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怪物 / Monster, 2023)

고래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고

by sunjoo


영화는 제목부터 괴물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괴물이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묻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의 본질은 '괴물이 누구인가' 가 아닌 '어떻게 해서 괴물이 되었나' 에 닿아있었다.



영화는 동일한 시각을 인물의 시점에 따라 여러 번에 걸쳐 보여 줌으로써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였는데, 이를 전해 받은 관객들은 해당 인물에게 이입하게 되며 특정 상황에서 악에 가깝다고 보여지는 인물을 괴물이라고 단정 짓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진짜 괴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답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게 되며, 이에 대한 답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외면적으로 드러났던 상황들이 아닌, 우리의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실존했던 사실들이 뒤이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서사에 걸쳐 서서히 밝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즉 우리가 볼 수 있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이것을 객관적이라 결단한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객관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 뒤엔 항상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공간이나 상황이 존재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상처로 가득 채워진 통증의 공간일 수도 있고, 다른 이를 향한 비난이 시작되는 참혹의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영화 속에서 괴물을 찾아낸다. 그렇게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괴물은우리들의 오해를 먹고 자라 몇 번이고 탄생했다가 죽기를 허무하게 반복한다.



가장 먼저 우리의 괴물이 되었던 호리 선생은 학교의 강요와 압박으로 인해 강제적 가해자가 된 인물이다. 학교 안에서 희생양이 된 호리 선생은 학교를 지킬 수 있는 일이라며 사실이 아닌 일에도 침묵을 강요 받는데, 이는 학교라는 사회가 전체의 이익과 지속을 위하여 호리 선생이라는 한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통제하며 집단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집단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개인의 권리가 희생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결국 이 사건을 통해 호리 선생이라는 개인은 온갖 미디어를 거치며 인간 실격의 존재로서의 낙인을 찍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런 호리 선생에게 침묵을 강요하였던 교장 선생은 어땠을까.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이 교장 선생이었던 것 같다. 슈퍼마켓 안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리질 않나, 요리가 떨어뜨린 라이터를 보고도 그저 침묵하질 않나, 죽은 손녀의 사진을 일부러 사오리의 쪽으로 돌려놓질 않나, 사오리의 말처럼 도무지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이 취하는 대부분의 행동들에는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바로 어떠한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그저 '묵인' 하는 것이다. 뛰어다니는 아이를 목격한 순간에도, 요리가 라이터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에도, 아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떨어진 라이터를 주워 주는 것뿐 교장은 이 외의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며 상황을 흘러넘긴다. 그리고 이는 호리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학교를 살리는 일입니다.” 어쩌면 교장은 호리 선생을 회유하기 위함이 아닌 정말 학교를 살리기 위한 최우선의 선택이 ‘침묵’ 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교장은 영화 내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 이는 즉 사회에서의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인물이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지시에 저항 없이 따르는 것.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어쩌면 교장은 그것이 사회로부터 쫓겨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오랜 세월 끝에 알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 관객 모두가 기이하게 여겼던 교장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미나토에게 말한다. “누구나 누릴 수 있기에 행복이야. 누구나 누릴 수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야.” 사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교장이 미나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마음 속에 쌓여있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일. 교장은 미나토에게 트럼본 부는 법을 가르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속에 있던 모든 감정을 쏟아내듯, 힘껏 트럼본을 불어댄다.



작중 요리는 어느 집단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학교에서는 보통의 남자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가정에서 역시 '너의 뇌는 돼지의 뇌다' 라는 아주 모욕적이고도 끔찍한 말을 들으며 폭력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완전하게 인지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인물, 바로 미나토이다. 미나토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선 요리에게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내어줄 정도로 호의적이게 굴지만, 학급 친구들의 눈길이 닿는 곳에선 요리와 인사 한 번 건네지 않는다. 요리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까 봐, 또 요리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까 봐, 미나토는 어떻게서든 집단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나 그런 미나토의 노력은 오히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뿐, 그에게 행복을 불러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아이는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 공간, 폐열차 안에서 둘만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사회의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곳, 어떠한 차별이나 시선이 전혀 닿지 않는 곳. 이 안에서 아이들은 새로 태어나길 원하며 행복이라는 꿈을 꾼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태풍이라는 균열 안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다.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 그토록 환생을 원했던 요리와 미나토는 폐 열차 안에서 살아남게 된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제게 주어진 삶을 환영한다. 새로 태어나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것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아이들은 자신들이 통과해왔던 터널의 출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터널이 가지는 재탄생, 성장, 진화와 같은 의미는 이제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지금 이 삶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행복에 가장 가까운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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