업을 했는데, 그걸 딸이 알고 눈물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레벨은 딸보다 무조건 낮게끔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새 캐릭터를 고를 때도, 딸이랑 상의해야 한다. 나도 이번 테라 버닝 때 '라라'를 키우고 싶었는데, 딸이 본인이 라라 할 거라고, 나는 딴 걸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메르세데스를 키우기로 했다. 지난번 테라 버닝 때, 나는 '아델'을 키우고 싶었는데, 딸은 자기가 아델 키울 거라고 해서 나는 패스파인더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패스파인더 하길 잘한 거 같긴 하다. (막 누르기 똥 손에 적합 >. <)


얼마 전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이벤트를 시작하기만 하면, 경험치를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이벤트 잘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나는 그냥 막 누르기만 하지 뭘 잘 읽지는 않는다.) 딸은 혼자 몰래 그걸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양심에 찔렸는지, 나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면서... 사실은 그런 이벤트가 있는데 혼자 하고 있었다고.... 이때 좀 배신감을 느꼈다.


좋은 건 같이 해야지... 혼자만 알고 하고 있었다니.


내가 핀잔을 좀 많이 듣기는 하지만, 딸과 같이 메이플 하면서, 울고 웃는 등 다양한 감정을 함께 경험하고, 같은 콘텐츠를 접하면서 연대감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다.


이번 방학 테라버닝 때도 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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