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글래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는 유대인 학살 시설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 맞은편에 살고 있는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이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상 영화의 전체 스토리는 보기 좋은 식물들로 정원을 꾸미거나 낚시를 하고 식사를 즐기는 등 정말 일상적이고도 평화로운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토록 주목 받는 이유는, 이러한 루돌프 가족의 모습이, 자세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벽 너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과 정말 잔인하리만큼 명확하게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는 작중 단 한 번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의 끔찍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단지 즐겁게 뛰어노는 루돌프의 자녀들 너머로, 정성 들여 예쁘게 가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와 그의 어머니 너머로, 먼 곳을 바라보며 여유로이 담배를 태우는 루돌프 너머로 귀를 쫑긋 열어야만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고요하고도 날카로운 유대인들의 비명과 수용소 내의 발포음 등의 음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의 고통과 보이는 곳의 평화를 대비시켜 잔인함과 공포감을 전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기가 더 힘든 잔인한 모습들을 다시 한 번 상상하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그것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 세어낼 수도 없을 만큼 넘쳐났던 유대인들을 어떻게 해야 더 많이, 더 깔끔히, 더 효율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지 늘 골똘하게 생각하던 루돌프가 정작 동식물에게만큼은 마음을 나누고 그 생명력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조차 너무나도 소름이 끼쳤다. 이런 자야말로 정말 악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온통 암흑 뿐인 세상에서 이 소녀를, 희망을 카메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빛을 사용할 수 없다. 왜? 세상에는 이미 빛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이 영화는 오직 열 화상 카메라만을 통해 이 소녀를 포착한다. 빛이 들지 않아도, 이 소녀가 지닌 온기 (체온)만은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흑 뿐인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만이 지닌 체온, 온기라는 희망을 지니고 다시 일어서길 원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시청했던 이동진 파이아키아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분석 영상 중 일부인데, 이 부분이 너무나도 크게 와닿아 한참이고 말을 곱씹었다. 만일 영화만이 영화로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사실 이 영화가 마냥 지루하지 않았다고,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 같다.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훌륭하게 느껴졌던 건, 그 지루하고 재미없단 느낌마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시키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동시에 깊게 스며드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였다.