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당신이 (잠든 사이가 아니라) 회식하는 사이
지난주 중 3일간 회사에서 글로벌 행사가 있어서, 입사 1년 반 만에 저녁시간까지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특히 그중 하루는 어찌어찌 빠졌는데, 마지막 날에는 마무리 회식이 있어서 남편과 아이가 저녁을 먹고 그 이후 저녁시간도 함께 했어야 했다.
8시 반 즈음 저녁이 끝나고, 9시에 집에 도착하자, 딸이 씻고 있었는데,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딸: 엄마, 나 머리카락 잘랐다!?
나: 엥? 머라고? 어떻게? 왜?
딸: 몰라~ 가위로 잘랐어.
나: 모른다고? 보자! 잘 모르겠는데~?
'잘 모르겠는데~?' 하고서 보니 머리카락이 뭉태기로 샤워실 곳곳에 떨어져 있었고, 본인이 머리카락을 버렸다고 해서 쓰레기통을 확인해보니, 미용실에서 머리자를 때 마냥 한 뭉치 머리카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 왜 그런 거야? 머리 자르고 싶었어?
딸: 아니 고무줄이 안 풀러 지길래, 내가 가위로 잘랐거든...
하면서 이내 눈물을 흘린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태권도장에서 매우 작은 고무줄로 머리를 묶었는데, 그게 정말로 고무로 된 거라 잘 안 풀러 져서, 본인 딴에는 그걸 잘라보겠다고 가위를 든 것이었고, 가위는 고무줄과 함께 머리카락도 댕강 잘라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내가 머리를 다시 감겨주려고 물을 다시 묻히자, 머리카락이 다시 쑤욱-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나름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의도로 사건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실은 매우 놀라고 무서워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나는 안타까우면서도 너무 귀엽고 우스워서 속으로 키득키득 웃다가, 내가 당황하면 딸이 더 속상해할 거 같아서, 괜찮다고, 머리숱이 많아서 하나도 티가 안 난다고 위로해주었다.
나중에 머리를 말리면서 머리카락은 더 빠졌고, 머리가 길고 숱도 풍성하여 티가 덜 나긴 하지만, 바깥쪽 머리카락은 한 4-5센티만 남기고 없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져버렸다.
머리카락은 길 거니까 괜찮고, 가위 사용하다가 다른 곳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머리에 머리카락이 빈 구멍(땜빵)이 생긴 건 아니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동안 남편은 어디에 있었냐... 본인 방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다.
햐아~
내가 몇 시간 비웠다고... 이런 대 참사가 발생하다니.
그래도, 내가 없는 사이, 어떤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그 방법에 대해 고민 후에 판단을 내리고, 일을 실행(감행)하고, 그 결과를 묵묵히 혼자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있었던 딸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